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
인물, 관료, 책사, 전략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25
후한 말 난세의 지혜로운 참모로 원소를 섬기다. 뛰어난 권모술수와 전략으로 원소 세력 확장에 핵심 기여. 황제 옹립 4주 통일 전략 등 주요 정책 제시로 원소에게 깊은 신뢰를 받았다. 관도대전 등 주요 전투에서 연이은 촌철살인 예언과 조언을 내놓았으나 번번이 무시당했다. 원소의 몰락과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나 그의 지모는 후대에도 장량과 진평에 비견될 정도라고 극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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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의 초임 관직]
젊은 시절부터 큰 뜻을 품고 권모술수에 뛰어났던 저수가 기주별가를 시작으로 두 현의 현령을 역임하며 관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기주목 한복 휘하에서 별가, 기도위로 봉직했습니다.
저수는 젊은 시절부터 큰 뜻을 품고 권모술수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처음으로 기주별가 관직을 지냈고, 이어서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두 현에서 현령을 역임하며 경력을 쌓았습니다. 훗날 기주목 한복을 섬기며 별가와 기도위 직책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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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에게 기주 양도를 만류하다]
초평 2년, 한복이 원소에게 기주를 양도하려 하자 저수는 이를 만류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이후 원소를 섬기게 된 저수는 기·청·유·병 4주를 평정하고 황제를 맞이한다는 전략을 제안하여 원소에게 감군 및 분위장군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초평 2년(191년), 당시 기주목 한복이 원소에게 기주를 양도하려 하자, 저수는 다른 모사들과 함께 이를 강력히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한복은 저수의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원소가 기주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저수는 원소를 그대로 섬기게 되었으며, 기(冀)·청(靑)·유(幽)·병(幷) 4주를 평정한 뒤 장안에 황제를 맞이하고 낙양의 종묘를 부활시킨다는 거대한 전략을 원소에게 제시했습니다. 이 전략에 원소는 크게 기뻐하며 저수를 감군(총사령관격 관직) 겸 분위장군(혹은 분무장군)에 임명하며 그를 중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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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제 옹립 제안과 좌절]
흥평 2년, 저수는 원소에게 헌제를 맞이할 것을 진언했지만, 곽도와 순우경이 반대했고, 원소 역시 동탁이 옹립했던 헌제에 부정적이었기에 저수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훗날 원소에게 큰 불리함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흥평 2년(195년), 저수는 원소에게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세 속에서 헌제(獻帝)를 맞이하여 대의명분을 확보할 것을 진언했습니다. 그러나 곽도와 순우경 등 다른 모사들이 이에 반대했고, 원소 자신도 동탁이 옹립했던 헌제를 맞이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수의 중요한 진언은 결국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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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 좌천과 원소의 오판]
건안 4년, 원소는 공손찬 세력을 흡수하고 4주를 평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조조에 대한 전략으로 저수는 지구전을 주장했으나 곽도와 심배의 단기전이 채택되었습니다. 곽도의 참언으로 저수의 감군 지위가 3명의 도독 체제로 분할되는 좌천을 겪었으며, 원담의 청주자사 임명에 반대했으나 이 또한 묵살되었습니다.
건안 4년(199년), 원소는 공손찬 세력을 완전히 흡수하고 기, 청, 유, 병 4주를 모두 평정하며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이후 조조와의 대결을 앞두고 전략 회의가 열렸는데, 저수와 전풍은 지구전(持久戰)을 주장했지만 곽도와 심배는 단기전(短期戰)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원소는 곽도와 심배의 단기전 전략을 지지했습니다. 또한 이때 곽도가 저수의 엄청난 위세를 참언(讒言)하여, 저수의 감군(監軍) 지위와 권한이 3명의 도독(都督) 체제로 분할되었고 저수는 순우경, 곽도와 함께 도독으로 임명되는 좌천을 겪게 됩니다. 이와 더불어 저수는 원소가 장남 원담을 청주자사로 임명하는 것이 훗날 큰 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원소는 그의 의견을 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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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대전과 비극적 최후]
건안 5년 관도 전투 직전, 저수는 원소의 패배를 예감하고 일족에게 재물을 나눠주었습니다. 안량의 단독 작전 부적절, 순우경 보급 호위 병력 보강 등 핵심적인 진언들이 모두 거절당하며 원소의 패배를 막지 못했습니다. 결국 조조에게 생포되었고, 조조의 회유를 거부하며 탈출을 시도하다 처형당했습니다. 조조는 그의 충렬을 기려 묘를 세웠습니다.
건안 5년(200년), 관도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저수는 이미 원소의 패배를 예감하고 동생 저종을 비롯한 일족에게 재물을 미리 나눠주었습니다. 전투가 시작되자 원소는 백마에 주둔한 유연을 공격하게 했는데, 저수는 안량이 용맹하나 도량이 좁아 단독 작전에는 부적절하다고 진언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저수의 예견대로 안량은 관우에게 죽임을 당했고, 원소가 황하를 건너자 저수는 병을 이유로 지휘권을 반납하여 원소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조조군이 관도로 퇴각했을 때 저수는 재차 지구전을 진언했지만 원소는 또다시 거절했습니다. 순우경이 병량 호위를 맡았을 때 저수는 추가 병력 파견을 진언했으나 이 역시 묵살되었고, 순우경은 오소에서 조조에게 습격당해 보급선이 궤멸되었습니다. 결국 원소군은 무너졌고, 저수는 황하를 건너는 것이 늦어져 조조군에게 생포되었습니다. 조조는 저수에게 자신의 휘하로 들어올 것을 권했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탈출을 시도하다 결국 처형당했습니다. 조조는 저수의 충렬을 기려 '충렬저군지묘'라고 새겨진 묘를 황하 건너편에 세워 그의 죽음을 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