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동오)

삼국시대 문관, 오나라 중신,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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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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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문관, 오나라 중신,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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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오나라의 최고 명신이자 학자. 손책의 유언을 받들어 어린 손권을 보좌하며 오나라 건국과 안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 매우 강직한 성품으로 황제 손권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아 때로는 큰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결국 손권의 신뢰를 얻은 인물. 당대 최고의 학자로서 퇴임 후에도 학문 연구에 몰두하며 저서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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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장소의 출생 및 학문적 명성]

장소는 서주 팽성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예서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낭야 조욱, 동해 왕랑과 함께 명성을 떨쳤습니다.

서주 팽성국에서 태어난 장소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예서에 뛰어났습니다. 낭야 사람 조욱, 동해 사람 왕랑과 교류하며 함께 명성을 날렸습니다.

176

[관직 천거 거부와 도겸과의 갈등]

약관의 나이에 효렴과 무재로 천거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고, 자신을 가벼이 여겼다고 오해한 서주자사 도겸에게 잡혔다가 조욱의 도움으로 풀려났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효렴으로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서주자사 도겸이 무재로 천거했으나 응하지 않았고, 도겸은 자신을 가벼이 여겼다고 여겨 장소를 잡아들였습니다. 조욱이 힘을 다해 구출하여 석방될 수 있었습니다.

184

[난세를 피해 양주로 이주]

후한 말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장강을 건너 남쪽 양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후한 말,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장소는 남쪽으로 장강을 건너 양주로 옮겨갔습니다.

194

[손책의 중신으로 활약 시작]

손책이 강동에 기반을 다지기 시작하자 그의 막료가 되어 장사, 무군중랑장에 임명되었고, 문무의 모든 일을 그에게 물어 처리할 정도로 손책의 깊은 신임을 받았습니다.

손책이 창업하자 장소는 장사(長史) 겸 무군중랑장(撫軍中郞將)이 되어 문무의 모든 일을 그에게 물어서 처리할 만큼 정치에 능한 모습을 보이며 손책의 깊은 신임을 얻었습니다.

200

[손책의 유언과 손권 보좌]

손책이 임종 직전, 장소에게 어린 아우 손권을 부탁했고, 장소는 손책의 유명을 받들어 손권을 보좌하며 오나라의 기반을 안정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손책은 임종 직전에 장소에게 어린 아우 손권을 부탁했습니다. 손책이 죽은 후 장소는 여러 관료들을 이끌고 손권을 보좌했으며, 손권이 슬픔에 잠겨있자 상복을 갈아입고 군대를 순시하게 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주유 등과 함께 손권에게 복종하며 오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09

[유비 휘하 거기장군 군사 역임]

유비가 손권을 거기장군 대행으로 삼았을 때, 장소는 손권의 군사가 되어 그를 보좌했습니다.

유비가 손권으로 거기장군을 대행하게 했을 때, 장소는 손권의 군사가 되었습니다.

218

[손권의 호랑이 사냥을 간언]

손권이 위험한 호랑이 사냥을 즐기자 장소는 안색을 바꾸며 그만둘 것을 강하게 간언했고, 비록 손권이 완전히 그만두지는 않았으나 사냥 방식에 변화를 가져올 만큼 그의 충언은 강력했습니다.

손권은 항상 말을 타고 호랑이를 쏘는 위험한 사냥을 즐겼습니다. 장소는 안색이 바뀌어 앞으로 나아가 그런 일을 그만두도록 간언했습니다. 손권은 이 충언으로 사냥 방식에 변화를 주어 특별히 사방이 막힌 호랑이 사냥용 수레를 만들어 그 안에서 호랑이를 쏘는 식으로 위험을 줄였습니다.

221

[위나라 사자 꾸짖음 및 수원장군 봉직]

위나라 사자 형정이 손권을 오왕에 봉하는 자리에서 무례하게 행동하자, 장소는 그를 꾸짖고 위협하여 수레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이후 수원장군에 임명되고 유권후에 봉해졌습니다.

