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북벌
군사 작전, 역사적 사건, 중국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50
촉한의 승상 제갈량이 227년부터 234년까지 위나라를 상대로 진행한 대규모 군사 작전입니다. 유비의 유지를 이어 한나라 황실 부흥과 중원 정벌을 목표로 삼았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전술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는 위나라의 우위로 끝났습니다. 제갈량은 북벌 도중 사망하며 삼국시대의 한 획을 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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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 시작 명분]
촉한의 승상 제갈량이 유비의 뜻을 이어 위나라 정벌을 다짐하며, 후주 유선에게 명문인 '출사표'를 올리고 북벌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기존 대전략 '융중대'가 형주 공방전과 이릉 대전으로 폐기된 상황에서, 제갈량은 유비의 유지를 계승하여 위나라를 정벌하고 옛 황도를 수복하겠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이는 촉한의 생존과 정통성을 위한 필수적인 군사 정책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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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북벌 개시]
제갈량은 위연의 급습 제안을 기각하고 신중한 접근을 택해 조운의 양동 작전과 함께 기산로를 통해 위나라의 서쪽 끝 천수와 안정을 공략하려 제1차 북벌을 시작했습니다.
위나라는 조예가 직접 방어에 나서고 조진, 장합 등을 파견하여 맞섰습니다.
촉군은 기산로 북단의 중요 보급 거점인 가정을 선점하려 했으나, 마속의 치명적인 실수로 산꼭대기에 진영을 설치하여 장합군에 의해 포위, 궤멸되었습니다. 위연의 구원 시도도 곽회의 방해로 무산되었고, 결국 촉군은 가정에서 퇴각하며 북벌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제갈량은 패전 책임을 지고 승상직에서 강등되었고, 마속은 처형당했습니다. 이때 천수 지역 호족인 강유가 촉에 망명하게 됩니다.
[제2차 북벌 개시]
제1차 북벌 실패 직후, 위나라가 동부 전선에 집중하는 틈을 타 제갈량은 속전속결을 위해 기곡도를 통해 전략 요충지인 진창을 공격하며 제2차 북벌을 감행했습니다.
촉군은 2만에서 10만에 이르는 압도적인 병력으로 공격했으나, 학소의 끈질긴 방어로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습니다.
학소는 운제, 충차 등 온갖 공성병기를 동원한 촉군의 공격을 불화살과 돌절구를 던져 막아내는 등 1천 명의 병력으로 끈질기게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3주 뒤 장합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군량이 떨어진 제갈량은 퇴각해야 했으며, 퇴각 중 장합의 부장 왕쌍이 매복에 걸려 사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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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은 촉한의 오호대장군 중 한 명으로, 유비를 오랜 기간 보좌하며 수많은 전투에서 활약했던 촉한의 기둥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북벌을 추진하던 제갈량에게 큰 손실로 작용했습니다.
[제3차 북벌 개시]
제갈량은 무도와 음평을 공략하기 위해 진식을 파견하며 제3차 북벌을 시작했습니다.
곽회가 이를 견제하려 했으나, 제갈량 본대가 건위로 향한다는 소식에 퇴각했습니다.
위나라가 무도와 음평에 구원군을 보내지 않자, 이 두 군은 촉한에 귀속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제갈량은 승상직에 복귀했으나, 위나라가 해당 지역의 주민과 가축을 모두 데려가 전략적 가치는 크지 않았고, 결국 촉군은 다시 한중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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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의 한중 공세]
위나라가 대사마 조진과 사마의의 지휘 아래 40만 대군을 이끌고 한중을 대대적으로 공격하며 설욕전을 시작했습니다.
촉한은 200km 길이의 방어선을 구축하고 10만 병력을 배치하여 맞섰습니다.
위연과 오의가 위나라 영토의 비한족 이민족을 선동하려 방어선을 넘었으나, 30일 이상 계속된 심각한 호우로 진격이 지지부진해지자 위나라는 공격을 포기하고 퇴각했습니다. 퇴각하던 중 위연은 곽회를 격파하는 성과를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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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차 북벌 개시]
제갈량이 선비족과 강족에 위나라 준동을 지시한 후, 기산로의 상규를 공략하며 제4차 북벌을 시작했습니다.
사마의가 본대를 이끌고 기산으로 향했고, 제갈량은 사마의 도착 전에 상규를 제압하려 했습니다.
이 전투에서 제갈량은 사마의와의 격전 끝에 대승을 거두며 중원 정벌에 대한 기대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부하 배신과 헛소문으로 인해 결국 성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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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북벌 개시]
제갈량은 생애 마지막으로 중원 점령을 목표로 제5차 북벌을 감행, 오장원에 진을 치고 둔전을 시행하며 북원, 가정, 천수 공략 계책을 세웠습니다.
사마의가 이를 간파하며 대치가 이어졌습니다.
맹염의 부대가 사마의에 대항했으나 승리하지 못했으며, 곽회가 제갈량의 성동격서 계책을 간파하여 장기적인 대치 상황이 지속되었습니다. 결국 제갈량은 병세가 악화되어 이 대치 중에 사망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촉한은 성도로 철수하며, 양의와 위연 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제갈량이 이끌던 북벌은 중단되었고, 촉한은 성도로 퇴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삼국시대의 큰 전환점이자, 제갈량의 끊임없는 중원 수복 의지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이후 촉한 내부에서는 양의와 위연 간의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