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

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장군,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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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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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국시대, 오나라, 장군,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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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 대제 손권의 사위이자 충신으로 당대 명사 방통에게도 인정을 받은 인물. 청년 시절부터 어려운 이웃을 돕는 너그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뛰어난 군사적 재능으로 오나라의 주요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움. 산월족을 복속시키고 위나라 장수들을 격파하는 등 문무를 겸비한 명장으로 활약. 말년에는 태자 쟁탈전에 휘말려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손권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최고위직에 올랐던 오나라의 핵심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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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전종 출생 (추정)]

후한 말 삼국 시대 오나라 장군 전종이 양주 오군 전당현에서 태어났다고 추정된다. 자는 자황이다. 198년에 출생했다는 설도 있다.

후한 말 삼국 시대 오나라의 명장 전종이 양주 오군 전당현에서 태어났다고 추정된다. 그의 자는 자황이다.

205

[쌀을 나누어 빈민 구제]

아버지의 명령으로 오군에 쌀을 팔러 갔다가, 빈곤한 사대부들을 돕기 위해 쌀을 풀어 구제했다.

아버지 전유의 명으로 쌀 수천 곡을 싣고 오군으로 갔으나, 전종은 쌀을 빈곤한 사대부들에게 나누어 주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 이 일로 아버지의 분노를 샀으나, 전종은 사대부들이 고난에 처했기에 구제했다고 답했다.

210

[방통에게 평가받다]

주유의 상여를 운구하고 돌아가던 방통이 전종을 만나, 그를 베풀기 좋아하고 명성을 흠모하는 인물로 평했다.

주유가 죽고 방통이 그의 상여를 운구하여 오에 이르렀다가 돌아가는 길에 창문에서 육적, 고소, 전종을 만났다. 방통은 전종을 '베푸는 것을 좋아하고 명성을 흠모하니, 여남의 번자소와 비슷하다. 비록 지력은 많지 않으나, 역시 한 시대의 뛰어난 인물이다'라고 평했다.

215

[산월 토벌과 승진]

손권의 명으로 분위교위에 임명되어 산월을 토벌하고 정병 1만 명을 얻었으며, 편장군으로 승진했다.

손권이 전종을 분위교위로 임명하여 산월을 토벌하도록 했다. 전종은 이를 통해 정병 1만 명을 얻는 공을 세웠고, 편장군으로 승진했다.

219

[관우 토벌 계책 상소 및 봉작]

손권에게 관우 토벌 계책을 상소했으나 비밀 유지를 위해 답을 받지 못했다. 관우 체포 후 공을 인정받아 양화정후로 봉해졌다.

손권이 여몽과 관우를 습격할 계획을 세우던 중, 전종이 관우를 토벌할 계책을 상소했다. 손권은 비밀이 새는 것을 염려해 대답하지 않았으나, 관우를 체포한 후 전종을 치하하고 양화정후로 봉했다.

222

[동구 전투 승리 및 승진]

동구 전투에서 위나라 수군을 격파하고 적장 윤로를 효수하여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수남장군이 되고 전당후로 승진했다.

위나라 수군이 동구로 침입하자, 전종은 여범 휘하에서 적의 동태를 살피며 대비했다. 적병 수천 명이 강에 나타나자 이를 격파하고 서성과 함께 적장 윤로를 추격하여 효수하는 큰 공을 세웠다. 이로 인해 수남장군으로 전임되고 전당후로 승진했다.

225

[부절 하사 및 구강태수 겸임]

부절을 하사받고 구강태수를 겸임하게 되었다.

전종은 손권으로부터 부절을 하사받았으며, 구강태수직을 겸임하게 되었다.

228

[석정 싸움 참전 및 동안군 태수 부임]

석정 싸움에서 좌독으로 참전하여 조휴를 무찔렀다. 이후 단양, 오, 회계 지역 산월 백성들의 도적 행위를 진압하고자 동안군 태수가 되었다.

전종은 좌독으로서 3만 군사를 거느리고 석정 싸움에 참전하여 위나라의 조휴를 무찌르는 데 기여했다. 같은 해, 단양, 오, 회계 3군의 산월 백성들이 도적이 되어 속현들을 공격하자, 손권은 험지를 나누어 동안군을 세우고 전종을 태수로 삼아 민심을 수습하고 1만여 명을 투항시켰다. 이후 우저로 귀환하고 동안군은 폐지되었다.

