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월

정치인, 삼국지 인물, 후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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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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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삼국지 인물, 후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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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월(蒯越)은 후한 말 탁월한 지략을 지닌 정치인이자 형주 명사입니다. 대장군 하진의 동조연으로 관직에 나섰고 혼란스러운 형주를 유표가 평정하도록 구범의 꾀를 제시 이를 성공시켜 형주를 안정시켰습니다. 또한 조조에게 항복할 것을 설득하는 등 격변기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조조가 그를 얻은 것을 형주보다 더 기쁘다고 할 만큼 지략과 위풍당당함이 뛰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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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하진 휘하에서 관직 시작]

대장군 하진의 초청으로 동조연이 되어 환관 제거를 진언했으나, 하진이 머뭇거리자 미래를 예견하고 여양현령으로 물러났다.

대장군 하진이 괴월의 명성을 듣고 동조연으로 등용했다. 괴월은 환관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하진이 이를 망설이자 그의 불길한 미래를 직감하고 여양현령으로 자리를 옮겼다.

190

[형주 대책 논의 참여]

반동탁 연합군 궐기로 형주가 혼란에 빠지자, 후임 형주자사 유표가 괴량, 채모 등과 함께 대책을 논의하며 괴월의 지략을 구했다.

190년,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하고 장강 이남의 토호들이 할거하며 형주는 혼란에 휩싸였다. 후임 자사 유표는 병력이 없어 주도로 내려가지 못하고 남군 의성현에서 괴량, 괴월, 채모를 불러 모아 형주를 수습할 방안을 논의했다.

['구범의 꾀'로 형주 평정]

유표의 고민에 괴월은 난세에는 권모술수가 우선이라며, 토호들을 이익으로 유인해 무도한 자를 처단하고 나머지를 흡수하는 계책을 제시했다.

이 계책으로 강남 일대를 평정하고 번정후에 봉해지고 장릉태수가 되었다.

유표가 병력이 부족하고 토호들이 원술과 결탁할 것을 우려하자, 괴월은 "치세에는 인의, 난세에는 권모"라며 이익으로 우두머리들을 유인하여 무도한 자는 제거하고 나머지는 위무하고 등용하여 위엄과 덕망을 세울 것을 제안했다. 유표는 괴월의 계책을 채택, 각 토호들을 유인해 55인(또는 15인)을 참살하고 그 무리를 흡수했다. 양양에서 버티던 장호와 진생 또한 괴월의 설득으로 항복했다. 이 공으로 괴월은 번정후에 봉해지고 장릉태수가 되었다.

200

[조조 귀부 강력 권유]

원소와 조조가 격돌하던 관도대전 무렵, 유선, 한숭 등과 함께 유표에게 조조에게 귀부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으나 유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원소와 조조가 관도에서 대치하던 시기, 괴월은 별가 유선, 종사중랑 한숭과 함께 유표에게 조조에게 귀부할 것을 여러 차례 설득했다. 하지만 유표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8

[조조 항복 이끌어내 광록훈 임명]

조조가 형주로 남하하자, 유표의 후임 아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을 망설이자 한숭, 부손 등과 함께 유종을 설득하여 항복을 이끌어냈다.

그 공로로 광록훈에 임명되었다.

208년, 조조가 형주로 대규모 남하를 시작하자 마침 병으로 죽은 유표의 둘째 아들 유종이 뒤를 이었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자, 괴월은 한숭, 부손 등과 함께 유종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결국 유종은 조조에게 굴복하여 항복했고, 괴월은 그 공을 인정받아 광록훈이라는 고위 관직을 받게 되었다.

214

[병사, 조조에게 가문 당부]

214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죽기 전 조조에게 자신의 가문을 잘 보살펴 줄 것을 당부했다.

214년, 괴월은 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 조조에게 자신의 집안을 잘 보살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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