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릉의 변
역사적 사건, 정치 변동, 위진교체기, 쿠데타
최근 수정 시각 : 2026-01-29- 15:58:10
고평릉의 변은 위나라의 권력이 조씨 황실에서 사마씨 가문으로 완전히 이동하게 된 결정적인 정치적 분수령입니다. 황제 조예 사후 보정 대신으로 임명된 조상과 사마의의 팽팽한 대립은, 조상의 권력 독점과 사마의의 치밀한 인내가 빚어낸 극적인 정변으로 결말을 맺었습니다. 사마의가 노환을 위장해 적을 방심시킨 뒤 단 한 번의 기습으로 낙양을 장악한 이 사건은, 조위 황실의 몰락과 서진 왕조 탄생의 실질적인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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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제 조예의 붕어]
위나라의 제2대 황제인 명제 조예가 어린 아들 조방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 조상과 사마의를 불러 조방을 보좌할 보정 대신으로 임명했습니다. 이 결정은 장차 위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을 두 세력의 위태로운 동거를 시작하게 했습니다.
조예는 침소로 조상과 사마의를 불러 조방의 손을 잡게 하며 충성을 맹세하게 했습니다.
본래 보정 대신 후보는 더 많았으나 조씨 종친인 조상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사마의와의 양강 체제가 형성되었습니다.
황제의 죽음은 조위 정권 내부의 권력 균형이 깨지는 서막이 되었으며 두 가문의 운명적인 대결을 예고했습니다.
[조상의 대장군 취임]
종친인 조상이 대장군에 임명되어 위나라의 군사권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황제의 친척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조정의 실권을 빠르게 흡수했습니다. 사마의는 태위로 임명되었으나 실질적인 병권에서는 조금씩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조상은 권력을 잡자마자 자신의 동생들인 조희와 조훈 등을 요직에 배치하여 친정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는 사마의를 존경하는 척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를 견제하기 위한 인사 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조상 주위에 하안, 등양, 이승 같은 측근들이 모여들며 새로운 권력 집단을 형성했습니다.
[사마의의 태부 추대]
조상은 사마의를 명예직인 태부로 추대하여 그의 실무 권한을 교묘하게 박탈했습니다. 겉으로는 원로를 예우하는 형식을 취했으나 실제로는 정치적 영향력을 줄이려는 의도였습니다. 사마의는 이러한 조상의 의도를 간파하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태부는 삼공보다 높은 지위였지만 실질적인 군대 지휘권이나 행정 결정권은 없는 자리였습니다.
사마의는 조상의 제안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임으로써 그가 방심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조상은 사마의가 정계 은퇴의 길로 들어섰다고 판단하고 더욱 거침없이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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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일파의 전횡 시작]
조상의 측근인 하안과 등양 등이 조정의 법도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황제의 명을 사칭하거나 매관매직을 일삼으며 관료 사회의 불만을 샀습니다. 위나라의 정치는 극도로 부패해졌으며 원로 대신들의 소외감은 깊어갔습니다.
하안 등은 유학보다는 노장 사상에 심취하여 국정을 돌보기보다는 풍류와 사치를 즐겼습니다.
이들은 자신들과 뜻이 다른 신하들을 가차 없이 축출하며 조정 내부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사마의는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며 조상 세력의 자멸을 유도하는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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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곡 대전의 패배]
조상은 자신의 군사적 업적을 세우기 위해 촉나라 정벌을 무리하게 강행했습니다. 하지만 험난한 지형과 보급 문제로 인해 대군을 잃고 비참하게 패퇴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조상의 군사적 권위는 실추되었고 백성들의 원성은 높아졌습니다.
사마의는 보급의 어려움을 들어 출정을 반대했으나 조상은 이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공격을 개시했습니다.
수많은 병사와 군마가 좁은 계곡에서 목숨을 잃었으며 위나라의 국력은 크게 낭비되었습니다.
이 패배는 조상에 대한 대신들의 불신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마의의 통찰력이 다시금 조명받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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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의 병가와 은둔]
사마의는 병을 핑계로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 집 안에 은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조상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중병에 걸린 것처럼 행동하며 철저히 자신을 숨겼습니다. 조상은 사마의가 이제 죽음만을 앞두고 있다고 믿고 경계를 늦추었습니다.
사마의는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으며 가족들조차 그의 진심을 알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연기했습니다.
그는 조정의 소식을 듣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오직 건강 회복에만 전념하는 척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사마의는 비밀리에 자신의 아들들과 함께 거병을 위한 결사대를 조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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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의 문병과 연기]
조상의 심복인 이승이 형주 자사로 부임하기 전 사마의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집을 방문했습니다. 사마의는 죽을 날이 머지않은 노인처럼 행동하며 이승을 완벽하게 속였습니다. 이 보고를 받은 조상은 사마의에 대한 모든 의심을 거두었습니다.
