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
왕실, 작위, 역사, 여성 지위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46
왕후는 한자문화권에서 제왕의 정실 부인에게 부여된 작위입니다. 시대와 국가에 따라 황후 왕비 등 다른 작위와 구분되며 그 지위와 호칭은 정치적 상황과 역학 관계에 따라 변화했습니다. 특히 중국 한국 베트남 등 각국의 역사 속에서 왕후의 역할과 위상은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이 작위는 단순히 왕의 배우자를 넘어 국모로서의 상징성과 정치적 영향력을 지닌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BC 1k
[왕후 작위 최초 사용]
중국 고대 국가 주나라에서 '왕후' 작위가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천자는 한 명의 왕후 외에 3부인, 9빈 등 다양한 여관을 둘 수 있다는 《주례》의 기록에서 유래합니다.
이전 하나라와 상나라에서는 왕의 배우자를 '왕비'라고 칭했습니다.
BC 3C
[중국 최초 공식 황후 등장]
중국 역사상 공식적으로 '황후' 작위를 받은 최초의 인물은 전한 시대 고황후 여치입니다.
진시황제 때 황제 작위가 처음 등장했으나, 황후를 봉작한 기록은 현존하지 않습니다.
BC 2C
[베트남, 왕후 작위 사용 시작]
베트남의 남월국 3대 군주 명왕 시기에 두 명의 정실 배우자가 '후(后)'로 봉작되었습니다.
중국 사서에는 이를 '왕후'로 표기하고 있어, 베트남에서 '왕후' 작위가 사용된 초기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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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번국 왕의 배우자 왕비 개칭]
전한 시대에는 제후국 왕의 정실을 '왕후'라 칭했지만, 후한 시대에 들어서면서 제후국 왕의 배우자는 '왕비'로 개칭되었습니다.
이후 중국 황실에서는 봉왕된 황족이나 제후의 배우자를 왕비로 규정하는 전통이 정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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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妃) 작위, 후궁으로 정착]
중국 위 명제 시기에 이르러 '비(妃)'가 황제의 후궁 작위로도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남북조 시대에 걸쳐 '비'를 황제의 후궁 작위로 겸용하는 것이 정착되었고, 수 양제 때부터는 황후 아래 1등 후궁의 지위로 자리매김하여 후궁의 통칭으로도 인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968
[베트남, 황후 작위 사용 시작]
딘 황조가 스스로 제국을 칭하면서, 이때부터 후 레 시대 찐 주 왕조가 들어서기 전까지 베트남 황제의 정실 배우자는 '황후'로 봉작되었습니다.
이는 베트남이 독립 제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려 한 노력을 보여줍니다.
1009
[고려, 비(妃)를 측실 작위로 사용]
고려 초에는 제왕의 정실을 '왕후', 후궁을 '부인'으로 칭했습니다.
그러나 8대 현종 시기부터 '비(妃)'를 제왕의 측실(후궁) 작위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고려의 독특한 왕후/왕태후 개념과 함께 발전했습니다.
1274
[원 간섭기 고려 왕후 작위 변화]
원 간섭기에 고려 국왕이 원의 부마가 되면서, 왕의 배우자 작위에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충렬왕은 원의 공주를 정실로 맞이했으나, 처음에는 고려의 '후(后)' 작위 대신 공주 본래의 작위를 쓰게 했습니다.
이후 추시된 왕후, 태후 작위마저 원의 압력으로 '제국대장공주'로 변경되었고, 결국 고려는 '후(后)' 작위 사용을 포기하고 원의 공주 작위를 따르게 됩니다.
1365
[고려, 왕태후 작위 재등장]
원 간섭기가 끝난 후, 공민왕 14년에 노국공주가 사망하자 대신들이 '인덕공명자예선안왕태후' 시호를 올리며 '왕태후' 작위가 다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원의 간섭으로 인해 폐지되었던 왕실 작위 체계가 다시 복구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이후 공민왕 21년에는 왕대비 홍씨가 왕태후로 격존되는 등 왕태후 작위의 사용이 활발해졌습니다.
