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굉

모사, 문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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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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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 문관,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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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굉은 후한 말 손권의 지략가이자 문장가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고관들의 부름을 거절하며 재야에 묻혀 지냈고 손책의 끈질긴 설득 끝에 등용되었습니다. 손책 사후에는 손권을 도와 오나라의 기틀을 잡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적벽대전 반대와 건업 천도 제안 등 그의 예리한 통찰력과 충정은 역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빛을 발했습니다.

연관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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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

[장굉, 세상에 태어나다]

중국 후한 말기 군웅 손권의 모사로 활약할 장굉이 태어났습니다. 그는 지략이 깊고 문장이 뛰어난 인물로 성장하게 됩니다.

중국 후한 말기 군웅 손권의 모사이자 자는 자강인 장굉이 태어났다. 그는 지략이 깊고 문장이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았다.

173

[학문에 매진하며 자수성가하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도 부친을 지극히 모시고 학문에 매진하여 경서를 몸에서 떼지 않았습니다. 밤낮으로 부지런히 노력한 결과, 약관(20세경)에 이르러 살림이 넉넉해졌습니다.

부친을 지극히 모셨던 장굉은 가난하게 살며 밭을 갈 때도 경서를 몸에서 떼지 않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하여 약관(20세경)이 되어서는 살림이 넉넉해졌다.

175

[수도 낙양 유학과 관직 제의 거절]

젊은 시절 수도 낙양에 유학하였고, 광릉군으로 돌아와 무재로 천거되었습니다. 대장군 하진, 태위 주준, 사공 순상 등 여러 유력 인사에게 부름을 받았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재야에 머물렀습니다.

젊어서 수도인 낙양에 유학하였고, 광릉군으로 돌아가 무재로 천거되어 대장군 하진, 태위 주준, 사공 순상에게 부름을 받았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95

[손책에게 발탁되다]

재야에 묻혀 있을 때 장소와 함께 '이장(二張)'으로 불리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손책이 이 소문을 듣고 여러 번 방문한 끝에 장굉을 등용하여 정의교위로 임명했습니다. 이후 여포가 장굉을 천거하려 했으나, 장굉은 여포를 싫어했고 손책도 그를 아껴 보내지 않았습니다.

195년, 재야에 묻혔을 때 장소와 함께 이장(二張)으로 불렸다. 손책이 그 소문을 듣고 찾아와 여러 번 방문한 끝에 등용하였다. 장굉은 정의교위로 임명되었다. 여포가 서주를 습격하여 서주목이 되자 장굉을 무재로 천거하였으나, 장굉은 여포를 싫어했고 손책도 장굉을 아껴 여포에게 장굉을 보내지 않았다.

199

[조조의 제의를 거절하고 손책에게 충성하다]

손책의 명령으로 당시 최대 군주인 조조가 있는 낙양에 파견되어 시어사가 되었고, 소부 공융과 친교를 맺었습니다. 사공 조조는 장굉을 천거하여 사공연으로 삼고 구강태수에 임명하려 했으나, 장굉은 손책의 옛 은혜를 잊지 않고 병을 핑계로 물러났습니다.

건안 4년(199년), 손책의 명령으로 당시 최대 군주인 조조가 있는 낙양에 갔다가, 그곳에 머물러 시어사가 되었고, 소부 공융과 친교를 맺었다. 사공 조조는 장굉을 천거하여 사공연으로 삼고, 나중에는 구강태수에 임명하려 했으나, 장굉은 손책의 옛 은혜로 말미암아 칭병하고 물러났다.

200

[손책 사후 손권을 보좌하며 강동을 수호하다]

손책이 죽자 조조가 오 땅을 도모하려는 것을 간파하고, 이를 기회로 강동에 은혜를 베풀도록 조조에게 주장했습니다.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손권을 토로장군·영 회계태수로 임명했고, 장굉에게는 손권을 돕게 하여 회계동부도위로 임명했습니다. 이후 장굉은 손권을 섬기며 예리한 통찰력으로 끊임없이 간언했습니다.

200년, 손책이 죽자 조조가 이를 틈타 오 땅을 도모하려 하는 것을 간하여, 이를 기회로 강동에 은혜를 베풀기를 주장했다. 조조는 이를 받아들여 손권을 토로장군·영 회계태수로 임명했고, 장굉에게는 손권을 돕게 하여 회계동부도위로 임명했다. 이후 손권을 섬겨 예리한 통찰력으로 주군에게 번번이 간언하였다.

208

[적벽대전 당시 신중론을 펼치다]

적벽대전이 일어날 당시, 장소, 고옹 등의 문관들과 함께 조조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신중론을 펼쳤습니다. 특히 혈기에 넘쳐 전선에 직접 나서려는 손권에게 간곡히 간언하며 그의 안전을 염려했습니다.

208년, 적벽 대전이 일어나던 당시에는 장소, 고옹 등의 문관들과 함께 조조와 전쟁을 치르는 것을 반대하였으며, 손권에게 손책과 같이 혈기에 넘쳐 전선에 나서려는 것에 간언하였다.

212

[건업 천도를 진언하고 사망하다]

손권에게 수도를 건업(建業)으로 천도할 것을 진언했습니다. 손권이 이를 받아들여 천도를 실행한 후, 장굉은 병사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죽기 전까지 나라를 걱정하는 장굉을 충신이라며 손권이 감동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그 후, 손권에게 수도를 건업(建業)으로 천도할 것을 진언하였고, 손권이 실행한 후 병사하였다. 《삼국지연의》의 내용은 정사와 비슷하였으나, 장굉이 손권에게 수도를 건업으로 천도할 것을 진언하며 병사할 때, 손권은 죽기 전까지 나라를 생각하는 장굉을 충신이라며 건업으로 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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