사마의는 죽을 마시는 도중 흘리거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그는 이승에게 엉뚱한 대답을 하며 정신이 혼미한 척 연기하여 이승의 동정심을 자극했습니다.
이승은 조상에게 돌아가 '사마의는 이제 시체나 다름없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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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과 측근들의 처형]
사마의는 조상 형제와 하안, 등양, 이승 등 측근들을 반역죄로 몰아 처형했습니다. 이들의 삼족을 멸하는 가혹한 처벌이 내려져 조씨 종친 세력은 사실상 궤멸되었습니다. 사마의는 맹세를 어기고 정치적 숙적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했습니다.
처형된 인물들 중에는 지혜로운 참모였던 환범도 포함되어 있어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조상의 일가는 갓난아이까지 모두 죽임을 당했으며 그들의 재산은 국고로 몰수되었습니다.
이 대숙청을 통해 사마의는 위나라 조정에서 자신을 반대할 세력을 완전히 없앴습니다.
[사마의의 승상 취임 거절]
황제 조방은 정변 이후 사마의를 승상으로 임명하고 구석을 내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마의는 겉으로는 겸손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극구 사양했습니다. 그는 관직보다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사마의는 세 번이나 황제의 명을 거절하며 자신이 오직 위나라를 위해 정변을 일으켰음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조정의 모든 문서는 사마의의 결재를 거쳐야 했으므로 직함은 무의미했습니다.
그는 태부의 자리에 머물면서도 황제보다 강력한 권위를 행사하는 실권자가 되었습니다.
[고평릉 행차와 기회]
어린 황제 조방과 조상 형제가 명제의 묘소인 고평릉으로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낙양을 떠났습니다. 이는 낙양 내에 조상의 군사력이 가장 약해진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사마의는 수년간 준비해온 정변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상은 환범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낙양 근처이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가볍게 떠났습니다.
이날은 음력으로 정월 갑오일이었으며 사마의에게는 일생일대의 도박이 시작되는 날이었습니다.
사마의는 조상이 성문을 나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병석에서 일어나 갑옷을 입었습니다.
[사마의의 전격 거병]
사마의는 죽음을 앞둔 노인에서 노련한 장수로 변모하여 낙양 시내를 장악했습니다. 그는 아들 사마사와 사마소에게 미리 준비시킨 3천 명의 정예병을 동원했습니다. 낙양의 주요 성문과 무기고는 순식간에 사마씨 일가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사마사는 훗날을 위해 비밀리에 3천 명의 '사병'을 육성해왔으며 이들이 정변의 핵심 전력이 되었습니다.
사마의는 먼저 곽태후의 거처를 방문하여 조상의 죄상을 알리고 그의 관직을 박탈한다는 조서를 받아냈습니다.
시민들은 갑작스러운 군대의 등장에 당황했으나 사마의의 엄격한 통제로 큰 혼란은 없었습니다.
[낙수 부교 점령]
사마의는 낙수를 가로지르는 부교에 주둔하며 낙양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차단했습니다. 그는 조상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올 것에 대비해 배수진을 쳤습니다. 또한 조정의 원로대신들을 설득하여 자신의 정변에 정당성을 부여했습니다.
고유와 사마부 등 원로대신들은 평소 조상의 전횡에 불만이 많아 사마의에게 협력했습니다.
사마의는 부교 위에서 엄숙하게 군대를 지휘하며 조상이 항복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했습니다.
이로써 조상은 황제를 모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도로 돌아갈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조상에게 전해진 비보]
고평릉에 있던 조상에게 사마의가 거병하여 낙양을 점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조상은 믿었던 사마의의 배신에 큰 충격을 받고 패닉 상태에 빠졌습니다. 그는 황제를 끼고 싸울지 아니면 투항할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조상은 즉시 군대를 소집했으나 낙양에 남겨진 가족들의 안전 때문에 망설였습니다.
황제 조방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이때 대사농 환범이 낙양을 탈출하여 조상의 진영에 도착하면서 정국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환범의 허창 천도 제안]
환범은 조상에게 황제를 모시고 허창으로 이동하여 전국의 군대를 소집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는 조상이 대장군의 인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조상은 환범의 지혜로운 전략을 받아들일 결단력이 부족했습니다.
환범은 '천하의 군권이 당신 손에 있고 식량도 충분하니 허창에서 반격하자'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조상은 자신의 재산과 지위가 박탈될 것을 더 두려워하며 우유부단하게 행동했습니다.
