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침
삼국시대 권신, 오나라 황족, 대장군, 섭정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33
오나라 말기 권력을 휘두른 황족이자 폭군. 선대 권신 손준의 뒤를 이어 조정의 모든 군사를 총괄하며 정사를 장악했다.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고 황제를 폐위시키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 자신을 두려워한 경제 손휴에 의해 결국 숙청당하며 삼족이 멸족되었다. 당대 최고의 권력을 누렸으나 흉악한 행실로 평가절하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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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준 사후 권력 장악]
선대 권신 손준이 죽자 그의 후사를 이어 시중 겸 무위장군이 되어 오나라 중앙과 지방의 모든 군사를 총괄하고 조정의 정사를 주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써 손침은 오나라의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병으로 죽기 직전 손준은 손침에게 자신의 후사를 맡겼습니다. 손침은 이를 빌미로 곧바로 황제를 능가하는 권력을 장악하며 오나라 말기 권신 정치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반대파 여거, 등윤 숙청]
손침이 권력을 잡자, 여거와 등윤이 손침을 폐출하려 모의했습니다.
손침은 이를 알게 되자 즉시 손준의 북정군을 동원해 여거를 공격하여 자살하게 만들고, 등윤과 그의 삼족을 멸하여 반대파들을 철저히 제거했습니다.
여거는 손침의 전횡을 보고 등윤을 승상으로 천거하며 손침을 몰아내려 했으나, 오히려 손침의 신속하고 잔인한 보복에 의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손침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하며 그가 얼마나 무자비한 인물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대장군 임명 및 봉작]
권력을 확고히 한 손침은 오나라의 최고 직위인 대장군에 임명되고 가절을 받았으며 영녕후에 봉해졌습니다.
이는 손침의 공식적인 직위와 명예가 최고조에 달했음을 의미하며, 그의 권위는 황제를 위협할 수준이 되었습니다.
[손려·왕돈 암살 실패]
손침 집권 후 대우에 불만을 품은 손려와 장군 왕돈이 손침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두 사람은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손침의 독단적인 통치에 대한 내부적인 저항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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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탄의 난 지원 참패]
위의 대장군 제갈탄이 사마씨 정권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고 오나라에 투항을 청하자, 손침은 문흠, 당자 등 3만 병력을 보내 구원했습니다.
그러나 오나라군은 참패했고, 이로 인해 손침은 백성들로부터 큰 원망을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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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제 손량 폐위 및 옹립]
황제 손량이 손침의 전횡을 힐문하며 그를 제거하려 모의했으나, 황제의 비가 손침의 사촌 누나의 딸이었으므로 음모가 발각되었습니다.
손침은 즉시 손량을 폐위시키고, 반대하는 신하들을 죽인 뒤 낭야왕 손휴를 새로운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손침의 권력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손침은 자신이 옹립한 황제조차 마음대로 폐위시키는 등 황실을 꼭두각시처럼 다루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이는 손침의 권세가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종교 탄압 및 형제 요직]
득의양양해진 손침은 오자서의 사당을 불태우고 불교 사원을 파괴하며 승려들을 참수하는 등 광폭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또한 그의 네 아우를 모두 후로 임명하고 근위군을 맡겨, 손침 집안의 권세는 황제를 넘어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연회서 숙청, 삼족 멸족]
손침과 새로운 황제 손휴는 서로를 두려워하는 관계가 되었고, 결국 258년 12월 8일, 건업에서 열린 연회에서 손휴는 정봉, 장포 등과 함께 손침을 묶어 목을 베었습니다.
손침의 삼족이 모두 살해당했고, 과거 손준 형제에게 죽었던 제갈각, 등윤, 여거는 모두 사면 복권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오나라의 권신 정치는 일단락되었습니다.
손침은 무창으로 나가기를 원했으나, 위막, 시삭 등의 장군들이 손침의 모반 가능성을 경고하며 이를 막았습니다. 결국 손침은 연회에 참석했다가 최후를 맞이했고, 그의 죽음은 오나라 역사상 가장 큰 숙청 중 하나로 기록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