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자

군인,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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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20- 16: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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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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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자는 중국 삼국시대의 군인이자 전략가입니다. * 본래 위나라에서 반란을 일으킨 후 오나라로 망명하여 장군이 되었습니다. * 오나라와 위나라 양측에서 주요 전투와 반란 진압에 참여하며 파란만장한 행보를 보였습니다. * 특히 수춘 전투에서 포로가 된 후에도 위나라에서 중용되어 특별한 이력을 남겼습니다. * 후기에는 바다를 건널 수 있는 거대한 배 건조를 지휘하며 기술적 재능도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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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이성군 반란, 오 망명]

이성군에서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태수를 죽이고 당자를 우두머리로 추대했어요.

위나라 군대에 진압당하자 당자는 오나라로 달아났고, 오나라는 그를 장군으로 임명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225년, 산동 지역 이성군에서 병사 채방 등이 반란을 일으켜 태수 서기를 죽이고 당자를 우두머리로 추대했습니다. 위나라 군대에 진압당하자 당자는 배를 타고 오나라로 달아났고, 오나라 조정은 당자를 장군으로 임명했습니다.

239

[요식의 난 진압 참여]

오나라 장수 요식이 반란을 일으켜 형주와 교주를 혼란에 빠뜨리자, 당자는 손권의 명을 받아 여대를 도와 반란 진압에 큰 공을 세웠습니다.

239년, 오나라 장수 요식이 임하 태수를 죽이고 스스로 평남장군을 칭하며 형주 남부와 교주 일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오나라는 여대를 보내 진압에 나섰고, 당자는 손권의 명령을 받아 여대를 도와 반란 진압에 이바지했습니다.

252

[동흥 전투 선봉장]

위나라의 대군이 동흥을 공격해왔을 때, 당자는 제갈각의 지휘 아래 선봉장으로 참전하여 오나라를 수호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52년 11월, 위나라의 왕창, 관구검, 제갈탄, 호준 등이 오나라의 동흥을 공격해왔습니다. 당자는 제갈각에 의해 선봉장으로 참전했습니다.

256

[위나라 정벌군 참전]

위나라에서 오나라로 망명해온 문흠이 위나라 공격을 제안하자, 당자는 손준이 편성한 정벌군의 전장군으로 서주와 청주 공략 임무를 맡았습니다.

하지만 손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원정은 중단되었습니다.

256년, 관구검의 반란을 돕다 오나라로 망명해온 문흠이 위나라를 공격할 것을 청했습니다. 이를 받아들인 오나라의 실권자 손준이 편성한 정벌군에 당자는 전장군으로써 참전하여 서주와 청주를 공략하는 임무를 받았으나, 손준이 갑작스런 병으로 죽는 바람에 원정이 중단되었습니다.

257

[제갈탄의 난 지원]

사마소에 반발하여 제갈탄이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오나라에 구원을 청하자, 당자는 3만 명의 원군과 함께 수춘으로 향해 사마소의 진압군에 맞섰습니다.

257년, 제갈탄이 사마소의 야심에 반발하여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오나라에 아들을 인질로 보내며 구원을 청하자, 오나라에서는 3만 명의 원군을 보냈습니다. 당자는 문흠, 전역 등과 함께 수춘으로 가서 사마소의 진압군에 맞섰습니다.

258

[수춘 함락과 포로]

수춘에서 맹렬히 저항했지만, 무기 파괴와 탈주병 속출, 그리고 제갈탄이 문흠을 죽이는 내분까지 겹치며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결국 위나라의 총공격에 성이 함락되고, 당자는 적에게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258년, 남아있는 무기를 총동원하여 5, 6일간 밤낮으로 남쪽 포위망을 공격했지만 위나라의 투석기와 불화살에 공격 무기들마저 다 파괴되면서 탈주병이 속출했습니다. 제갈탄이 문흠과의 의견 차이로 문흠을 죽이는 사태가 벌어져 문앙과 문호가 위나라로 투항하는 등 궁지에 몰리자, 결국 위나라의 총공격에 제갈탄은 죽고 성은 함락되어 당자는 적에게 사로잡혔습니다.

262

[바다 건널 큰 배 제작]

종회와 사마소의 명으로 바다를 건널 수 있는 거대한 배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오나라 정벌을 위한 준비로 여겨졌으며, 당시로서 매우 진보된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262년, 종회와 사마소의 명에 따라 바다도 건널 수 있는 큰 배를 만들었습니다. 외부에서는 이를 오나라를 토벌하기 위한 군사적 준비로 여겼습니다.

263

[종회 연설에 언급]

유선이 항복하자, 종회가 강유와 촉의 관리들을 모아 연설하며 '당자는 포로가 된 후에도 항복하고 지금 정사에 참여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하며 그를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263년, 유선이 항복하자 종회에게 항복한 강유 및 촉의 관리들을 포로들 앞에서 종회가 연설했습니다. 이때 종회는 당자를 언급하며 "당자는 포위당해 포로로 붙잡힌 후에 항복하고도 지금 정사에 참여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걱정할 필요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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