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번

인물, 동오 관료,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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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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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동오 관료,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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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오의 강직한 관료이자 학자 우번. 뛰어난 지모와 역경에 능통한 인물로 주군 손권에게도 서슴없이 직언을 날렸다. 미방과 우금을 면전에서 비난하고 손권의 연회에서 무례하게 행동하며 신선 이야기를 조롱하는 등 강직한 성품으로 인해 결국 교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문하생들을 가르치며 삶을 마쳤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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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우번 출생]

후한 말기부터 동오의 관료이자 학자인 우번이 태어났습니다. 자는 중상입니다.

우번은 164년에 태어났으며, 자는 중상입니다. 그는 중국 후한 말기부터 동오 시대에 걸쳐 활동한 관료이자 학자로, 양주 회계군 여요현(현재의 닝보시 위야오시) 출신입니다.

197

[왕랑을 섬기다 손책에게 귀부]

회계태수 왕랑을 섬기던 우번은 손책에게 패배한 왕랑의 권유로 회계에 남아 손책에게 초빙되어 임관했습니다.

우번은 초기 회계태수 왕랑의 밑에서 일했습니다. 손책이 왕랑을 격파하자, 우번은 왕랑을 호위하려 했으나 왕랑의 권유로 회계에 머물러 손책의 초빙을 받아 그의 휘하에 들어갔습니다.

199

[화흠을 설득하여 항복시킴]

손책의 명을 받아 예장태수 화흠을 설득하여 손책에게 항복시켰습니다.

손책 휘하에서 회계의 업무를 담당하던 우번은 예장태수 화흠을 성공적으로 설득하여 손책에게 항복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손책 세력 확장에 기여한 중요한 공적 중 하나입니다.

200

[손권을 섬기고 조조의 부름 거절]

손책 사후 동생 손권을 섬기게 되었으며, 당시 최대 세력인 조조의 부름을 받았으나 응하지 않고 손권을 따랐습니다.

손책이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우번은 그의 동생 손권을 주군으로 모셨습니다. 이 시기, 낙양에 주둔하던 강력한 군주 조조로부터 초빙 제안을 받았으나, 우번은 이를 거절하고 손권에게 충성을 지켰습니다.

221

[손권 축하연에서 소신을 지키다]

손권이 오왕으로 봉해진 축하연에서, 술을 좋아하던 손권이 직접 술잔을 돌리자 우번은 취한 척 술을 마시지 않았다가 유기의 중재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손권이 위나라로부터 오왕에 봉해져 축하연이 열렸습니다. 술을 즐겨 마시던 손권이 직접 술잔을 돌리며 분위기를 돋우자, 우번은 술에 취한 척 쓰러져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손권이 지나가자 곧 태연히 일어났고, 이를 본 손권은 크게 노하여 우번을 죽이려 했습니다. 다행히 유기(劉基)의 중재로 우번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우번의 강직하고 소신 있는 성격을 잘 보여줍니다.

222

[신선론 비판으로 교주 유배]

손권과 장소가 신선에 대해 논하는 것을 듣고 조롱하여 손권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이처럼 거듭된 직언과 비판으로 결국 교주로 유배되었습니다.

손권과 장소(張昭)가 불로불사의 신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우번이 듣게 되었습니다. 우번은 "죽은 자들이 신선에 대하여 논하고 있군요. (불로불사의) 신선은 있을 리가 없을텐데 말입니다"라며 비판적인 말을 던졌습니다. 이러한 우번의 거침없는 태도와 직언이 반복되자, 손권은 결국 그를 교주(交州)로 유배 보냈습니다.

233

[교주에서 학문 교육 중 사망]

교주 유배지에서 수백 명의 문하생을 가르치며 학문을 전수하였고, 다시는 중앙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69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교주로 유배된 우번은 광효사에서 수백 명의 문하생을 모아 학문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끝내 중앙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233년에 69세의 나이로 유배지 교주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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