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량

정치인, 촉한, 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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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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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촉한, 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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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량(187년~222년)은 중국 후한 말 유비 휘하에서 활약한 촉한의 핵심 정치인입니다. 다섯 형제 중 가장 뛰어나 백미(白眉)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이는 여럿 중 최고를 뜻하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209년 유비에게 등용된 후 내정과 외교에서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지조와 성실함을 겸비한 명사로 평가받았으나 222년 이릉 대전에서 36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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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

[마량의 탄생과 백미 고사]

흰 눈썹 때문에 '백미'라 불리며, 다섯 형제 중 가장 출중하여 '여럿 중 가장 뛰어난 사람 또는 물건'을 뜻하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된 마량이 태어났다.

그의 자는 계상이다.

209

[유비의 종사로 등용]

유비가 형주목으로 추대될 무렵, 마량은 유비 휘하의 종사로 등용되었다.

이는 그가 유비 세력에 합류하여 본격적으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214

[좌장군연 임명 및 사신]

유비의 익주 평정 이후, 마량은 성도로 불려가 좌장군연에 임명되었고, 손권과의 친선을 위한 중요한 사신 임무를 수행하며 유비 세력의 외교 관계 강화에 기여했다.

221

[시중으로 승진]

유비가 황제에 즉위하자, 마량은 핵심 요직인 시중(侍中)에 임명되며 더욱 중요한 위치에서 국정을 보좌하게 되었다.

[오나라 출병에 종군]

유비가 오나라로 출병할 때, 마량은 원정군에 종군하여 무릉군 5계의 이민족을 회유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는 이릉 대전의 전초 준비 과정이었다.

222

[이릉 대전 전사]

이릉 대전에서 촉한군이 크게 패배하면서, 마량은 전투 중 전사했다.

향년 36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으며, 유비는 그의 아들 마병에게 관직을 주어 슬픔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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