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통
역사 인물, 장군, 삼국 시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05
손권 휘하의 맹장이자 신뢰받던 장군 능통.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전사 후 가업을 이어받아 전장에 뛰어들었다. 강하 적벽 남군 등 굵직한 전투에서 맹활약하며 무공을 쌓았고 특히 소요진 전투에서는 죽음을 무릅쓰고 손권을 구해 영웅적 면모를 보였다. 뛰어난 리더십과 충성심으로 손권의 깊은 신임을 받았으나 29세의 젊은 나이에 병사하여 많은 이의 안타까움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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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영웅의 시작]
15세, 아버지 능조가 전사하자 손권의 명으로 별부사마가 되어 아버지의 병사를 이끌게 되며 본격적인 무장 생활을 시작했다.
15세 때 아버지 능조가 강하 태수 황조를 공격하다 감녕의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능조가 나랏일을 위해 죽었으므로 손권이 능통을 별부사마에 제수하고 파적도위를 겸하게 해 아버지의 병사를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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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승리, 마둔 함락]
손권을 따라 보둔과 마둔 공격에 참전, 특히 마둔 전투에서는 직접 최전선에서 활약하며 성을 함락시키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손권이 보둔과 마둔을 칠 때 따라갔다. 손권은 보둔을 함락한 후 능통과 장이 등 1만 명을 남겨 마둔을 마무리할 것을 지시하고 돌아갔다. 직접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힘껏 싸워 한쪽 면을 무너트렸다. 이 기세로 여러 장수들이 짓쳐들어가 마둔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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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 대승의 주역]
황조와의 강하 전투에서 동습과 함께 결사대를 이끌고 적의 맹렬한 공격을 뚫어냈다.
직접 적장을 베고 닻줄을 끊어 손권군이 승리하는 길을 열었다.
손권이 다시 강하로 쳐들어갔다. 황조는 몽충을 쌍으로 면구에 배치하여 수비하였다. 편장군 동습과 능통이 각각 결사대 100인을 이끌고 갑옷을 껴입은 채 큰 배를 몰아 돌진하였다. 능통이 황조의 장수 장석을 베고 동습이 양 닻줄을 끊어 대오를 흩트린 덕분에 손권의 대군이 수륙병진하여 성을 함락시켰다.
[본진을 지키는 방패]
승렬도위로서 적벽대전에 참여했으며, 주유와 여몽이 남군으로 진격하는 동안 본진을 굳건히 수비하며 교위로 승진했다.
승렬도위가 되어 적벽 대전에 참여하였다. 주유와 여몽이 조인이 있는 남군으로 진격하여 먼저 이릉을 공취한 감녕에 대한 포위망을 풀 동안 능통이 본진을 지켜서 교위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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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이 환현을 점령할 때 공을 세워 탕구중랑장과 패국상을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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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 대치, 관우와 맞서다]
유비와의 영토 분쟁 시 여몽을 따라 세 군을 되찾는 작전에 참여, 익양에서 촉한의 명장 관우와 대치했다.
유비가 익주를 확보했는데도 장사, 계양, 영릉 세 군을 반환하지 않기에 여몽을 따라 그 군들을 취하고 익양에서 관우와 대치하였다.
[손권을 구한 영웅]
합비 전투 중 장료의 기습으로 손권이 고립되자, 능통은 3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죽음을 무릅쓰고 돌진해 위기에 처한 손권을 구해냈다.
수많은 부하를 잃고 중상을 입었지만, 그의 충성심과 용맹은 빛났다.
이 공으로 편장군에 임명되었다.
우부독으로서 합비 전투에 종군하였다. 손권이 철수하면서 최후미인 소요진 북쪽에 가장 늦게까지 남았다. 여몽, 장흠, 능통, 감녕, 그리고 1,000명의 근위병만이 손권을 호위했는데 장료 등이 엄습하였다. 능통이 300명을 이끌고 난전 속으로 뛰어들어 손권을 구출하였다. 장료군이 교량마저 끊어놔서 손권이 어렵사리 그 잔해를 밟고 말을 세차게 몰아 간신히 넘어갔다. 그 뒤를 지켜 수십 명을 죽였지만 자신도 좌우를 모두 잃고 심한 부상을 당했다. 손권이 안전해지자 갑옷을 입은 채 자맥질해서 돌아왔다. 배에 타고 있던 손권이 능통을 보고 놀라고도 기뻐하였다. 능통은 자신이 아끼던 부하들이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데에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몹시 애통해했다. 손권이 소매로 눈물을 닦아주며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데 공적은 아직 살아있으니 어찌 근심하겠소?”라고 위로했다. 편장군에 임명되고 병사를 배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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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장의 아쉬운 퇴장]
산월을 회유하는 임무 중 병사했다.
손권은 그의 죽음에 비통해하며 어린 두 아들을 직접 궁에 들여 친자식처럼 보살필 정도로 능통을 아끼고 신임했다.
자진하여 산월을 회유하러 갔다. 손권은 성의 관리들에게 능통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선조치 후보고하라고 하였다. 만 명을 모아 돌아오다가 병사하였다. 손권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매우 슬퍼했으며 장승으로 하여금 애도문을 짓게 하였다. 능통의 어린 아들들은 궁으로 들여 친자식처럼 길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