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등

군웅, 장수,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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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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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웅, 장수,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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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군웅으로 관서 일대에서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며 중앙 정부와 대립 및 협력을 반복했습니다. 어린 시절 가난했으나 어진 성품과 이국적인 외모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말년에는 장남 마초에게 세력을 맡기고 조정으로 입조했으나 마초의 난에 연좌되어 조조에게 숙청당하며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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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마등 출생]

중국 후한 말의 군웅 마등이 태어났다. 그는 개국 공신 마원의 후손으로, 어린 시절 가난하게 지냈으나 건장한 체격과 온화한 성품으로 존경받았다.

마등은 152년에 태어났다. 그는 중국 후한 말의 군웅으로 자는 수성이며 사례 우부풍 무릉현 사람이다. 후한의 개국 공신 마원의 후손이다. 어려서는 가난해 가산이 없어 나무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으며, 코가 남달리 크고 키가 약 8척이며 체격이 건장하고 성정이 어질고 온후하여, 많은 사람들이 공경했다.

184

[양주 반란 진압 공로로 군사마 임명]

후한 영제 말, 양주자사 경비의 실정으로 한수와 왕국이 반란을 일으키자, 마등은 백성 중에서 모은 토벌병에 응모하여 군종사로 공을 세우고 군사마가 되었다.

후한 영제 말기인 184년, 양주자사 경비가 실정하자 한수와 왕국이 강족·저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마등은 백성 중에서 모은 토벌병에 응모하여 군종사가 되었고, 공을 세워 군사마가 되었다.

190

[반란군 합류 후 장군 직위 획득]

경비 피살 후 마등은 반란군에 가담하여 왕국을 주군으로 모셨으나 반란이 와해된 뒤 편장군, 정서장군을 거쳐 초평 연간에는 정동장군으로 승진하며 세력을 확대했다.

경비가 피살된 후 마등은 반란군에 가담하여 한수와 함께 왕국을 주군으로 모셨다. 그러나 반란군이 황보숭에게 패배하고 한수가 왕국을 죽이면서 반란은 와해되었다. 이후 마등은 편장군이 되었고, 정서장군으로 승진했으며, 초평 연간(190년~193년)에는 정동장군에 임명되었다.

192

[이각·곽사에게 복종하고 정서장군 취임]

동탁 암살 이후 이각, 곽사 등이 조정을 장악하자, 마등은 한수와 함께 이들에게 순복하고 정서장군으로 임명되어 미에 주둔했다.

192년 동탁이 암살된 이후 이각, 곽사, 장제, 번조가 조정을 장악하자, 마등은 한수와 함께 이들에게 순복하여 정서장군이 되었고 미(郿)에 주둔했다.

194

[이각·곽사 토벌 모의 실패 및 패주]

마등은 마우, 충소 등과 함께 이각·곽사를 무찌르려 모의하고 한수와 장평관까지 진격했으나, 계획이 발각되어 이각·곽사에게 패배하고 양주로 달아났다.

194년에 시중 마우, 간의대부·전 익주자사 충소, 좌중랑장 유범, 유언과 함께 이각과 곽사 등을 무찌를 모의했다. 마등은 한수와 함께 장평관까지 진격했으나, 계획은 들통났고 이각·곽사에게 패배하여 양주로 달아났다.

195

[한수와의 갈등과 재화해, 관직 임명]

양주로 돌아온 마등은 한수와 의형제를 맺었으나 곧 불화가 생겨 싸웠고, 한수가 마등의 처자를 죽이기까지 했다. 종요의 중재로 화해한 후 아들들을 조정에 출사시키고, 전장군·가절 및 괴리후에 봉해졌다.

양주로 돌아온 후 마등은 한수와 친밀하게 되어 서로 의형제를 맺었으나, 곧 사이가 벌어져 마등은 한수를 공격했고, 한수는 달아났다가 돌아와 마등의 처자를 죽였다. 종요가 사례교위가 되어 양주목 위단과 함께 마등과 한수를 설득하여 화해하게 했다. 둘은 조정으로 자기 아들을 출사시켰으며, 마등은 자신의 아들인 마초를 보내 원상의 장수 곽원과 싸우게 했다. 마등은 괴리에 주둔했으며, 전장군·가절에 임명되었고 괴리후에 봉해졌다.

208

[세력 해산 및 위위로 중앙 입궐]

한수와 다시 갈등을 겪던 마등은 조조의 권고를 받아들여 세력을 해산하고 중앙 조정으로 들어가 위위(衛尉)에 임명되었다. 이때 그의 아들 마휴, 마철도 관직을 얻고 가족들 모두 업으로 이주했다.

건안 13년(208년), 한수와 다시 사이가 벌어졌고 조조의 사자 장기의 권고를 받아들여 세력을 해산하고 조정에 들어가기로 했으나 번복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장기가 주변 군현들을 움직여 자신을 맞을 준비를 하자, 결국 부득이하게 중앙으로 들어가 위위가 되었다. 이때 아들 마휴는 봉거도위, 마철은 기도위가 되었고, 가속들도 전부 업(鄴)으로 이주했다. 다만 장남인 마초는 양주에 남아 편장군에 임명되어 마등이 거느리던 부곡을 통솔했다.

211

[장남 마초의 조조 반란]

조조가 장로를 토벌하려 하자 관서 장수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려는 의도로 의심했고, 마등의 장남 마초가 한수 등과 연합하여 조조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건안 16년(211년), 조조가 종요에게 장로(張魯)를 토벌하게 하자 관서 지방의 여러 장수들은 자신들을 치려는 것이 아닌지 의혹을 품었다. 마초는 한수와 연합하고 양추, 이감, 성의 등과 함께 군사를 일으켰다.

212

[마초의 난 연루로 일족과 함께 처형]

중앙에 있던 마등은 장남 마초가 일으킨 반란에 연좌되어 조조에 의해 일족과 함께 숙청되며 생을 마감했다.

건안 17년(212년) 5월, 마등은 장남 마초의 난에 연좌되어 삼족이 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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