위나라에서 사자 형정을 보내어 손권을 오왕에 봉했습니다. 형정이 궁궐 문에 들어서고도 수레에서 내리지 않으므로, 장소는 형정의 무례함을 꾸짖고 협박하여 형정은 수레에서 곧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 공로로 장소는 수원장군에 임명되었고, 유권후에 봉해졌습니다.

225

[승상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임명되지 못함]

손권이 승상을 두었을 때부터 백관들은 장소를 승상으로 추대했지만, 손권은 그의 강직한 성품을 부담스러워하여 손소와 고옹을 승상으로 임명했습니다.

손권이 처음 승상을 두었을 때부터, 이후 황무 4년(225년) 손소가 죽었을 때까지 백관들은 장소를 승상으로 삼는 데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손권은 장소의 강직한 성품을 마뜩찮게 여겨 손소에 이어 고옹을 승상으로 삼았습니다.

229

[손권 제위 후 관직 사임 및 예우 받음]

손권이 제위에 오르자, 늙고 병들었음을 이유로 관직과 통수권을 내려놓고 물러났습니다. 그러나 손권은 그를 보오장군으로 임명하고 삼사에 버금가는 대우를 했으며, 누후에 봉하고 식읍 1만 호를 정해주었습니다.

황룡 원년(229년), 손권이 제위에 오르자 장소는 늙고 병들었음을 이유로 관직과 통수권을 내놓고 물러났습니다. 손권은 장소를 보오장군으로 임명하고, 대우를 삼사에 버금가게 했으며, 고쳐 누후에 임명하고 식읍은 1만 호로 정했습니다. 손권이 백관을 모으고 주유에게 공적을 돌렸을 때, 장소가 주유의 공덕을 기리고자 했으나 손권에게 면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은퇴 후 학문 연구와 저술 활동]

은퇴 후에는 집에서 《춘추좌전해》와 《논어주》를 저술하며 학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손권이 엄준에게 외운 책을 묻자, 장소는 자신도 암송하겠다며 시의의 〈군자지자 상〉을 외어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관직에서 은퇴한 후에는 집에서 할 일이 없어 《춘추좌전해》와 《논어주》를 저술하며 학문에 매진했습니다. 손권이 일찍이 위위 엄준에게 어렸을 적에 외운 책을 암송하고 있는지 묻자, 엄준은 호경의 〈중니거〉를 외웠습니다. 이에 장소는 “엄준은 비루한 서생입니다. 신이 폐하를 위해 외우기를 청합니다.”라 하고, 시의의 〈군자지자 상〉을 외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231

[공손연 문제로 손권과 극심한 갈등]

공손연을 번국으로 삼으려던 손권의 계획에 반대하며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손권이 칼까지 만지며 위협했지만 굴하지 않고 간언하다가 문을 흙으로 막고 불태우는 등 극단적인 갈등을 겪었으나, 결국 호종의 중재로 화해했습니다.

황룡 3년(231년) 10월, 공손연이 오의 번국이 되기를 청하자 손권은 기뻐하여 사신을 요동에 보냈습니다. 당시 군신들의 논의는 모두 반대였으며, 장소 역시 공손연의 본심이 아니라며 간언했습니다. 손권과 장소의 논쟁은 격해져 손권이 칼을 만지며 장소를 협박했고, 장소는 울면서 충성을 다짐했습니다. 결국 손권은 사신을 보냈고 장소는 분히 여겨 조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손권은 장소 집 문을 흙으로 막고 불을 지르며 협박까지 했으나 장소는 완고하게 버텼습니다. 결국 호종의 중재로 손권은 불을 끄고 장소를 직접 데려와 화해했습니다.

236

[81세로 사망 및 문후 시호 받음]

가화 5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권은 소복을 입고 조문했으며, '문후'라는 시호를 내려 그의 공적을 기렸습니다.

가화 5년(236년), 장소는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권은 소복을 입고 조문했으며, 그의 공적을 기려 '문후'라는 시호를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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