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주 공방전

전투, 군사 작전,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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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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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군사 작전,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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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과 유비의 연합이 깨지고 동오가 형주를 차지한 삼국시대의 결정적 전투입니다. 촉한 관우의 비극적인 죽음과 유비의 대패로 이어져 삼국 정립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한실 부흥의 꿈을 꺾고 천하가 위 촉 오 셋으로 굳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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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익양 대치와 형주 분할]

손권의 형주 남부 공략에 맞서 유비가 관우를 돕기 위해 5만 병력을 이끌고 익양으로 진군합니다.

손권의 대장 노숙과 관우가 일대일 회담을 벌이지만, 이 대치는 조조가 한중을 점령하며 흐지부지됩니다.

결국 유비와 손권은 상수를 경계로 형주를 나누는 합의를 통해 일시적으로 갈등을 봉합합니다.

유비는 관우를 돕기 위해 직접 5만 대군을 이끌고 익양으로 나섰고, 관우는 노숙과의 담판에서 노숙의 논리에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조조가 한중을 공략하며 유비의 익주 방어선이 위협받자, 유비는 손권과의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상수를 경계로 형주를 분할하는 강화 협정을 맺게 됩니다. 이로써 관우가 지키던 형주 관할 구역이 축소됩니다.

[형주 반환 논란]

적벽대전 후 유비에게 빌려줬던 형주를 돌려달라는 손권과, 익주를 점령하면 돌려주겠다고 버티는 유비 사이에 팽팽한 신경전이 시작됩니다.

손권은 노숙의 유비 견제론에 따라 형주 남부 3군을 무력으로 빼앗으며 압박을 가합니다.

적벽대전 승리 후, 유비는 주유에게서 공안을 얻고 강릉까지 임대받으며 형남 4군까지 차지합니다. 처음에는 유비의 성장을 묵인했던 손권이었으나, 유비가 익주를 손에 넣자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손권은 형주 반환을 요구했고, 유비는 옹량주를 병합한 후에 돌려주겠다고 회피하며 양측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손권은 여몽을 시켜 영릉, 장사, 계양을 빼앗으며 유비를 압박합니다.

219

[관우의 북벌과 번성 포위]

한중을 점령한 유비가 북벌의 기틀을 마련하자, 관우는 형주에서 번성을 향해 진격합니다.

때마침 내린 기록적인 홍수로 위나라 명장 우금과 방덕의 7군이 수몰되는 행운이 따르며, 관우는 이들을 격파하고 세계최초로 수공(水攻)을 성공시키며 번성을 포위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의 무용은 천하를 진동시킬 정도였습니다.

유비가 한중을 차지한 기세를 이어받아, 관우는 제갈량의 융중대책을 곡해하여 자신이 주도하는 대규모 북벌을 감행합니다. 초기에는 예상치 못한 홍수로 인해 위나라의 우금과 방덕이 이끄는 7군이 전멸하는 행운을 잡고, 이들을 물리치며 조인이 수비하는 번성을 포위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조인과 만총이 번성을 굳건히 지키자, 관우는 형주 방어병력까지 동원하게 됩니다.

[여몽의 형주 기습 작전]

관우가 번성을 포위하며 승승장구하는 사이, 손권은 명장 여몽을 시켜 허를 찌르는 형주 기습 작전을 실행합니다.

여몽은 소수의 병력을 상인으로 변장시켜 잠입시키고, 관우에게 불만이 많던 미방과 부사인을 회유하여 관우의 본거지 형주를 손쉽게 점령합니다.

관우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묵살하며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릅니다.

조조는 손권의 동오군이 움직이도록 유인책을 썼고, 손권은 여몽을 시켜 형주 수비병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소수 병력을 상인으로 위장시켜 몰래 잠입시킵니다. 관우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미방과 부사인은 손권과 내통하여 손쉽게 항복했고, 형주 본토는 속수무책으로 함락됩니다. 조조는 손권의 약속대로 이 사실을 관우에게 통보했지만, 관우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묵살하며 큰 오판을 저지릅니다.

[관우와 관평의 최후]

뒤통수를 맞은 관우의 군대는 형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에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수많은 병사들이 이탈합니다.

결국 관우는 불과 수백 명의 병력만 이끌고 맥성으로 고립됩니다.

탈출을 시도하지만 임저에서 손권의 매복에 걸려 아들 관평과 함께 사로잡히고, 손권 앞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합니다.

관우의 본거지인 형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번성을 포위하던 촉한 군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지고 병사들은 고향으로 이탈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관우는 병력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로 맥성으로 후퇴하여 농성합니다. 탈출을 시도하던 관우와 아들 관평은 임저에서 반장의 부하 마충의 매복에 걸려 사로잡혔고, 오나라 왕 손권의 명에 따라 함께 참수당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로써 촉한의 오호대장군이자 유비의 의형제였던 관우의 시대가 막을 내립니다.

222

[유비의 이릉 대전 참패]

관우의 죽음과 형주 상실에 분노한 유비는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손권을 치러 나섭니다.

초기에는 승리하는 듯했으나, 육손의 지연전과 기상천외한 화공(火攻)에 당해 백만 대군이 거의 전멸하는 역사적 참패를 겪고 백제성으로 도망칩니다.

이 전투는 유비의 삼국 통일 꿈을 완전히 꺾어버렸습니다.

관우의 복수를 위해 유비는 221년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동오를 침공합니다. 초반에는 우세한 전력을 바탕으로 승리를 거두었으나, 육손은 이를 간파하고 지연전술을 펼치며 유비의 군대를 피로하게 만듭니다. 결국 222년 여름, 육손은 유비군이 숲과 강변을 따라 진을 길게 늘어뜨린 약점을 포착하여 대규모 화공을 감행합니다. 이로 인해 유비의 대군은 거의 전멸했고, 유비는 겨우 몸만 피하여 백제성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이릉대전의 참패는 촉한의 국력을 크게 약화시키고, 유비의 천하 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을 좌절시켰습니다.

223

[유비의 백제성 최후와 삼국 정립]

이릉대전의 충격과 병세 악화로 유비는 백제성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의 죽음과 형주 공방전의 결과는 위, 촉, 오 삼국의 균형을 굳건히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이로써 후한 말의 혼란이 종식되고 본격적인 삼국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이릉대전의 충격으로 병을 얻은 유비는 백제성에서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223년 문무백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후사를 제갈량에게 부탁하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한편 형주 공방전 직후 조조도 사망하고, 그의 아들 조비는 후한 헌제에게서 제위를 선양받아 위나라를 건국합니다. 이 모든 사건들은 형주 공방전의 영향 아래, 촉한의 기틀을 흔들고 후한 말 30여 년의 혼란기를 종식시키며 위, 촉, 오 세 나라가 천하를 삼분하는 삼국시대를 확고히 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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