환범은 조상의 어리석음을 보고 '조진 장군처럼 훌륭한 아버지에게서 어찌 이런 돼지 같은 아들이 나왔는가'라며 탄식했습니다.
[사마의의 투항 권고]
사마의는 조상에게 사신을 보내 관직만 내려놓으면 생명과 재산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낙수의 물을 가리키며 자신의 맹세가 결코 거짓이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조상은 사마의의 이 부드러운 유혹에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마의는 조상의 측근이었던 허윤과 진태를 보내 그를 안심시켰습니다.
또한 조상이 신뢰하던 윤대목을 보내 사마의가 오직 권력의 정상화만을 원한다고 거짓 전언을 보냈습니다.
조상은 이들의 말을 믿고 부귀영화라도 누릴 수 있다면 투항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상의 항복 선언]
조상은 결국 무기를 버리고 사마의에게 항복하여 낙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나는 여전히 부유한 노인으로 살 수 있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환범을 비롯한 참모들은 이 어리석은 결정에 절망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조상은 대장군의 인장을 사마의에게 넘겨주며 자신의 패배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는 낙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족들을 만날 생각뿐이었으며 사마의의 간계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조위 황실의 마지막 보루였던 조상의 권력은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가택 연금과 감시]
낙양에 도착한 조상은 즉시 자신의 저택에 연금되었으며 엄격한 감시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마의는 조상의 집 주변에 높은 망루를 세워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습니다. 조상은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조상은 사마의에게 음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나 사마의는 이를 조롱하듯 보냈습니다.
집안의 하인들까지 모두 사마의의 첩자로 바뀌어 조상은 철저히 고립되었습니다.
사마의는 조상을 살려둘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으며 처형을 위한 명분을 쌓고 있었습니다.
[하안의 반역 수사]
사마의는 조상의 측근인 하안에게 조상의 반역 음모를 수사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하안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친구들과 동료들을 배신하고 억지 죄명을 조작했습니다. 하지만 사마의의 목표에는 하안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안은 조상과 연루된 7개의 가문을 조사하여 보고했으나 사마의는 '아직 한 가문이 남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남은 한 가문이 바로 하안 자신의 가문임을 깨달은 하안은 얼굴이 창백해졌습니다.
사마의는 조상 일파를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 이들을 반역죄로 엮어 처형할 계획을 완성했습니다.
[위씨 일가의 대대적 숙청]
조상과 친분이 있었던 수많은 관료와 지방 군벌들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사마의는 이 기회에 위나라의 구세력을 일소하고 사마씨의 인물들을 대거 등용했습니다. 조정은 급격히 사마씨 일가의 친위 체제로 변모했습니다.
장당을 비롯한 환관들도 조상에게 정보를 제공했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지방의 장수들은 사마의의 눈치를 보며 충성을 맹세하거나 은밀히 반란을 준비했습니다.
이후 위나라의 정치는 황제의 뜻이 아닌 사마의의 의중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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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의 난 발생]
사마의의 권력 독점에 반발한 수춘의 장수 왕릉이 반란을 꾀했습니다. 그는 조표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으나 사마의의 빠른 대처로 사전에 발각되었습니다. 고령의 사마의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수춘으로 출정하여 이를 진압했습니다.
사마의는 왕릉의 항복을 받아낸 뒤에도 그를 자결하게 하고 관련자들을 처형했습니다.
이 사건은 사마씨 정권에 대한 지방 세력의 저항인 '수춘 삼반란'의 첫 번째 사례였습니다.
사마의는 죽기 직전까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요소를 철저히 파괴했습니다.
[사마의의 서거]
정변을 성공시키고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사마의가 낙양에서 73세를 일기로 별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후 권력을 아들 사마사에게 계승하도록 유언을 남겼습니다. 사마의의 죽음은 한 시대의 종말이자 사마씨 왕조의 본격적인 시작을 의미했습니다.
그는 위나라의 충신으로 남기를 원했으나 후세에는 조위를 찬탈한 인물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사마의가 다져놓은 권력의 기초는 훗날 손자 사마염이 진나라를 건국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낙양의 장례식은 황제에 버금가는 규모로 치러졌으며 사마씨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사마사의 보정 대신 취임]
사마의의 장남인 사마사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군에 취임했습니다. 그는 사마의보다 더 과감하고 냉혹한 방식으로 조정을 통제했습니다. 사마씨의 세습 통치가 공식화되면서 위나라 황실은 허수아비로 전락했습니다.
