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승
정치인, 장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09
후한 말 풍전등화의 황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장군. 황제 헌제를 필사적으로 호위하며 생사를 넘나들었다. 조조의 무소불위 권력에 맞서 비밀스러운 암살 작전을 꾸미다 발각 비극적 최후를 맞으며 역사의 드라마틱한 순간을 장식했다.
195
[황제 호위 임명]
장안 탈출을 감행한 헌제를 호위하기 위해 안집장군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곽사, 양정, 양봉 등과 함께 위태로운 황제의 곁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다.
195년 7월, 장제 주선으로 헌제가 장안을 떠나 홍농군으로 이동할 때, 곽사, 양정, 양봉 등과 함께 안집장군에 임명되어 헌제를 호위하기 시작했다.
[헌제 납치 시도 저지]
헌제 일행이 경조윤 신풍현을 지날 때 곽사가 헌제를 미현으로 빼돌리려 하자, 양정, 양봉과 함께 이를 저지하며 황제를 지켜냈다.
곽사는 결국 대열에서 이탈했다.
195년 8월, 경조윤 신풍현을 지나던 중 곽사가 헌제를 우부풍 미현으로 빼돌리려 했다. 동승은 양정, 양봉과 함께 곽사의 시도를 막아냈고, 곽사는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대열에서 이탈했다. 10월에도 곽사의 부하들이 불을 지르며 헌제를 다시 데려가려 했으나 이 역시 격파하며 홍농군 화음현에 이르렀다.
[단외 모함 및 공격]
단외가 헌제를 도우려 했으나 양정과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충집이 역심으로 모함하자, 동승과 양정은 거짓말까지 보태 단외를 공격했다.
단외는 꾸준히 지원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십여 일간 공격당했다.
홍농군 화음현에 주둔하던 영집장군 단외가 헌제에게 물품을 제공하며 자신의 진영으로 맞이하려 했다. 단외와 양정의 사이가 좋지 않던 터라 시중 충집이 단외가 역심을 품었다고 모함했다. 태위 양표 등이 반대했음에도 동승과 양정까지 ‘곽사군이 단외의 진영에 들어갔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헌제는 노숙을 해야 했다. 양정, 동승, 양봉은 십여 일간 단외를 공격했으나, 단외는 헌제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는 등 다른 뜻이 없었다. 결국 공격을 거두었다. 한편 헌제를 보내준 것을 후회하던 이각과 곽사는 단외를 구한다는 구실로 헌제 일행을 추격했다.
[황하 탈출의 처참한 밤]
이각, 곽사, 장제 연합군의 끈질긴 추격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황하 절벽에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 배에 매달린 손가락을 내리쳐서라도 나아가야 했던 처참한 밤을 겪으며 마침내 황하를 건넜다.
이 공으로 위장군으로 승진했다.
195년 11월, 양봉과 함께 홍농현에 도착한 동승은 장제의 제안을 뿌리치고 동쪽으로 향했다. 이에 이각, 곽사, 장제 연합군이 헌제 일행을 습격, 수많은 사상자와 치중 손실이 발생했다. 백파적 이락, 한섬, 호재와 남흉노 거비를 불러 대항했으나 섣달에는 섬현까지 내몰렸다. 남은 인원도 채 백 명이 되지 않자, 십여 장 높이의 강안 절벽을 내려가 황하를 건너기로 했다. 도하 중 죽거나 다치는 자가 속출하고, 배에 오르려 매달린 손가락을 동승과 이락이 내리쳐야 했을 정도로 참혹했다. 잘린 손가락들이 나뒹굴고 동사하거나 익사한 이들이 허다했다. 이각의 척후병의 추격까지 막아내며 마침내 하동군 대양현을 거쳐 안읍현에 당도했다. 하내 태수 장양과 하동 태수 왕읍의 도움을 받아, 동승은 위장군으로 승진했다.
196
[낙양 환도와 내부 숙청]
헌제의 낙양 환도를 주도했으나, 자신들의 공을 믿고 정사에 관여하는 한섬, 양봉 등의 전횡에 직면했다.
동승은 조조를 끌어들여 한섬을 축출하고, 결국 헌제는 낙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공으로 동승은 열후에 봉해졌다.
196년 2월, 환도 문제로 내분이 발생하여 한섬의 공격을 받았다. 장양이 있는 야왕현으로 피한 후 낙양 황궁 보수 작업을 미리 진행했다. 5월에 환도가 결정되어 7월에 헌제가 낙양에 다시 들어섰다. 8월, 거기장군 양봉은 하남윤 양현으로 나갔고, 동승과 대장군 겸 사례교위 한섬만이 헌제를 보좌했다. 한섬이 자신의 공을 믿고 멋대로 정사에 관여하자, 동승은 연주목 조조를 끌어들였다. 조조의 개입으로 한섬은 주살될까 두려워 양봉에게 도피했고, 동승은 보국장군 복완 등 13명과 함께 열후에 봉해졌다.
200
[조조 암살, 비극적 실패]
조조의 권력 전횡에 맞서 헌제의 밀조를 받고 유비 등과 함께 조조 암살을 모의했다.
그러나 계획이 누설되어 자신과 딸 동귀인을 포함한 삼족이 멸족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199년, 동승은 거기장군까지 올라 개부(開府)했다. 허현 천도 이후 조조에게 권력이 집중되자, 전횡을 견디지 못한 헌제로부터 조조 제거 밀조를 받았다. 좌장군 유비, 편장군 왕자복, 장수교위 충집, 의랑 오석, 장군 오자란 등과 모의했다. 그러나 200년 정월, 계획이 발각되어 동승 자신과 딸 동귀인을 포함한 삼족이 멸족당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사건이 극적으로 묘사되며, 길평의 독살 시도, 동승의 하인 진경동의 밀고, 연판장 발각 등으로 인해 동승 일가 및 관련자 700여 명이 처형되는 비극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