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 (동오)
삼국시대, 동오, 무장,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27
- 손권이 아끼고 신뢰했던 동오의 용맹한 무장. - 수차례 위나라의 침공을 막아내며 동오의 국경을 수호한 핵심 인물. - 특히 조비의 대군을 기발한 기만술로 물리쳐 전쟁의 흐름을 바꾼 전략가. - 강동의 평화를 지키는 데 크게 기여하며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205
[손권 등용 및 황역 군사 격퇴]
전란을 피해 강동으로 이주한 서성은 손권에게 등용되어 별부사마가 되었고, 시상장으로서 황역이 이끄는 수천 군사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물리쳤습니다.
서주는 전란으로 혼란스러웠고, 서성은 이를 피해 강동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손권에게 등용되어 별부사마로 임명되었고, 5백 명의 병사를 이끌고 시상장 직책을 맡았습니다. 당시 황역이 수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공격해왔으나, 서성은 이를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이 공로로 손권은 그를 교위와 무호령으로 임명했으며, 이후 임성 남쪽의 산월을 토벌한 공로로 중랑장으로 승진시켰습니다.
213
[유수구 전투 활약]
조조가 유수구에 쳐들어왔을 때, 서성은 폭풍 속에서도 적군을 향해 돌격하는 용맹을 보여 손권의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213년 1월, 위나라의 조조가 유수구에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침공해왔습니다. 서성은 당시 심한 폭풍이 몰아치는 악천후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여 뛰어난 용맹을 과시했습니다. 그의 활약은 손권의 큰 칭찬을 이끌어냈습니다.
221
[형정의 오왕 책봉 방문과 서성의 분노]
위나라 태상 형정이 손권을 오왕으로 책봉하기 위해 왔을 때, 그의 거만한 태도에 서성은 분노하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형정은 오나라의 복종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221년, 위나라에서 태상(太常) 형정이 손권을 오왕(吳王)으로 책봉하기 위해 오나라를 방문했습니다. 처음 오나라에 왔을 때 형정은 매우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에 서성은 분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형정은 오나라가 위나라에 오래도록 복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릉 전투 기여 및 유비 추격 요청]
유비가 형주를 공격하자 육손의 지휘 아래 이릉에서 촉군을 격파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유비를 추격하려 했으나 조비의 침공 대비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221년 7월, 촉나라의 유비가 형주를 공격하며 대규모 원정에 나섰습니다. 서성은 육손의 지휘 아래 이릉(夷陵) 전투에 참전하여 촉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전투 후 유비가 백제성으로 달아나자, 서성은 손권에게 유비를 계속 추격하여 완전히 섬멸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육손이 위나라 조비의 침공에 대비하여 군사를 물려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서성의 추격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222
[조휴 군사 격퇴 및 안동장군 임명]
오를 공격해온 조휴의 군사들을 상대로 분투하여 공을 세웠고, 이 공로로 안동장군에 임명되고 무호후로 봉해졌습니다.
222년 9월, 위나라의 조휴가 오나라를 공격해왔습니다. 서성은 이 전투에서 조휴의 군사들을 상대로 용맹하게 분투하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 싸움이 끝난 후, 손권은 서성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를 안동장군(安東將軍)에 임명하고, 무호후(蕪湖侯)의 작위를 수여했습니다.
224
[조비의 정벌군 기만 작전]
조비가 오나라 정벌군을 일으키자, 서성은 갈대와 나무로 가짜 성벽을 만들어 위군을 속여 철수시켰습니다.
224년 8월, 위나라 황제 조비가 직접 대규모 오나라 정벌군을 이끌고 침공에 나섰습니다. 서성은 기발한 계책을 제안하여, 강가에 나무에 갈대를 입혀 마치 성벽과 누각처럼 보이게 하고 많은 전함을 띄웠습니다. 얼마 후 도착한 조비는 오나라 군이 수백 리에 걸쳐 견고한 성벽을 쌓은 것으로 착각하고 전의를 상실, 결국 철수하고 말았습니다. 이는 서성의 지략이 빛난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229
서성은 손권의 황무 연간(224년~229년) 중에 사망했습니다. 그의 정확한 생몰년은 현재까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