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

황제, 동오,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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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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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동오,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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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동오의 제4대이자 마지막 황제. - 즉위 초기 선정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곧 폭군으로 변모하여 잔혹한 숙청과 무리한 정책을 펼침. - 백성들의 민심을 잃고 국력을 쇠퇴시키다 결국 서진에 항복 동오의 멸망을 초래. - 항복 후 서진에서 귀명후 작위를 받으며 쓸쓸하게 생을 마감한 비운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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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

[손호, 동오 황족으로 탄생]

삼국시대 동오의 황족이자 손권의 셋째 아들 손화의 서장자로 태어났다.

훗날 동오의 마지막 황제가 될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다.

264

[동오의 4대 황제 즉위]

경제 손휴의 급작스러운 사망 후, 촉한 멸망과 교지 상실로 불안정한 정국 속에서 능력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에 복양흥과 장포의 지지를 받아 어린 태자 손완을 제치고 23세의 나이로 동오의 4대 황제로 전격 즉위했다.

연호를 '원흥'으로 선포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초기 선정과 측근 등용]

즉위 후 자신을 황제로 옹립한 장포와 복양흥에게 높은 작위를 내리고, 시적, 정봉 등 실력자들을 대사마로 임명하며 정국을 안정시켰다.

창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을 돕고, 궁녀들을 풀어주며 황실 후원을 개방하는 등 현명한 군주로서 초기에는 백성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갑작스러운 폭군 변모]

즉위 초의 선정을 뒤로하고 불과 몇 달 만에 광포하고 교만한 성격으로 돌변했다.

주색에 빠져 백성들의 실망을 샀으며, 자신을 황제로 만든 핵심 공신인 복양흥과 장포가 후회한다는 참언을 듣자마자 둘을 주살하고 삼족을 멸하는 잔혹함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황실 권위 재편]

전 황제 손휴의 황후인 주태후를 격하시키고, 자신의 아버지 손화와 생모 하씨를 각각 황제와 황후로 추존하며 황실 권위를 재편했다.

부인 등씨를 황후로 삼고, 외척인 등목과 하홍 등에게도 작위를 내렸다.

265

[연호 '감로'로 변경]

감로(甘露)가 내렸다는 보고를 받고 대사면을 내리며 연호를 기존의 '원흥'에서 '감로'로 변경했다.

이는 길조를 빌어 민심을 다스리려는 시도였으나, 이미 폭정으로 돌변한 그의 통치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전 황후 및 황족 숙청]

잔혹한 친족 숙청을 감행했다.

전 황제 손휴의 황후였던 주황후를 핍박하여 죽이고, 공식적인 절차 없이 평범한 무덤에 매장하도록 했다.

또한 손휴의 네 아들 중 나이가 많은 두 명을 살해했으며, 자신의 이복형제인 손준까지 죽이는 등 피바람을 일으켰다.

[무모한 무창 천도 강행]

'형주에 왕기가 있어 양주를 깨트리니 건업궁이 불리하다'는 망기(기운을 보아 길흉을 점치는 것)의 보고를 맹신하여 수도를 건업에서 무창으로 천도하는 무리수를 두었다.

백성들은 장강을 거슬러 물자를 운반해야 하는 고통에 시달렸고, '차라리 건업의 물을 마시지 무창의 물고기를 먹지는 않을래요!'라는 동요가 퍼질 정도로 민심은 악화되었다.

266

[실현되지 못한 북정 야망]

진나라의 추존황제 사마소의 조문을 위해 사절을 보냈다가 익양 습격 건의를 받았다.

거기장군 유찬은 이득이 있다며 찬성했지만, 진서대장군 육개는 촉이 막 평정된 시점에서 공격은 무리라며 반대했다.

손호는 내심 공격을 원했으나 결국 육개의 조언을 따르지 못하고 북정 시도를 포기했다.

[민심에 밀려 건업 환도]

무창 천도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과 민심 이반이 심화되자, 결국 육개의 상소를 직접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천도 1년여 만에 다시 수도를 건업으로 되돌렸다.

이는 그의 정책이 얼마나 즉흥적이었고, 백성들의 삶을 고려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280

[동오의 비극적 종말]

곽마의 반란과 간신들의 득세로 국력이 극도로 쇠퇴한 동오는 서진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백성들의 고통과 군대의 사기 저하 속에 더 이상 저항할 수 없게 된 손호는 결국 서진에 항복했고, 이로써 삼국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고 동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서진에서 '귀명후'라는 작위를 받았다.

284

[낙양에서의 쓸쓸한 죽음]

동오 멸망 후 서진의 수도 낙양으로 옮겨져 '귀명후' 작위를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멸망한 왕조의 마지막 황제로서, 그의 마지막은 쓸쓸했을 것이다.

284년, 그는 낙양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무덤 옆에는 후일 백제의 의자왕과 남조 진나라의 마지막 황제 진숙보가 묻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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