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소

중국 삼국시대 인물, 조위 관료, 책사,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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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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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인물, 조위 관료, 책사, 정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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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조위의 뛰어난 책사이자 정치가입니다. 원소와 장양을 거쳐 조조의 핵심 참모로 활약했습니다. 헌제 허창 천도 오환 정벌 군량 보급 관우 격파 전략 등 국가의 주요 전환점에서 탁월한 통찰력과 지략을 발휘하여 위나라 건국과 안정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말년에는 사도(司徒)의 최고위직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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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동소는 156년 연주 제음군 정도현에서 태어났습니다.

191

[원소의 세력 확장 도운 동소]

혼란스러운 시기, 원소가 한복의 땅을 빼앗자 친공손찬파와 친원소파로 나뉘었는데, 동소가 나서 친공손찬파였던 거록태수를 설득하여 원소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설득력으로 원소는 초기 세력 확장에 중요한 도움을 받았다.

193

[원소의 의심, 장양에게로]

원소가 동생 동방 일로 동소를 의심하며 해치려 하자, 동소는 황제를 만나러 가려 했지만 하내에서 장양에게 붙잡혔다.

결국 모든 직위와 벼슬을 버리고 장양에게 투항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원소, 동소를 위군태수로]

위군태수 율반이 반란군에게 살해당하자, 원소는 동소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를 위군태수로 임명했다.

이는 그의 관료 생활에서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196

[황제 구출, 조조의 조력자]

이각과 곽사의 내분으로 헌제가 장안에서 탈출해 낙양으로 도주하자, 조조가 헌제 구출에 나섰다.

조조군이 하내를 지날 때, 장양은 동소의 조언을 받아들여 조조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동소는 난세에 주변 제후와 척지는 것이 좋지 않다고 설득했고, 이로써 조조는 무사히 헌제를 구출할 수 있었다.

[허창 천도, 조조의 책사]

헌제를 구출한 후 낙양에서 한섬, 양봉, 장양 등 세력가들 사이에 내분이 일어났다.

이때 동소는 조조에게 헌제를 전략적 요충지인 허창으로 이동시킬 것을 강력히 권유했고,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허창 천도를 단행했다.

이는 조조가 황제를 보호하는 명분을 얻고 주변 세력을 정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

[하내를 조조에게 바치다]

장양의 부하였던 양추가 장양을 살해하자, 동소는 망설임 없이 전략적 요충지인 하내를 조조에게 바쳤다.

이는 조조가 중원 지역을 장악하고 세력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200

[관도대전, 안량 격파의 숨은 공신]

관도대전 당시, 조조군이 원소군의 배후를 찌르는 척하며 백마진으로 유인하자, 동소의 부대가 안량의 진영을 뚫어 관우가 안량의 목을 벨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했다.

이는 관도대전의 초반 승리에 기여하며 전황을 조조에게 유리하게 만들었다.

207

[오환 정벌, 수로 건설의 지혜]

조조가 오환 정벌에 나섰을 때, 군량 수송 문제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동소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수로를 건설하여 군량을 보급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줄였을 뿐만 아니라, 오환족을 무너뜨리고 원씨 가문을 완전히 전멸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전략적 통찰력이 돋보이는 순간이었다.

211

[조조, 위공 등극 권유 (실패)]

동소는 조조에게 위공(魏公)으로 오를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며 구석(九錫)을 청했지만, 순욱의 강력한 반대로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조조가 황실의 권위를 넘어서는 첫 시도였으며, 동소가 조조의 야망을 간파하고 돕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213

[조조, 마침내 위공으로]

211년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동소는 끈기 있게 다시 한번 조조에게 위공으로 추대될 것을 권유했다.

그의 지속적인 노력 끝에 조조는 마침내 위공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는 위나라 건국의 초석을 다지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었다.

219

[관우 협공 제안, 간파된 손권의 야심]

손권이 관우를 협공하여 비밀리에 잡자는 서신을 보냈다.

모든 관리들이 동의했지만, 동소는 이를 반대하며 '이는 비밀로 할 사안이 아니다.

손권이 관우를 사로잡으면 모든 죄를 우리에게 뒤집어씌워 형주를 독차지하려 할 것이다.

오히려 관우에게 이 사실을 알려 오나라까지 막게 해야 한다'고 조조에게 간했다.

조조는 그의 지혜에 감탄하여 따랐고, 손권은 졸지에 배신자가 되어 위나라와 동맹을 맺는 꼴이 되었다.

나아가 동소는 관우가 형주로 도망가려는 것을 파악하고 서황을 보내 관우군을 짓밟게 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이끌었다.

그의 통찰력은 적의 야심을 간파하고 우리 편의 이익을 극대화했다.

222

[강릉 전투, 동소의 혜안]

하후상이 강릉을 공격할 때, 동소는 문제(조비)와 함께 참전했다.

날씨가 좋지 않고 전투가 지지부진하자, 하후상이 삼각주에 진을 쳤다.

동소는 즉시 문제에게 '지금은 유리할지 모르나 밀물이 들어오면 모든 것이 수포가 될 것이니 철군해야 한다'고 상소했다.

문제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철군시켰고, 처음에는 하후상이 동소를 원망했으나, 열흘 만에 밀물이 삼각주를 덮치자 모두 동소의 혜안에 감탄했다.

이 공로로 동소는 위위(衛尉)가 되었다.

226

[조위의 최고위직, 사도에 오르다]

문제 조비의 뒤를 이은 명제 조예의 즉위 후, 동소는 조위의 최고 관직 중 하나인 사도(司徒)에 임명되며 명실상부한 국가의 기둥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오랜 경험과 지혜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236

[81세 나이로 별세]

중국 삼국시대 조위의 중요한 관료이자 책사였던 동소는 향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평생을 지혜로운 조언과 뛰어난 통찰력으로 위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안정시키는 데 헌신하며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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