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순
후한, 삼국시대, 무장, 장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21
196
[학맹의 반란 진압]
196년 6월, 여포가 유비에게서 하비를 빼앗은 직후 부장 학맹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때 도독 고순은 재빠르게 여포를 보호하고, 학맹의 부대에 일제사격을 퍼부어 반란을 완벽하게 진압하며 자신의 뛰어난 위기 대처 능력을 증명했습니다.
그의 신속하고 과감한 행동은 여포의 생명과 세력의 안정을 지켰습니다.
원술과 여포의 참모 진궁이 반란 배후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고순은 당시 독장(督將) 직위에 있었으며, 자신의 병영에 여포를 데려와 안전하게 보호했습니다.
197
[장패 공격 만류]
197년, 장패가 소건을 격파하고 거를 점령하자, 이미 소건을 아군으로 끌어들였던 여포는 격분하여 장패 공격을 강행하려 했습니다.
고순은 "앉아서 기다리시면 장패는 항복할 것입니다"라며 현명한 조언을 했지만, 여포는 이를 듣지 않고 무리하게 공격에 나섰습니다.
결과는 병력 소모만 가져온 채 실패로 끝나고 말았고, 결국 여포는 장패와 화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패는 여포의 부하가 아닌 독립 세력이었습니다. 또한 여포에게 약속한 상납금을 보내주지 않은 것이 공격의 원인이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고순의 통찰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으나, 여포의 고집으로 인해 빛을 발하지 못했습니다.
198
[유비·하후돈 격파]
198년 9월, 중랑장으로 승진한 고순은 장료를 이끌고 유비가 지키던 패성을 공략하여 유비의 처자를 사로잡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심지어 유비를 구원하러 온 조조의 명장 하후돈마저 격파하며 자신의 탁월한 무력을 과시했습니다.
이 사건은 고순의 군사적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는 결정적인 승리였습니다.
당시 패성은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지키고 있던 중요한 요충지였습니다. 고순은 이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전과를 올렸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하후돈과의 일대일 대결 후 조성의 화살로 하후돈의 눈을 맞추어 퇴각시켰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199
[비운의 최후]
고순의 눈부신 활약에도 불구하고, 주군 여포는 하비성에 갇혀 결국 199년 2월 7일 조조에게 패배했습니다.
고순은 여포, 진궁과 함께 사로잡혔고, 조조의 명령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그의 수급은 허도 시장에 효수된 후 매장되며, 충직했던 그의 생애는 막을 내렸습니다.
《후한서》 여포전에 따르면, 고순은 진궁과 함께 후성에게 포박당했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이며 끝까지 충절을 지켰습니다. 그의 죽음은 여포 세력의 완벽한 종말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