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초

중국, 삼국시대, 무장, 정치가

num_of_likes 69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52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중국, 삼국시대, 무장, 정치가
report
Edit

- 후한 말 혼란기에 원소와 조조를 섬긴 충직하고 강직한 무장이자 정치가. - 위험을 무릅쓰고 정의를 관철하며 뛰어난 언변과 정치 수완으로 오랑캐를 설득하고 격파하는 능력을 겸비. - 주군에게 흔들림 없는 충성심을 보여주며 존경받았던 인물. - 혼란의 시대 속에서 강단과 지략으로 빛을 발한 위나라의 명신.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89

[낙양 동란 속 악은 관 운구]

189년, 낙양 동란 중에 악은과 하묘가 죽자, 견초는 다른 문하생들과 함께 악은의 관을 들고 귀향하던 중 도적을 만났습니다. 도적들은 다른 문하생들을 죽였지만, 견초는 관을 붙잡고 간절히 부탁하여 용기를 인정받아 풀려났습니다.

중평 6년(189년), 낙양의 동란 속에서 스승 악은과 하묘가 죽자 견초는 다른 문하생들과 함께 악은의 관을 들고 귀향하려 했습니다. 도중에 도적을 만나 문하생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으나, 견초는 관을 붙잡고 애원하며 용기를 보여 도적의 감탄을 사 풀려났습니다.

202

[원소 사망 후 원상 옹립]

202년 5월, 견초가 섬기던 원소가 사망하자, 견초는 그의 삼남인 원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건안 7년(202년) 5월, 기주목 원소가 사망하자 견초는 원소의 삼남인 원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204

[조조에게 투항, 기주종사 부임]

204년, 조조가 업을 공격하자 원상은 견초를 고간에게 보내 군량 수송을 맡겼습니다. 원상이 불리해지자 견초는 고간에게 원상을 도울 것을 권했으나, 고간은 오히려 견초를 죽이려 했습니다. 견초는 이를 피하고 조조에게 투항하여 기주종사가 되었습니다.

건안 9년(204년), 조조가 업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원상은 견초를 사촌형 병주자사 고간에게 보내 군량 수송을 감독하게 했습니다. 원상이 전세에서 불리해지자 견초는 고간에게 원상을 도울 것을 권했으나, 자립을 꾀하던 고간은 이를 듣지 않고 오히려 견초를 은밀히 죽일 계획을 세웠습니다. 견초는 이를 눈치채고 간신히 피신했으나, 원상에게 돌아갈 길이 막히자 어쩔 수 없이 조조에게 투항하여 기주종사가 되었습니다.

[소복연 설득 및 한충 제압]

조조에게 투항한 직후, 견초는 조조의 명을 받아 유성에서 원담을 지원하던 소복연을 설득했습니다. 이때 공손강의 부하 한충이 공손강의 정통성을 주장하자, 견초는 크게 분노하여 한충을 제압하려 했습니다. 소복연의 만류로 살려주었으며, 견초의 설득 끝에 소복연은 조조에게 항복했습니다.

조조에게 투항한 지 얼마 안 되어, 견초는 조조에게 반기를 든 원담을 지원하던 소복연을 설득하기 위해 유성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유성에서 공손강의 부하 한충이 소복연에게 선우 인수를 수여하며 공손강의 정통성을 주장하자, 견초는 몹시 분노하여 한충의 머리를 땅에 박고 칼로 베려 했습니다. 소복연의 극심한 만류로 칼을 거두었고, 견초의 설득으로 소복연은 결국 조조에게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205

[군모연 및 오환교위 부임]

205년, 원담 토벌 후 견초는 군모연에 임명되었습니다. 이어서 오환 정벌에 종군하여 유성에서 오환교위로 부임하며 북방 이민족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건안 10년(205년), 원담이 토벌된 후 견초는 군모연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오환 정벌에 종군하여 유성에서 오환교위로 부임하며 북방 이민족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207

[원상에 대한 충절 발휘]

207년, 공손강이 원상과 원희를 죽여 수급을 보내자, 조조는 원상을 위해 곡하는 자를 참수하겠다고 엄명했습니다. 하지만 견초는 원상의 수급을 보고 슬피 울며 제사를 지냈고, 조조는 그의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벌하지 않고 오히려 무재로 천거했습니다.

건안 12년(207년), 공손강이 원상과 원희를 죽이고 그 수급을 조조에게 보냈습니다. 조조는 원상을 위해 감히 곡하는 자는 참수하겠다고 엄명을 내렸지만, 견초는 원상의 수급을 보고 슬피 울며 그 머리 아래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조조는 이러한 견초의 충절을 높이 기려 그를 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무재로 천거하여 그의 인품을 인정했습니다.

215

[한중 정벌 종군 및 새 직책 임명]

215년, 견초는 한중 정벌에 종군하여 전공을 세웠습니다. 평정 후 조조에 의해 중호군으로 임명되어 사무를 맡았고, 임무를 마친 뒤 업으로 돌아와 평로교위 겸 도독청서주제군사로 임명되며 중요한 군사 직책을 수행했습니다.

건안 20년(215년), 견초는 한중 정벌에 종군했습니다. 한중이 평정된 후 조조에 의해 중호군에 임명되어 중요한 사무를 처리했습니다. 이 임무를 끝마친 후 업으로 돌아와서는 평로교위 겸 도독청서주제군사로 임명되며 군사 및 행정 분야에서 더 큰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220

[조비 즉위 후 호선비교위 부임]

220년, 조비가 즉위하자 견초는 사지절호선비교위가 되어 창평에 주둔했습니다. 그는 한족과 이민족을 가리지 않고 귀순하는 자들을 모두 포용하는 관대한 정치를 펼쳤습니다.

황초 원년(220년), 조비의 즉위와 함께 견초는 사지절호선비교위로 임명되어 창평에 주둔했습니다. 그는 한족과 이민족을 차별하지 않고 귀순하는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는 관대한 정책을 펼쳐 민심을 얻었습니다.

[우중랑장 겸 안문태수, 가비능 격파]

220년 이후, 견초는 우중랑장 겸 안문태수가 되어 뛰어난 정치 수완을 발휘했습니다. 또한 운중군에서 선비족의 대인 가비능을 격파하며 군사적 역량도 입증했습니다.

조비 즉위 이후, 견초는 우중랑장 겸 안문태수로 임명되어 뛰어난 정치 수완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운중군에서 선비족 대인 가비능을 격파하는 군사적 업적을 세우며 다방면에서의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226

[조예 즉위 후 관내후에 봉해짐]

226년, 조예가 즉위하자 견초는 관내후에 봉해졌습니다. 이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는 위나라 조정의 조치였습니다.

황초 7년(226년), 조예가 즉위하면서 견초는 관내후에 봉해져 그의 공적에 대한 정식적인 예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228

[전예 구원 및 가비능 격파, 사망]

228년, 견초는 호오환교위 전예가 선비족 가비능에게 포위당하자 군사를 이끌고 구원하여 가비능을 격파했습니다. 이후 제갈량과 연대한 가비능을 완전히 토벌하려 계획하던 중 사망했습니다.

태화 2년(228년), 호오환교위 전예가 마읍성에서 선비족 가비능에게 포위되자, 견초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전예를 구원하며 가비능을 격파했습니다. 그 후, 촉의 제갈량과 제휴를 맺은 가비능을 완전히 토벌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던 도중 생을 마감했습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