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충

정치가, 장군, 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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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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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장군, 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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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나라 말기부터 서진 건국에 이르기까지 사마씨 정권의 핵심 실세. - 위 황제 조모 시해에 깊이 관여하며 사마소의 신임을 얻음. - 사마염의 황제 즉위를 적극 추진하고 서진의 기틀을 다진 진율령 편찬에 참여. - 오나라 토벌 총사령관을 맡아 삼국 통일에 기여한 인물. - 그의 딸 가남풍의 행보가 서진 멸망의 씨앗인 팔왕의 난을 촉발시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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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위나라 가충 탄생]

위나라의 무장이자 정치가 가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늦둥이로 태어난 까닭에 이름이 '충'이라 지어졌다.

평양군 양릉현 출신이다.

258

[제갈탄 반대세력 제거]

일찍부터 사마씨 세력에 가담한 가충은 사마씨에게 반감을 표한 제갈탄을 직접 찾아가 제거하며 사마소의 신임을 얻기 시작했다.

260

[위 황제 조모 시해 주도]

사마소의 명을 받아 황제 조모를 시해하는 중대한 사건을 주도했다.

성제로 하여금 조모를 죽이게 한 그는 이 일로 죽음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사마소의 비호로 살아남아 더욱 깊은 신임을 얻게 되었다.

진태는 가충을 죽일 것을 요구했으나, 사마소는 그를 죽이지 않았다.

265

[사마염 황제 등극 조력]

사마소 사후 후계자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충은 사마염을 적극 추천했다.

이후 사마염이 진왕이 되자 그에게 위나라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황제가 될 것을 강력히 권유하며 서진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66

[서진 고위직 및 외척 기반 다짐]

사마염이 황제가 되자 고위직에 오르고, 두 딸을 태자 사마충과 제왕 사마유의 비로 보내며 외척으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또한 거기장군 상서복야로서 순욱, 두예, 장화 등과 함께 서진의 법률인 『진율령』 편찬에 참여하며 국가 기틀을 마련했다.

280

[오나라 토벌 총사령관]

양호가 건의한 오나라 토벌전에 강력히 반대했으나, 장화의 꾸짖음에 반박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오나라 토벌의 총사령관을 맡아 서진의 삼국 통일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손호와의 논쟁 및 노공 봉해]

오나라 황제 손호가 항복하자, 가충은 그의 잔혹한 통치를 질책했다.

하지만 손호는 오히려 가충에게 위나라 황제 조모 암살을 지적하며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통일 직후 그는 노공에 봉해지고 무공이라는 시호를 받으며 공적을 인정받았다.

282

[가충 별세]

진나라의 핵심 공신 가충이 향년 65세로 사망했다.

291

[딸 가남풍의 난 촉발]

가충의 딸 가남풍은 혜제의 황후가 되어 전횡을 일삼았고, 이는 서진을 멸망의 길로 이끈 '팔왕의 난'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이는 가충 사후에도 그의 가문이 서진 역사에 미친 지대한 영향력을 보여준다.

가충의 두 딸은 각각 태자비와 제왕비가 되었는데, 특히 태자비 가남풍은 혜제(惠帝)의 황후가 된 후 심한 횡포를 부려 팔왕의 난이 발생했고, 이는 서진 멸망의 씨앗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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