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궁

정치인, 모사, 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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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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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의 세력을 키우는 데 기여했으나 의구심으로 그에게 등을 돌린 인물. 탁월한 지략을 지녔음에도 여포의 불신과 고집으로 인해 계책이 번번이 좌절. 마지막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결연히 죽음을 맞이한 강직한 최후. 조조마저 감탄하며 그의 가족을 보살필 정도로 인품이 인정받았던 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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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와의 인연 시작]

연주자사 유대가 황건적에게 사망하자, 진궁은 탁월한 설득력으로 연주 사람들을 규합해 조조를 연주목으로 추대되게 이끌었습니다.

이 만남은 후한 말 가장 드라마틱한 인연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세어》에 따르면, 진궁이 연주 사람들을 설득하여 조조가 연주목으로 추대되었고, 이는 조조가 세력을 확장하는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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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배신과 여포 영입]

조조가 서주를 재차 정벌하러 떠난 사이, 진궁은 조조에 대한 의구심을 키우다 장막 등과 모반을 계획합니다.

그는 장막에게 “천하가 혼란한 시기, 조조에게 얽매이지 말고 여포와 함께 연주를 장악하라”고 설득하여 여포를 연주목으로 세웠습니다.

조조를 배신하고 여포에게 귀순한 이 중대한 결정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조조가 서주를 정벌하러 서주목 도겸에게 나아가자, 진궁은 장막의 동생 장초, 종사중랑 허사·왕해 등과 함께 모반을 계획했습니다. 진궁은 장막에게 '바야흐로 여러 영웅들이 들고일어나 천하가 나뉘었습니다. 군께선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사방이 적인 땅에 서계십니다. 칼을 쥔 채 때를 살피기만 하면 족히 인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타인에게 속박만 당하고 있으니 어찌 비루하지 않다 하겠습니까! 지금 연주는 동쪽을 치느라 텅 비어있습니다. 그리고 여포는 장사로서 맞설 상대가 없을 정도로 싸움을 잘합니다. 여포와 함께 연주를 장악하고 천하 형세를 주시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면 한 시대를 종횡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장막이 이를 좇아 여포를 연주목으로 세우자 견성, 동아, 범 등 몇 개 현을 제외한 대부분의 군현이 호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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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공방전 패배]

조조의 급습에 연주는 전장이 되었고, 치열한 연주 공방전이 펼쳐졌습니다.

여포는 설란과 이봉 구원에 실패하고 복병에 패하는 등 열세에 몰렸습니다.

결국 여포와 진궁은 주요 거점을 잃고 서주목 유비에게 의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써 조조는 연주를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급보를 받은 조조가 급히 군을 돌려 여포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산양군 거야현의 설란과 이봉 구원에 실패한 여포는 진궁과 함께 1만 명으로 동민현에서부터 역공을 가했으나 복병에 패하였습니다. 결국 제음군 정도현이 뚫리면서 여러 현들을 잃었고 진궁은 여포와 같이 유비에게 투탁했습니다. 도겸 사후 유비가 그 뒤를 이었던 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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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맹의 반란과 공모 발각]

여포가 서주를 탈취한 후, 그의 부장 학맹이 원술을 등에 업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반란 진압 과정에서 진궁의 공모 사실이 발각되었지만, 여포는 진궁을 중요한 장수라 여겨 이를 덮어주었습니다.

여포의 예상 밖의 관대함은 진궁과의 복잡한 관계를 보여주었습니다.

여포의 부장 학맹이 원술을 배후에 두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만류하던 학맹의 부장 조성이 그 진압에 공을 세우고 진궁의 공모 사실을 여포에게 진술하였습니다. 그곳에 있던 진궁이 모두가 알아볼 정도로 얼굴을 붉혔음에도 여포는 진궁을 중요한 장수라 여겨 이를 불문에 부쳤습니다.

198

[하비 전투와 묵살된 계책]

여포가 원술과 연합해 조조에 대항하자 조조가 대규모 친정을 시작했습니다.

진궁은 조조군이 하비에 이르기 전 역격을 건의했지만 묵살되었고, 뒤늦게 여포가 나섰다 격퇴당했습니다.

성 안팎에서 협공하는 기각지세 전략을 제안했으나, 여포 부인의 반대로 이마저도 좌절되며 진궁의 지략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는 여포의 불신과 진궁의 한계를 동시에 드러낸 비극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여포가 다시 원술과 손잡고 조조에 대적하였습니다. 조조가 하비 전투를 위해 친정을 개시하여 팽성국에 이르렀습니다. 진궁은 역격을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여포는 조조군이 하비에 육박해서야 역격에 나섰다가 격퇴당했습니다. 여포가 항복을 고려하자 진궁은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며 말렸습니다. 또 진언하기를 ‘여포가 성 바깥에서, 진궁이 성안에서 서로 기각(掎角)의 형태로 방어하다보면 열흘도 안 되어 조조군의 군량이 다해 승리할 것’이라 했지만 여포의 부인이 “진궁은 조조로부터 갓난아이인 양 귀한 대우를 받았음에도 우리에게 귀순했습니다. 하물며 장군의 대우는 조조에 미치지 않았는데도 온전히 성을 맡긴 채 처자식은 내버려두고 멀리 나가려 하십니까? 만약 변고가 생긴다면 제가 장군의 처로 남아있겠습니까?”라고 제지하는 바람에 실행하지 못하였습니다.

[진궁의 비극적 최후]

여포의 부하들에게 붙잡혀 조조에게 넘겨진 진궁.

조조의 “어찌 이런 꼴이 되었소?”라는 질문에 “단지 여포가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죽여 군법을 밝히라며 결연히 죽음을 자청했고, 조조마저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습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처형장으로 향한 그의 머리는 허도에 효수되었으나, 조조는 그의 가족을 죽을 때까지 극진히 보살펴 진궁의 강직한 인품을 마지막까지 기렸습니다.

섣달, 여포로부터 이반한 후성, 송헌, 위속이 진궁과 고순을 붙잡아 조조에게 투항했습니다. 여포는 남은 부하들과 백문루에 올랐다가 이내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하였습니다. 조조가 진궁에게 “경은 평소 지모가 넘친다며 자부했건만 어찌 이런 꼴이 되었소?”라 묻자 여포를 가리키며 “단지 이 자가 내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말대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라 답하였습니다. 이어 신하로서 불충했고, 자식으로서 불효했으니 자신은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습니다. 노모와 처자식의 처우에 대해서는 “제가 듣건대 효(孝)로써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타인의 부모를 해치지 않으며, 인(仁)으로써 천하를 보살피는 자는 타인의 제사를 끊지 않는다 합니다. 그 생사는 제가 아니라 명공께 달렸습니다.”라 답하였습니다. 조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고 진궁은 자신을 죽여 군법을 밝히라며 죽음을 재촉하니 그 의지를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조는 눈물을 흘리며 진궁을 전송했고 진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처형장으로 향했습니다. 그 머리는 허도에 효수되었습니다. 조조는 진궁의 가족을 두터이 대해 그 어머니를 죽을 때까지 봉양하고 아들을 가르치며 딸도 시집보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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