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배
중국 후한, 삼국지 인물, 관료, 책사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28
원소와 원상을 섬긴 후한 말기의 강직한 충신. 뛰어난 모략가이자 행정가로 원소의 오른팔이라 불림. 관도 대패 후에도 원소 가문을 지키려 끝까지 저항하며 불굴의 기개를 보임. 업성 함락 시 조조에게 사로잡혔으나 살아서는 원가의 신하 죽어서도 원가의 귀신이 될 것이라 말하며 끝까지 충절을 지켜 모든 이에게 깊은 탄식을 자아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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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기주목 한복을 섬기던 심배는 한복이 원소에게 기주를 빼앗긴 초평 2년(191년), 원소의 부름을 받아 치중(治中)이 되며 원소 세력에 합류했다. 한복은 심배를 중용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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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 4년(199년), 원소가 공손찬을 토벌한 뒤 조조를 공격하려 하자, 심배는 곽도와 함께 강경한 주전론을 펼쳤다. 하지만 전풍은 이를 반대하며 신중론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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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대전 대패와 아들들의 피포]
원소가 조조를 공격했으나 모신 허유의 배반으로 관도에서 대패했으며, 심배의 두 아들이 조조군에 사로잡혔다.
건안 5년(200년), 원소는 전풍을 투옥시킨 후 조조를 공격했으나, 초반 우세에도 불구하고 허유의 배반으로 관도에서 크게 패배했다. 이 과정에서 심배의 두 아들은 조조군에 사로잡히는 비극을 겪었다.
[감군직 임명 및 유임]
관도전 패배 후 감군으로 임명된 심배는 맹대, 장기, 곽도, 신평 등의 참언에도 불구하고 봉기의 변호로 자리에 유임되었다.
관도전 패배 이후 군권이 복원된 감군직에 심배가 임명되었다. 그러나 원소의 부하 맹대, 장기, 곽도, 신평 등이 심배의 모반을 참언했지만, 봉기의 변호로 인해 심배는 감군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이가 나빴던 심배와 봉기는 화해하고 친분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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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 7년(202년), 원소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장남 원담의 옹립 주장이 강했지만 심배와 봉기는 원담이 집권하면 해를 입을 것을 우려했다. 이에 두 사람은 원소의 유언을 칭탁하여 어린 원상을 후계자로 옹립하고 기주의 권력을 장악했다.
[여양 전투 참전 및 내전 시작]
원상 옹립에 불만을 품은 원담이 여양에서 거기장군을 자칭하자 조조가 공격해왔고, 심배는 업성을 지키며 원상과 함께 여양 전투를 치렀다.
원소 사후 원상이 옹립되자 장남 원담은 이에 불복하여 여양에 주둔하고 거기장군을 자칭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이때 조조가 여양을 공격하자, 심배는 원상이 직접 출병해 원담을 구원하도록 하고 자신은 업성을 지켰다. 조조와 원담·원상 간의 여양 전투는 약 8개월간 지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원담은 중재역으로 파견된 봉기를 죽였고, 결국 원담이 원상을 공격하며 원씨 형제간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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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상과의 격렬한 내전으로 인해 궁지에 몰린 원담은 건안 8년(203년) 겨울, 결국 조조에게 항복하여 원상을 공격하는 편에 서게 되었다. 이는 원상 세력에게 큰 위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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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안 9년(204년) 1월, 조조군이 일시적으로 물러나자, 원상은 이 틈을 타 원담을 공격하기 위해 직접 출병했다. 이때 심배에게는 원씨 세력의 본거지인 업성을 맡겨 방어를 책임지게 했다.
[조조의 업성 재공격 및 심배의 방어]
원상이 없는 틈을 타 조조가 업성을 다시 공격했으며, 성내 내응자와 심배 사이에 시가전이 벌어졌다.
원상이 원담을 공격하기 위해 평원으로 출정한 틈을 타, 조조는 건안 9년(204년) 4월 다시 업성으로 북상하여 공격을 시작했다. 이때 조조와 내응하려던 소유는 음모가 탄로 나 심배와 성내에서 격렬한 시가전을 벌였으나 패퇴했다. 조조는 윤해 등을 격파하며 업성에 대한 포위망을 강화했다.
건안 9년(204년) 7월, 업성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원상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포위를 풀기 위해 나섰다. 심배 역시 성내에서 호응하려 했으나, 원상과 심배 모두 조조에게 크게 패하며 업성의 상황은 더욱 절망적으로 변했다. 원상은 부하들의 배신과 급박한 추격으로 모든 군사를 잃고 단기로 달아났다.
[업성 함락 및 심배의 장렬한 최후]
조카 심영의 배신으로 업성이 함락되고 심배는 사로잡혔다. 그는 신평의 일족을 처형한 뒤 조조 앞에서 끝까지 충절을 지키며 죽음을 맞이했다.
건안 9년(204년) 8월, 심배의 조카 심영이 동문을 열어주며 조조군이 업성으로 진입했다. 함락 직전 심배는 과거 자신을 참언했던 신평의 일족을 옥중에서 죽이도록 명령했다. 사로잡힌 심배는 조조의 회유에도 "살아서는 원가의 신하요, 죽어서도 원가의 귀신이 될 것이다"라며 굽히지 않았다. 결국 신비 등의 강력한 요구로 처형당했으며, 북쪽을 향해 앉아 죽음을 맞이하는 장렬한 최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