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왕조, 고대 국가, 중국 역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49
• 외척 왕망의 전한 찬탈 후 광무제 유수가 건국한 한 왕조의 부흥. • 낙양에 도읍하여 동한으로도 불림. • 세계 최초의 종이 발명 등 문화·과학기술이 번성하고 실크로드 개척. • 외척과 환관의 권력 다툼으로 정치 혼란과 백성들의 삶 피폐. • 황건적의 난 이후 군벌들의 힘이 커지며 결국 삼국시대로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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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건국]
전한이 왕망에 의해 찬탈된 후, 황실 후예인 광무제 유수가 왕망을 타도하고 군웅들을 평정하여 한 왕조를 부흥시키며 후한을 건국했다.
외척 왕망이 전한을 찬탈한 이후, 황실의 후예인 광무제 유수가 왕망을 타도하고 군웅들의 할거를 모두 평정해 한 왕조를 부흥시킨 국가가 건국되었다. 유수는 경시제 휘하에서 곤양 전투에서 활약했고, 왕망과 하북 군웅들을 격파, 무능한 경시제와 적미군을 굴복시켜 후한 왕조를 창업했다. 광무제는 선정을 베풀어 후한 왕조의 기틀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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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도참 사상 공포]
광무제가 천하에 도참(예언이나 주문에 사용되던 신비적인 언어)을 널리 공포하며 유학의 신비주의를 강화했다. 이는 왕망이 이용했던 부명(符命)의 예언설과 함께 한실 부흥에 활용되었다.
이미 전한 말에는 음양오행설을 원리로 삼는 갖가지 천인감응 사상에 의하여 유가의 경서를 해석하고 있었지만, 시류의 유자(금문학자)는 한층 권력에 영합키 위해 공자의 저작으로 가탁한 위서(비서)를 만들어 경학을 신비주의로 감쌌다. 기원후 광무제가 도참을 천하에 공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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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초, 실크로드 개척]
반초가 서역의 여러 나라들과의 교역길을 열어 끊어졌던 실크로드를 다시 개척함으로써, 후한의 대외 교류를 확대하고 경제적 번영을 이끌었다.
반초(班超)가 서역의 여러 나라와의 교역길을 열어 실크로드를 다시 개척하였다. 이는 후한과 서방 세계 간의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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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관 회의 개최 및 금문학 우위 보증]
장제(章帝)가 백호관에서 학자들을 모아 5경의 국정 해석을 논의하여, 전한 이래 금문학의 우위를 공식적으로 보증했다. 이는 한 왕조 정책 운용에 적합한 이론을 제공하던 금문학의 학술적 권위를 강화했다.
장제(章帝)가 학자를 백호관(白虎觀)으로 모아놓고 5경(五經)의 국정 해석(國定解釋)을 토의시켜 전한 이래의 금문(今文)학의 우위를 보증하였다. 이는 금문이 춘추공양전을 근거로 한왕조의 정책 운용에 적응한 이론을 제공하여 학관(오경박사)을 독점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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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륜, 세계 최초 종이 '채후지' 발명]
채륜이 세계 최초로 종이 '채후지'를 발명하여 기록 문화를 혁신했다. 이는 후한 시대 문화 번영의 상징이자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발명이다.
후한 시대, 채륜(蔡倫)이 나무껍질, 삼베 조각, 낡은 그물, 넝마 등을 사용하여 현재와 같은 종이를 만들어 황제에게 바쳤다. 이는 기록 문화를 혁신하고 인류 문명 발전에 크게 기여한 세계 최초의 종이로, '채후지'라 불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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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 지동의 발명 및 혼천의 제작]
후한 시대 과학자 장형이 지진을 감지하는 세계 최초 지동의를 발명했으며, 혼천의를 제작하는 등 과학 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는 후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준다.
후한 시대에는 장형(張衡)이 혼천의(천체 운행 관측 기구)와 지동의(지진 감지 기구)를 만드는 등 문화가 번창하였다. 특히 지동의는 세계 최초의 지진계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발명은 후한 시대의 뛰어난 과학 기술력을 상징한다.
166
[로마 제국 사신, 후한 방문]
로마 제국의 사신이 처음으로 후한을 방문하여, 동서양 문명 간의 직접적인 교류가 시작되었음을 알렸다. 이는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166년 로마 제국의 사신이 처음으로 한나라를 방문하였다.
182
[하휴, 춘추학 완성]
후한 말기의 학자 하휴가 훈고학적 방법론을 통해 춘추학을 완성시켰다. 이는 금문 경학 연구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후한말이 되어 하휴(何休, 129~182)는 훈고의 형식에 의하여 춘추학을 완성시켰다.
184
[황건적의 난 발발]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장각이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정부군과 군벌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후한 조정의 권위를 더욱 약화시키고 군벌들의 힘을 키워 삼국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정국이 점차 어지러워지는 틈을 타 장각(張角)이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다. 결국 이 난은 정부군과 조정을 지지하는 군벌에 의하여 제압되기는 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각지에서 할거하던 군벌들의 힘은 강화된 반면, 후한 조정의 권위는 더욱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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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탁의 낙양 입성 및 군웅 할거 시작]
동탁이 낙양에 입성하여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며 황실을 장악했다. 이는 후한의 권위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본격적인 군웅 할거 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양주(凉州)의 군벌이었던 동탁(董卓)이 낙양(洛陽)에 입성하여 소제(少帝)를 폐위시키고, 헌제(獻帝)를 추대함으로써 본격적인 군웅 할거 시대가 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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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원소 격파 및 화북 장악]
조조는 헌제를 보위하며 권력을 강화했고, 숙적 원소를 관도대전에서 격파하며 화북과 화중의 일부를 차지했다. 이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조조(曹操)는 헌제를 보위하는 데 성공하고, 숙적 원소(袁紹)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며 화북과 화중의 일부를 차지한다. 특히 관도대전에서의 승리는 조조가 북방을 통일하고 위나라 건국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정현, 금고문 예학 통합]
후한 말기의 학자 정현이 참위설을 포함하여 금문과 고문 경학의 예학을 통합하며 위진 시대 이후 경학의 일대 종주로 자리매김했다.
후한말이 되어 정현(鄭玄)은 참위설도 살려가며 금고문의 예학을 통합함으로써 위진(魏晋) 이후의 경학의 일대 종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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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멸망, 위(魏) 건국]
조조의 아들 위 문제 조비에게 헌제가 제위를 넘겨주며 후한 왕조가 멸망하고 위나라가 건국되었다. 이로써 400여 년간 이어졌던 한 왕조의 시대가 완전히 막을 내리고 삼국시대가 본격화되었다.
조조의 아들인 위(魏)의 문제(文帝) 조비에게 헌제가 제위를 넘겨주며 후한 왕조는 멸망하였다. 이는 400여 년간 이어져 온 한나라 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삼국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