사마사는 정변 당시 활약했던 정예병들을 기반으로 자신의 군사력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황제 조방을 압박하여 자신의 권위를 높였으며 반대파를 더욱 철저히 감시했습니다.
고평릉의 변으로 시작된 사마씨의 천하가 다음 세대로 성공적으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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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조방의 폐위]
사마사는 자신에게 대항하려던 황제 조방을 폐위시키고 제왕 조모를 새로운 황제로 옹립했습니다. 고평릉의 변 이후 황권이 얼마나 무력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사마씨 일가는 이제 황제를 갈아치울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조방은 사마씨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비밀리에 밀조를 내리려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었습니다.
사마사는 곽태후를 압박하여 조방이 황제의 자격이 없다는 조서를 내리게 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위나라 황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며 사마씨의 찬탈은 시간문제로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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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검과 문흠의 난]
사마사의 폐립에 반발하여 수춘에서 관구검과 문흠이 거병했습니다. 이들은 사마씨 일가의 죄악을 성토하며 위나라 황실의 회복을 주장했습니다. 사마사는 병든 몸을 이끌고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이들을 진압했습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반란군은 패배했으며 관구검은 살해되고 문흠은 오나라로 망명했습니다.
사마사는 이 원정 중에 눈의 지병이 악화되어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반란은 진압되었으나 사마사의 건강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 빠졌습니다.
[사마사의 죽음과 사마소 계승]
수춘 반란 진압 직후 사마사가 허창에서 병사했습니다. 권력은 그의 동생인 사마소에게로 이어졌으며 사마씨의 통치는 흔들림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사마소는 형의 뒤를 이어 위나라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사마소는 낙양으로 돌아와 군권을 장악하고 황제 조모를 더욱 강하게 압박했습니다.
'사마소의 마음은 길가는 사람도 다 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의 찬탈 의지는 노골적이었습니다.
고평릉의 변에서 시작된 정변의 불길은 이제 제국 전체를 집어삼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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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탄의 난 발생]
수춘의 장수 제갈탄이 사마소의 권력 독점에 반기를 들고 오나라와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사마씨 정권에 대한 지방 세력의 마지막 대규모 저항이었습니다. 사마소는 대군을 이끌고 수춘을 포위하며 장기전에 돌입했습니다.
사마소는 황제 조모와 곽태후를 대동하여 출정함으로써 반란군의 명분을 꺾었습니다.
약 1년의 포위 끝에 수춘 성은 함락되었고 제갈탄은 처형되었습니다.
이로써 사마씨 정권에 저항할 수 있는 위나라 내부의 군사 세력은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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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조모의 시해]
사마소의 압박을 견디다 못한 황제 조모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사마소의 저택을 공격하다 시해되었습니다. 황제가 신하의 손에 죽임을 당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조위 왕조가 사실상 멸망했음을 만천하에 선포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조모는 '사마소의 마음을 온 세상이 안다'며 소수의 호위병과 함께 나섰으나 성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마소는 성제에게 책임을 물어 처형함으로써 자신과의 관련성을 부인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사마소의 명망은 크게 실추되었으며 선양의 명분을 찾는 데 고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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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 멸망과 사마소의 위상]
사마소는 종회와 등애를 보내 촉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습니다. 외부의 적을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고 선양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사마소는 진왕에 봉해졌으며 황제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촉한의 멸망은 삼국시대가 종결로 나아가는 중대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사마소는 이 공로를 바탕으로 구석을 받고 진나라의 건국을 준비했습니다.
비록 사마소는 황제가 되지 못했지만 그의 아들 사마염이 그 과업을 완수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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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소의 죽음과 사마염 계승]
진왕 사마소가 별세하고 그의 아들 사마염이 진왕의 자리를 계승했습니다. 사마염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다져온 기반 위에서 마지막 단계를 준비했습니다. 이제 조위 왕조의 종말은 단 몇 달만을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사마염은 사마의와 사마사의 냉혹함, 사마소의 정치력을 모두 물려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위나라의 마지막 황제 조환으로부터 선양을 받기 위한 절차를 밟았습니다.
고평릉의 변 이후 16년 만에 사마씨의 천하가 완성에 이르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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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 건국과 위나라 멸망]
사마염이 위나라 황제 조환으로부터 선양을 받아 진나라를 건국하고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이로써 조조가 세운 위나라는 건국 4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고평릉의 변은 결국 새로운 왕조의 탄생이라는 최종적인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사마염은 무제가 되었으며 사마의를 고조 선황제로 추존했습니다.
위나라 황실은 진류왕으로 봉해져 명맥만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삼국시대가 진나라에 의해 통일되는 거대한 서사의 시작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