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돈

오환의 왕, 기마민족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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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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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환의 왕, 기마민족 지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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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돈은 오환의 군주이자 지략과 용맹을 겸비한 당대 최고의 인물 중 한 명이다. * 구력거의 조카로 어린 누반을 대신해 즉위한 후 분열되어 있던 오환 부족들을 최초로 통합하여 북방 최강의 기마민족으로 성장시켰다. * 원소와 동맹을 맺고 공손찬을 격파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 원소 사후 망명 온 원상을 보호하며 조조에게 유표 이상의 가장 큰 위협으로 부상해 북방 정세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 조조의 대규모 오환 원정 중 백랑산 전투에서 전사하며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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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답돈, 오환 왕으로 즉위 및 부족 통합]

오환 요서 부족의 수령 구력거의 조카였던 답돈은 그의 뒤를 이어 오환의 왕위에 올랐다. 그는 흩어져 있던 오환의 여러 부족들을 통합하여 강력한 세력으로 만들었으며, 망명객들을 받아들이며 부족의 위상을 높였다. 이로써 오환은 중국 북부 기마민족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요서오환의 수령 구력거가 사망한 뒤, 그의 어린 아들 누반 대신 조카인 답돈이 즉위하여 세력을 이었다. 답돈은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망명객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백 년간 분열되어 있던 요서, 요동속국, 우북평 오환의 3부를 통합하여 강력한 오환을 건설했다. 이로써 오환은 중국 북부에서 가장 강력한 기마민족 세력으로 급부상했다.

196

[원소와 동맹, 오환선우로 책봉]

당시 세력을 확장하던 원소와 동맹을 맺고 공손찬 격파에 크게 기여했다. 이에 원소는 답돈을 오환선우(單于)로 임명하고, 다른 오환 지도자들을 그의 휘하에 두게 했으며, 자신의 일족 여식을 양녀로 삼아 답돈에게 시집보내는 등 확고한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

원소와 공손찬의 대립이 격화되던 시기, 답돈은 원소에게 사자를 보내 화친을 청하고 원소를 도와 공손찬을 격파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에 196년, 원소는 조서를 꾸며 답돈을 오환선우로 삼고, 오연과 소복연 등 다른 3군 오환의 지도자들을 좌, 우 선우로 삼아 답돈의 명령을 받들게 했다. 또한, 원소는 자신의 일족 여식을 양녀로 삼아 답돈에게 시집보내며 정치적 유대 관계를 강화했다.

200

[누반에게 선우 직위 이양 후 실권 유지]

성장한 누반에게 선우 직위를 넘겨주고 공식적으로는 왕으로 강등되었으나, 여전히 오환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외적으로는 선우와 동등한 위세를 유지했다.

누반이 장성하자, 초왕 등 오환 지도자들은 누반에게 선우의 자리를 이어받게 하고 답돈은 왕으로 강등되었다. 그러나 답돈은 여전히 오환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오환의 선우로 여겨질 만큼 강력한 위세를 떨쳤다.

205

[원상의 망명 수용 및 보호]

원소가 죽고 조조에게 패한 후계자 원상이 답돈에게 망명해 오자, 그를 보호하고 재기를 돕기 시작했다. 답돈의 지원을 받은 원상은 조조의 거점인 기주를 위협하며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원소가 202년에 죽고, 그의 후계자 원상은 조조에게 패배하여 205년 음력 1월 답돈에게 망명해 왔다. 답돈은 원상을 보호하며 그의 재기를 도왔다. 그 결과 원상은 상곡군에 주둔하며 오환의 군사를 이끌고 변경을 침입하고 원소의 구신들을 사주해 조조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며, 조조가 임명한 자사와 태수들을 살해하고 수십만의 유주 백성들을 오환으로 끌고 가는 등 조조의 큰 골칫거리가 되었다.

207

[백랑산 전투에서 전사]

조조의 오환 정벌 중, 백랑산에서 조조군과 예상치 못하게 조우하여 교전했다. 병력의 열세와 준비 부족 상태에서 장료의 공격을 받아 난전 중 조순의 부하들에게 생포되어 참수당하며 생을 마감했다.

조조는 원상과 답돈의 위협을 좌시할 수 없어 오환 원정을 결정했다. 조조군이 전주의 안내를 받아 노룡 방면의 고로를 통해 오환의 본거지로 잠행하던 중, 퇴각을 위장했던 조조군이 총사령부인 유성에서 불과 2백리 지점에서 갑자기 포착되었다. 백랑산에 올라갔던 답돈은 조조와 예상치 못하게 조우했으며, 당시 조조는 본대에서 이탈해 병력은 적었으나 고지에 위치해 있었고, 답돈의 군사들은 대오를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조조는 장료에게 명하여 답돈을 공격하게 했고, 답돈은 난전 중에 조순의 부하들에게 생포되어 참수당하며 207년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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