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례

정치가,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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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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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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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하고 과감한 성품으로 위나라에서 이름을 떨친 인물. 전쟁터와 궁정에서 모두 활약하며 황실에 충언을 아끼지 않음. 오만불손한 대장군 조상에게 맞서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소신파. 어려운 환경에서도 탁월한 리더십과 청렴함으로 병사들의 존경을 받음. 최종적으로 삼공의 지위에 오르며 능력과 인품을 인정받은 위대한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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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

[조조에게 발탁, 마태를 도우려다 감형되다]

전란 중 조조에게 발탁되어 사공군모연이 되었다. 이후 사형 위기에 처한 동향 사람 마태를 도우려다 온회의 탄복으로 둘 다 감형되는 미담을 남겼다.

전란 중에 어머니를 잃은 후 조조가 원상과 원희를 토벌하고 유주를 차지할 때 사공군모연으로 발탁되며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군 사람 마태가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자 그를 도주시키려 했으나, 마태가 거절하고 온회에게 자진 출두했다. 온회가 이들의 의로운 행위에 탄복하여 조조에게 보고했고, 둘 다 사형보다 한 단계 감형되었다.

228

[조휴에게 깊이 진격하지 말도록 간했으나 대패]

조휴가 주방의 거짓 투항을 믿고 환현까지 깊숙이 진격하려 하자, 손례는 이를 간했지만 조휴는 듣지 않았다. 결국 조휴는 협석에서 대패했다.

태화 2년(228년), 조휴가 오나라 주방의 거짓 항복에 속아 환현까지 깊숙이 진격해 들어가려 하자, 손례는 조휴에게 더 이상 들어가지 말 것을 강하게 간언했다. 그러나 조휴는 손례의 충고를 무시했고, 결국 협석에서 대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사건 후 손례는 양평태수로 승진하고 상서가 되었다.

233

[명제에게 노역 중지 간언 및 사냥 중 호랑이와 대치]

천하에 곡식이 적은 상황에서 명제가 궁전 공사를 강행하자 이를 완강하게 간언하여 중단시켰다. 또한 명제와의 사냥 중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에게 달려들어 명제를 보호하려 했다.

명제가 재위 중 천하에 곡식이 부족한 상황임에도 궁전 건축을 강행하자, 손례는 완강하게 노역 중단을 간언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감독자가 공사 지속을 요구했으나 손례는 현장을 확인 후 조서를 발동시켜 공사를 중지시켰다. 또 명제가 대석산에서 사냥할 때 호랑이가 명제의 수레로 달려들자, 손례는 즉시 말에서 내려 칼로 호랑이를 죽이려 했으나 명제의 칙명으로 다시 말에 올랐다.

239

[명제의 유언으로 조상 보좌, 강직함으로 조상 눈밖에 나다]

명제가 죽기 전 조상을 대장군으로 임명하며 손례에게는 대장군장사와 산기상시직을 맡겨 그를 보좌하게 했다. 그러나 손례의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은 조상과 맞지 않아 눈밖에 나게 되었다.

경초 3년(239년), 위 명제가 임종에 임박하여 조상을 대장군에 임명하며 어린 황제를 보정하게 했다. 이때 손례는 대장군장사 겸 산기상시에 임명되어 조상을 보좌하게 되었으나, 청렴하고 정직하며 타협하지 않는 성격 때문에 조상의 미움을 샀다. 이로 인해 양주자사 겸 복파장군으로 외직으로 발령받아 전선에 배치되었다.

241

[오나라 전종의 작피 침공을 막아내다]

정시 2년, 오나라 전종이 작피를 침공했을 때, 양주 군대의 대부분이 휴가 중인 상황에서 손례는 자신의 위병을 이끌고 중과부적의 상황 속에서도 전종의 군대를 물리치는 용맹을 보였다.

정시 2년(241년), 오나라 전종이 작피로 쳐들어왔다. 당시 양주 군대 대부분이 휴가 중인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례는 자신의 위병을 이끌고 전종의 대군과 맞서 싸웠다. 이 전투에서 휘하 장졸들이 대다수 죽거나 중상을 입었으나, 결국 전종의 군대를 일시적으로 물러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비록 전종이 작피를 점령하고 둑을 무너뜨렸지만, 이후 왕릉에 의해 참패했다. 황제는 손례의 공적을 기려 비단 700필을 하사했으나, 손례는 이를 모두 전사한 병사들의 유가족에게 나누어 주었다.

245

[기주목 재임 중 조상과의 갈등으로 금고형에 처해지다]

기주목 재임 시절, 청하군과 평원군의 경계 분쟁을 지도에 근거하여 공정하게 해결했다. 그러나 조상이 청하군의 입장을 들어 손례의 판결을 뒤집으려 하자 이에 항의했고, 결국 조상의 분노를 사 5년간의 금고형을 받았다.

내직인 소부를 거쳐 외직인 형주자사가 된 후 기주목으로 승진했다. 당시 기주 내의 청하군과 평원군이 경계를 두고 다투고 있었는데, 손례는 과거 분할 지도를 근거로 평원군 소속으로 판정하며 공정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조상이 청하군의 주장을 받아들여 손례의 판단을 무효화하는 문서를 내리자, 손례는 이에 강력히 항의하는 상주문을 올렸다. 이로 인해 조상의 분노를 사 5년간의 금고형에 처해졌다. 하지만 1년 후 그를 변호하는 이들이 많아 성문교위에 임명되었고, 흉노와 선비족 문제 해결을 위해 병주자사에 임명되었다.

249

[사마의 쿠데타 후 중앙 정계 복귀 및 사공으로 승진]

조상이 사마의의 쿠데타로 실각한 후 중앙으로 복귀하여 사례교위가 되었다. 이후 재상격인 삼공 중 하나인 사공으로 승진하며 대리정후에 봉해지는 영예를 안았다.

정시 10년(249년),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조상을 실각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하자, 손례는 중앙 정계로 돌아와 사례교위가 되었다. 이후 재상급 직책인 사공으로 승진하며 대리정후에 봉해졌다. 이는 최염과 진수 등 당대 인물들이 그가 삼공에 이를 것이라 예견했던 평가가 현실이 된 중요한 사건이다.

250

[사공 재임 중 사망, 경후의 시호를 받다]

가평 2년 11월, 사공 재임 중에 사망했으며, '경후'라는 시호를 받았고 손자 손원이 뒤를 이었다.

가평 2년(250년) 11월, 사공 재임 중 사망했다. 시호는 경후(景侯)이며, 그의 손자 손원(孫元)이 뒤를 이어 작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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