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의
촉한 인물, 관료, 삼국지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41
탁월한 실무 능력으로 제갈량의 북벌을 이끈 숨은 공신. 군수 조달과 부대 편성에 능했으나 극도로 오만하고 좁은 성격 탓에 동료들과 잦은 불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위연과의 갈등은 제갈량 사후 촉한을 뒤흔드는 비극적인 결말로 이어졌습니다. 위연을 숙청한 뒤에도 자만심과 불만으로 인해 유배되었고 결국 유배지에서 비방을 일삼다 자결로 생을 마감한 재능과 단점이 뚜렷했던 파란만장한 인물입니다.
215
[관료 생활 시작 및 유비 휘하 편입]
건안 연간 형주자사 부군의 주부가 된 후 관우를 거쳐 유비에게 귀의하여 좌장군병조연, 한중왕 즉위 시 상서에 임명되며 촉한의 주요 관료로 자리매김했다.
건안 연간 형주자사 부군의 주부로 일하다 그를 등지고 양양태수 관우에게 합류했다. 관우의 추천으로 공조가 되었고, 유비에게 인정을 받아 좌장군병조연에 임명되었다. 유비가 한중왕이 되었을 때에는 상서로 승진하며 촉한 초기의 중요한 관료로 활동을 시작했다.
222
[유파와의 불화로 홍농 태수 좌천]
유비의 오나라 정벌 시기, 상서령 유파와의 불화로 인해 통제권 밖의 먼 지역인 홍농 태수로 좌천되며 일시적인 경력 단절을 겪었다.
유비가 오나라를 정벌할 때, 양의는 상서령 유파와 사이가 좋지 않아 불화를 겪었다. 이로 인해 촉한의 실질적인 지배 범위 밖인 위나라 영지 중에서도 후방의 먼 땅인 홍농 태수로 좌천되는 처벌을 받았다.
225
[제갈량의 참군으로 복귀]
유비 사후, 승상 제갈량의 발탁으로 참군이 되어 주요 관직에 복귀하며 다시 한번 촉한의 핵심 인재로 활동을 시작했다.
유비가 죽은 후, 건흥 3년(225년)에 승상 제갈량이 양의를 참군으로 임명하여 다시 주요 관직에 복귀하게 되었다. 이는 그의 능력을 제갈량이 높이 평가했음을 보여준다.
227
건흥 5년(227년), 제갈량이 북벌을 준비하며 한중으로 이동할 때, 양의도 그를 따라 한중으로 함께 갔다. 이 시기부터 그는 제갈량의 군사 업무를 보좌하게 된다.
230
[장사로 승진 및 북벌 군수 책임]
장사로 승진하고 수군장군을 겸임하며 제갈량의 북벌 시 부대 편성, 양곡 계산, 군용 물자 조달 등 핵심적인 군수 업무를 담당하여 뛰어난 실무 능력을 입증했다.
건흥 8년(230년), 양의는 장사로 승진하고 수군장군 직책을 추가로 맡게 되었다. 제갈량이 여러 차례 북벌을 단행할 때마다 그는 군사 계획 수립, 부대 편성, 양곡 계산, 군용 물자 조달 등 모든 군수 업무를 총괄하며 제갈량의 북벌 작전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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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 사후 군사 철수 주도 및 위연 주살]
제갈량 사후 강유, 비의와 함께 군사를 성공적으로 철수시켰다. 이 과정에서 위연이 지휘를 거부하고 반란을 획책하자, 왕평의 도움으로 위연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위연을 주살하며 삼족을 멸했다.
제갈량의 사망 직후, 양의는 강유, 비의 등과 함께 촉한군을 성공적으로 철수시키는 임무를 맡았다. 후퇴 중 사마의의 추격을 강유의 제안에 따라 기지로 물리쳤다. 하지만 이때 위연이 양의의 지휘를 거부하고 잔도를 끊어 퇴각을 방해하는 등 반란의 조짐을 보였다. 결국 위연과 양의는 서로 상대방을 반란자로 몰며 격렬하게 대립했고, 왕평의 일갈로 위연의 병사들이 이탈하며 위연의 군대는 와해되었다. 위연은 사로잡혀 참수되었고 그의 삼족까지 멸해지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비의에게 역심 발언 및 고발당함]
자신을 위로하던 비의에게 "제갈량 사망 시 위나라에 투항했더라면 지금처럼 영락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역심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가 비의의 밀고로 인해 결정적인 위기에 처했다.
비의가 양의를 위로하자, 양의는 비의에게 자신의 원망을 털어놓으며 "예전에 승상이 죽었을 때 내가 만약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로 갔다면 지금처럼 비참한 처지가 되었겠는가! 이제 와서 후회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불경한 발언을 했다. 비의는 이 말을 은밀히 조정에 상주하여 양의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중군사 임명 후 제갈량 후계 구도에 불만 표출]
위연 주살의 공에도 불구하고 한직인 중군사에 임명되자, 자신이 제갈량의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장완에 대한 불만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위연 주살 후 성도로 돌아온 양의는 중군사로 임명되었으나, 중요한 직책이 없어 한가하게 지냈다. 그는 제갈량 사후 군사 철수와 위연 주살의 공로가 크다고 여겼고, 자신이 마땅히 제갈량의 뒤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제갈량은 생전에 양의의 좁은 성격을 우려하여 장완을 후계자로 지목했다. 양의는 장완이 상서령과 익주자사 직책을 맡게 되자, 자신보다 나이, 경력, 재능 모든 면에서 장완이 월등하다고 여기며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사람들은 그의 무절제한 언행을 두려워했다.
235
[파직, 유배 및 자결로 최후]
역심 발언으로 인해 파직되어 서민으로 강등되고 한가군으로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도 비방을 멈추지 않아 압송 명령이 내려지자, 검거되기 전 자결하여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건흥 13년(235년) 정월, 역심을 품은 발언이 상주된 결과, 양의는 모든 관직에서 파직되어 서민으로 강등되었고 한가군으로 유배되었다. 하지만 유배지에서도 여전히 조정에 대한 비방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군에 양의를 체포하여 성도로 압송하여 문책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이 소식을 들은 양의는 체포되기 직전 자결로 생을 마감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