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옹

정치인, 관료, 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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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6-01-27- 18:4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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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관료, 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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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옹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제2대 승상으로, '침묵의 재상'이라 불릴 만큼 과묵하면서도 강직한 성품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후한 말의 대학자 채옹에게 학문과 예능을 배워 그의 이름을 물려받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으며, 손권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19년 동안 승상의 자리를 지키며 국가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고 사사로운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으며,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공정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수사보다는 실질적인 정무 능력을 통해 오나라의 번영을 이끌었던 고옹의 생애는 위대한 정치가의 표본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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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

[오군 오현에서의 탄생]

삼국시대 오나라의 핵심 인물이 될 고옹이 오군 오현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옹은 강남의 명문가인 고씨 집안에서 태어나 덕망 있는 가문의 자제로 성장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차분하고 총명한 기질을 보여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의 탄생은 훗날 오나라 정치를 이끌 오군 사성(四姓) 중 하나인 고씨 가문의 전성기를 예고했습니다.

180

[채옹의 제자가 됨]

후한의 대학자 채옹이 오군에 머물 때 그의 문하에서 거문고와 서예를 배웠습니다.

고옹의 재능에 감탄한 채옹은 자신의 이름인 '옹(邕)'과 같은 발음의 '옹(雍)'을 이름으로 지어주었습니다.
스승인 채옹은 고옹의 장중하고 조용한 성품을 높이 평가하며 자신의 재능을 아낌없이 전수했습니다.
이 시기의 가르침은 고옹이 훗날 정치가로서 갖추어야 할 고결한 인격과 학문적 소양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87

[합비현령 임동]

약 20세의 나이에 합비현령으로 임명되어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누현, 곡아현, 상우현 등의 현령을 차례로 역임하며 뛰어난 행정 능력을 입증했습니다.
그가 다스리는 곳마다 백성들은 안정된 삶을 누렸으며 관청의 기강은 엄격하게 바로 섰습니다.
지방관으로서 쌓은 실무 경험은 훗날 중앙 정계에서 국가 전체를 다스리는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200

[손권의 부름을 받음]

손권이 회계태수를 겸임하게 되자 고옹을 회계군승으로 발탁하여 정무를 맡겼습니다.

태수인 손권을 대신하여 군의 모든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하며 탁월한 통치력을 선보였습니다.
장소 등의 추천을 받아 손권의 핵심 참모진으로 합류하게 되었으며 군사적, 행정적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부터 손권과의 깊은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평생을 이어가는 동반자적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221

[좌장군 및 형주목 임명]

오나라의 관직 체계가 정비됨에 따라 좌장군에 임명되고 형주목을 겸임하게 되었습니다.

군사적 요충지인 형주의 행정을 책임지며 국경 안정과 민심 수습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양수후에 봉해지며 가문과 개인의 영예를 드높이는 동시에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높은 직위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겸손하고 근면한 태도를 유지하여 동료 관료들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225

[오나라 승상 취임]

초대 승상 손소가 서거하자 그 뒤를 이어 오나라의 제2대 승상으로 취임했습니다.

평소 과묵하지만 핵심을 찌르는 그의 성품을 신뢰한 손권에 의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취임 후에도 화려한 행사를 멀리하고 오직 국정 안녕과 인재 선발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승상으로서 황제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예우를 잃지 않아 군신 관계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229

[평소의 엄격한 생활 습관]

승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술을 마시지 않고 늘 진중한 태도로 정무에 임했습니다.

손권이 연회를 베풀 때 고옹이 있으면 다들 그가 취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어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고옹은 정무 보고 시에도 사사로운 이야기 없이 오직 국가 대사만을 논의하여 효율적인 통치를 이끌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절제된 생활은 오나라 관료 사회 전체에 건전한 기풍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235

[인재 등용과 공정함]

인재를 천거함에 있어 친분보다는 오직 능력과 인품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자신이 추천한 사람이 관직에서 성과를 내면 좋아했으나 결코 자신이 추천했다는 생색을 내지 않았습니다.
조정에서 논쟁이 벌어질 때도 편을 가르지 않고 오직 사실에 근거하여 중재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공정함 덕분에 고옹이 승상으로 있는 동안 오나라는 내부 갈등을 최소화하며 안정을 유지했습니다.

240

[가족의 슬픔과 평정심]

장남인 고소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으나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정무에 집중했습니다.

아들의 부고를 듣고도 바둑을 두던 손길이 흐트러지지 않았으나, 바둑판 아래로 손톱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고통을 참았습니다.
개인적인 비극 앞에서도 국가의 승상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으려는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주변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그의 충성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했습니다.

243

[재상의 마지막과 서거]

오랜 기간 승상으로서 헌신하던 고옹이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거 전까지도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며 손권에게 마지막 조언을 남긴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의 죽음에 손권은 크게 슬퍼하며 소복을 입고 문상을 갈 정도로 각별한 애도를 표했습니다.
죽음 이후 '숙후(肅侯)'라는 시호를 받아 그의 엄격하고 정중했던 평생의 삶을 기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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