1391
[고려 왕후 작위, 비(妃)로 격하]
이성계의 숭명 정책으로 고려가 명나라의 제후국으로 격하되면서, 국왕의 정실 작위가 '후(后)'에서 '비(妃)'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명나라의 예법에 따라 천자의 배우자는 '후', 제후의 배우자는 '비'를 칭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입니다.
이로써 왕후의 지위가 공식적으로 낮아졌습니다.
1396
[조선 왕후 작위 최초 부활]
조선 개국 초, 국모의 작위는 명나라의 제후국 지위에 맞춰 '비(妃)'로 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태조 5년, 태조의 정실 강씨가 서거하자 공신들의 건의로 '왕후(王后)' 작위가 부활하여 강씨는 신덕왕후로 추존되고 왕후의 예우로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이는 조선에서 왕후 작위가 다시 등장한 중요한 사건입니다.
1398
[조선 왕후, 추존 작위로 전환]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정종이 즉위하며 태조의 정실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했으나, 정종의 정실 김씨는 '왕후'가 아닌 '비'로 책봉되었습니다.
이는 명나라와 구 신진사대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후 태종이 즉위하면서 아내 민씨를 '비'로 올리고, 조선에서 '왕후'는 살아있는 왕비가 아닌 '사망한 왕비를 내부적으로 추존한 작위'로 의미가 변경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1430
[왕비 사후 왕후 추존 제도화]
제후국에서 '태후' 칭호 사용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습니다.
이에 세종 12년부터 조선의 국모는 살아있을 때는 '왕비'로 봉작되고, 서거한 후에 '태(太)'를 뺀 '왕후'로 추존하는 제도가 공식적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이 제도는 고종 31년까지 조선 왕실의 표준으로 유지되었습니다.
1545
[베트남, 정실 배우자 왕비 사용]
베트남의 찐 주 왕조는 명나라의 제후국 입장을 취하며, 독립국 천자의 정실에게 부여되는 '후(后)' 작위 대신 제후의 정실에게 부여되는 '왕비' 작위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대외적으로 명의 영향력 아래에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778
[베트남, 황후 작위 재도입]
떠이선 왕조 시기에 베트남이 다시 독립국 위상을 회복하면서 황제의 정실 배우자를 '황후'로 봉작하는 제도가 재도입되었습니다.
이는 베트남이 외세의 영향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작위 체계를 구축하려 한 시도를 보여줍니다.
1802
[베트남, 비(妃) 사후 후(后) 추증]
응우옌 왕조는 독립 제국을 표방했으나, 청나라의 압박으로 대외적으로는 제후국 입장을 취하며 '왕'을 칭했습니다.
이에 따라 왕의 정실은 살아생전에는 '비(妃)'로 불리다가, 서거 후에 '후(后)'로 추증되는 형식을 택했습니다.
이는 내부적인 황후 추상과 대외적인 왕후 기록이 공존하는 독특한 체계였습니다.
1894
[살아있는 왕비, 왕후로 격상]
고종 31년, 청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독립국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왕실 작호가 전면적으로 개정되었습니다.
기존의 '왕비는 사후에 왕후로 추존'하는 규례가 폐지되고, 살아있는 왕의 정실도 '왕후'로 칭하도록 제도가 변경되었습니다.
경칭 또한 '전하'에서 '폐하'로 격상되었습니다.
이는 조선 역사상 살아생전 '왕후'로 호칭된 최초이자 마지막 사례로, 훗날 명성황후로 추존된 민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1897
[대한제국, 황후 작위 제정]
고종이 대한제국을 설립하고 황제에 즉위하면서, 명성왕후 민씨의 작위가 '황후'로 격상되어 '명성황후'로 추존되었습니다.
이는 조선이 독립 제국으로 전환하며 황제국에 걸맞은 작위 체계를 확립한 역사적인 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