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등
인물, 정치인, 관료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24
진등은 후한 말기의 관료로 뛰어난 지략과 행정 능력으로 혼란한 시대를 살았습니다. 농업 개혁을 통해 백성을 풍요롭게 하고 조조와 협력하여 여포를 토벌하는 등 여러 세력을 넘나들며 활약했습니다. 생선회를 즐기다 기생충으로 사망한 독특한 최후를 맞이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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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고 문학적 재능이 뛰어나 25세의 나이에 효렴으로 천거되었으며, 동양현령에 임명되어 본격적인 관료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은 초기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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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농교위 임명과 농업 개혁]
전농교위에 임명되어 토지 특성에 맞는 작물 재배를 연구하고 수로와 관개 시설을 정비하여 농업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습니다.
전농교위로 임명된 진등은 농업 발전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각 지역 토지의 특성을 면밀히 조사하여 최적의 작물을 선정하고, 효율적인 수로를 파고 관개 시설을 정비하는 등 적극적인 농업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지역의 농업 생산량은 크게 증가하여 주민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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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 자사 도겸의 사망 후, 진등은 도겸의 뒤를 이어 서주를 다스리게 된 유비에게 귀부하여 그의 휘하에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는 그가 주군을 바꾸는 첫 번째 전환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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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휘하로 편입]
유비를 몰아내고 서주를 차지한 여포의 휘하로 들어가 잠시 여포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진등은 여포를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유비가 여포에게 서주를 빼앗기자, 진등은 잠시 여포의 휘하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등과 그의 아버지 진규는 여포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있었으며, 여포를 좋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는 훗날 여포를 몰락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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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군 격퇴 기여]
원술이 여포를 공격했을 때, 아버지 진규와 함께 원술의 동맹군인 한섬과 양봉을 설득하여 여포 측으로 돌아서게 함으로써 원술군을 크게 격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건안 2년(197년), 원술이 여포를 대규모로 공격해오자, 진등은 아버지 진규와 지혜를 모아 원술의 우군이었던 한섬과 양봉을 기습적으로 회유했습니다. 이들의 이반으로 원술군은 크게 혼란에 빠졌고, 결국 여포는 원술군을 대파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진등의 뛰어난 외교적 수완과 전략적 판단력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여포 토벌 진언과 광릉태수 임명]
조조에게 사자로 파견되었을 때, 여포 토벌의 필요성을 강력히 진언했습니다. 조조는 그의 진언을 받아들여 그를 광릉태수에 임명했습니다. 진등은 광릉을 안정시켜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여포를 불신했던 진등은 조조에게 사자로 파견된 기회를 이용해 여포 토벌의 당위성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조조는 그의 통찰력과 충심을 높이 평가하여 진등을 광릉태수에 임명했습니다. 광릉태수가 된 진등은 뛰어난 통치력으로 혼란했던 광릉 지역을 안정시키고 백성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포를 배신하고 조조의 편에 서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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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포 토벌 공로 및 복파장군 임명]
조조가 하비에서 여포를 공격할 때 조조에게 귀순하여 여포 토벌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복파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건안 3년(198년), 조조가 하비에 갇힌 여포를 총공격할 때 진등은 조조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여포 토벌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그의 기여 덕분에 조조는 여포를 성공적으로 제거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진등은 복파장군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임명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