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구검
군인, 장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1:01
관구검은 조위의 명장으로 공손연 토벌과 특히 고구려 원정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수도 환도성을 함락시키는 등 큰 공을 세웠습니다. 말년에는 사마사의 전횡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입니다.
237
[공손연 정벌 시도, 요하에서 좌절]
위나라 황제 조예의 지시를 받아 오환족과 선비족을 이끌고 공손연을 공격했지만, 공손연의 강력한 저항과 요하의 범람으로 인해 결국 후퇴했습니다.
관구검은 237년, 황제 조예의 명령을 받아 오환족과 선비족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 공손연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공손연의 맹렬한 저항과 더불어 장마철 요하의 범람으로 인해 진격을 멈추고 우북평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238
[사마의와 함께 공손연 정벌 성공]
사마의가 대군을 이끌고 공손연 정벌에 나서자, 관구검의 군대가 합류하여 요동의 공손씨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 공로로 그는 안읍후로 승진했습니다.
238년, 공손연이 연왕을 자칭하며 독립 의지를 천명하자, 위나라는 사마의를 4만의 대군과 함께 급파했습니다. 사마의는 우북평에 주둔하던 관구검의 군대를 휘하에 편입시켰고, 결국 공손연을 성공적으로 정벌하여 선비족과 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공손씨 정권을 붕괴시켰습니다. 이 큰 공으로 관구검은 안읍후로 승진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242
[고구려 침략에 맞서 첫 대규모 원정]
고구려가 위나라 영토를 공격하자, 관구검은 오환족과 선비족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습니다. 비록 초반에 고전했지만, 결국 고구려군 1만 8천 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고 수도 환도성을 함락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242년, 고구려가 서안평을 공격해오자, 유주자사 관구검은 오환족과 선비족 병력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습니다. 초기에는 비류수와 양맥곡에서 3천 명의 군사를 잃는 등 고전했지만, 이내 전세를 역전시켜 고구려군 2만 명 중 1만 8천여 명을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 승리로 고구려의 수도 환도성까지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244
[고구려 2차 원정, 동천왕 옥저로 도피]
관구검이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여 동천왕을 옥저로 도피시켰습니다. 이 원정은 고구려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관구검은 244년(정시 5년) 다시 고구려를 공격했고, 이에 고구려의 동천왕은 옥저로 피신했습니다. 이 공격은 고구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그 여파로 왕기의 추격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 원정 시점에 대한 기록은 여러 설이 있습니다.
245
[현도 태수 왕기의 동천왕 추격]
현도 태수 왕기가 동천왕을 옥저까지 추격했으나, 고구려 장수 유유와 밀우의 활약으로 동천왕은 무사히 탈출했습니다. 왕기는 부여를 거쳐 돌아왔다는 설도 있습니다.
245년(정시 6년), 관구검은 현도 태수 왕기를 보내 옥저로 피신한 고구려 동천왕을 추격하게 했습니다. 왕기는 부여에 들러 군량을 보급받았으나, 고구려 장수 유유와 밀우의 활약으로 동천왕은 위나라 군대의 추격에서 벗어나 철수한 관구검 뒤 환도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왕기의 회군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존재합니다.
250
[오나라 제갈각의 침공 방어]
위나라로 돌아온 후 진동도독으로 임명된 관구검은 양주에서 오나라 재상 제갈근의 아들인 제갈각의 침공을 막아냈습니다.
고구려 원정을 마치고 위나라로 돌아온 관구검은 진동도독으로 임명되어 양주(楊州)로 부임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오나라의 재상 제갈근의 장남이자 유능한 장수였던 제갈각이 이끄는 오나라 군대의 침공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습니다.
255
[사마사 전횡에 맞선 반란, 결국 비극적 최후]
사마사의 독단적인 권력 장악에 분노한 관구검은 문흠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문흠이 사마사에게 패배하자, 관구검은 야반도주하던 중 백성의 활에 맞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255년,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사마사의 전횡에 깊이 분노한 관구검은 문흠과 함께 '관구검·문흠의 난'이라는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문흠의 군대가 사마사에게 패배하자, 관구검은 군세가 약화된 채 야반도주를 선택했습니다. 도주하던 중 안풍진 도위부의 백성인 장속의 활에 맞아 사망했으며, 장속은 그의 목을 수도 낙양으로 보내 공을 인정받아 후(侯)에 봉해졌습니다. 그의 장남 관구전은 반사마씨 봉기를 일으켰다가 주살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