유파

인물, 문신, 삼국시대, 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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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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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문신, 삼국시대, 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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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파는 후한 말 삼국시대 촉한의 뛰어난 문신으로 본래 유비에게 귀순하길 꺼려했으나 재능을 인정받아 중용되었다. 그는 재정 전문가로서 촉한의 재정 위기를 해결하고 국가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비록 인간관계는 원만하지 않았으나 제갈량의 깊은 신뢰를 받았으며 유비의 황제 즉위 문서를 집필하는 등 촉한 건국에 크게 기여했다. 그의 청렴하고 과묵한 태도는 당대 명문장가이자 재정전문가로서의 명성과 더불어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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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명문신 유파 탄생]

중국 후한 말에서 삼국시대 촉나라의 문신 유파가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명성이 높아 형주목 유표의 초빙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며 그의 강직한 성품을 드러냈다.

208

[조조 등용과 유비 반대]

형주목 유표 사후 조조가 형주를 장악하자, 유파는 조조에게 등용되어 장사, 영릉, 계양을 조조에게 복속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유비가 삼군을 점령하자 조조를 따르지 않고 교지로 망명하며 유비에게 큰 유감을 남겼다.

이후 촉 땅으로 이주하게 된다.

214

[재정 개혁, 촉한 살리다]

유비가 촉을 평정하자, 유파는 과거 망명했던 일을 사죄하며 유비의 용서를 받고 좌장군서조연에 임명되었다.

유비가 성도를 함락한 후 군수물자 부족에 시달리자, 유파는 돈을 주조하고 물가를 균등하게 할 것을 진언했고, 이를 따르자 몇 달 만에 국가 재정이 충실해지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제갈량은 유파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자주 칭찬하고 추천했다. 장비가 유파를 만나려 했으나 유파가 대화하지 않아 장비가 노여워했고, 제갈량이 중재를 시도했으나 유파는 거부했다. 유비가 이에 노했으나 제갈량은 끝까지 유파를 칭찬하며 그의 능력을 옹호했다.

219

[촉한 요직 상서 임명]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유파는 상서에 임명되며 촉한의 주요 요직을 맡게 되었다.

이는 그의 행정 능력과 유비에게 대한 충성을 인정받은 결과였다.

220

[최고위직 상서령 등극]

촉한의 중요한 인물인 법정이 세상을 떠나자, 유파는 그의 뒤를 이어 최고위직인 상서령에 올랐다.

그는 유비가 황제 존호를 칭했을 때의 모든 중요한 문장과 임명서를 직접 작성하는 등, 촉한 건국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상서령 재임 시 상서 양의와 불화하여 양의가 요령직인 홍농태수로 좌천되기도 했다.

222

[위대한 문신, 유파 별세]

촉한의 재정 및 행정 시스템을 책임지던 유파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 청렴하고 질박한 생활을 유지하며 공적인 일에만 충실했고, 위나라의 진군이 제갈량에게 유파의 소식을 묻자 제갈량은 그를 '유군자초'라 칭하며 깊은 존경심을 표했다.

유파는 본심이 아니었음에도 유비를 섬기게 된 것에 대해 의심받을까 두려워 항상 공손하고 과묵한 태도를 유지했으며, 사사로운 교류를 삼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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