229

[위장군 승진 및 손권의 사위가 되다]

손권의 동오 건국 후 위장군, 좌호군, 서주목으로 승진하고 공주 손노반과 결혼하여 손권의 사위가 되었다.

손권이 동오를 건국하고 대제에 오르자, 전종은 위장군, 좌호군, 서주목으로 승진했다. 또한 손권의 공주인 손노반과 혼인하여 황실의 사위가 되었다.

233

[육안 공격 (1차)]

보기 5만을 이끌고 육안을 공격했으나, 백성들이 달아나고 전종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성공하지 못하고 회군했다.

대제 손권이 합비신성을 침과 동시에 전종은 보기 5만을 지휘하여 육안을 쳤다. 육안의 백성들이 모두 흩어져 달아났으며, 제장들이 이들을 사로잡으려 했으나 전종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결국 대제와 전종 모두 이기지 못하고 돌아왔다.

237

[육안 재공격 실패 및 여습 내응 좌절]

육안을 다시 공격했으나 이기지 못했다. 또한 위나라 여강군 주부 여습의 내응 요청에 주환과 함께 출병했으나 발각되어 퇴각했다.

겨울 10월, 전종은 육안을 다시 공격했으나 이번에도 이기지 못했다. 같은 해, 위나라 여강군 주부 여습이 오나라에 대군을 요청하며 성을 열어 내응하려 했으나, 중도에 일이 발각되어 주환의 활약으로 퇴각할 수 있었다.

240

[주애·이주 정벌 반대 의견 개진]

대제 손권이 주애와 이주 정벌을 계획할 때 반대 의견을 내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대규모 병력 손실로 이어졌다.

전종은 사람됨이 공손하여 안색을 보아 의견을 바치는 데 능했으며, 언사는 남을 거스르지 않았다. 대제가 주애와 이주를 정벌하려 할 때 전종에게 의견을 물었고, 전종은 반대했다. 그러나 대제는 전종의 의견을 듣지 않고 출병했으며, 1년 후 질병으로 인해 병사 중 8, 9할을 잃는 대실패를 겪었다.

241

[회남 공략 및 작피 전투 패배]

대제의 명으로 회남을 공략, 작피를 무너뜨리고 안성 저각을 불태웠으나, 위나라 왕릉과의 작피 전투에서 패배하여 10여 장수를 잃었다.

여름 4월, 전종은 대제의 명령으로 회남을 공략하여 작피 제방을 무너뜨리고 안성 저각을 불태우며 그곳 백성들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위나라 정동장군 왕릉과 작피 제방을 두고 며칠간 치열하게 싸운 끝에 패배하여 중랑장 진황 등 10여 장수를 잃는 손실을 입었다.

242

[태자 권력 다툼 연루와 육손과의 불화]

대제 손권의 태자 손화와 노왕 손패 간 권력 다툼에서 차남 전기가 손패 당에 가담하며 연루, 승상 육손과 갈등이 시작되었다.

대제 손권이 태자 손화와 노왕 손패의 대우를 동등하게 하면서 태자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종의 차남 전기가 노왕 손패의 당에 가담하면서 전종 일가 역시 이 권력 다툼에 깊이 연루되었다. 이로 인해 승상 육손이 전종에게 편지를 보내 전기를 비호한 것을 경고하며 육손과 전종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

244

[고담, 고승, 장휴 무고 유배 사건]

작피 전투 논공행상 후 아들 전서와 조카 전단이 고담 형제보다 낮은 지위를 받자, 고담, 고승, 장휴를 무고하여 교주로 유배 보냈다.

작피 전투 이후 논공행상에서 손화파인 고담의 아우 고승이 장휴와 함께 전종의 맏아들 전서와 조카 전단보다 높은 지위를 받게 되었다. 이에 전종과 차남 전기는 이를 원망하여 고담, 고승, 장휴를 무고하여 교주로 유배 보내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는 당시 태자 손화와 노왕 손패 간의 권력 다툼과도 연관되어 있다.

246

[우대사마, 좌군사로 승진]

우대사마, 좌군사로 승진하여 더욱 높은 지위에 올랐다.

전종은 우대사마와 좌군사로 승진하여 더욱 높은 지위에 올랐다.

247

[전종 사망]

5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지위와 병사는 아들 전역이 계승했다.

전종은 동 10년(247년) 또는 동 12년(249년)에 5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지위와 그가 거느리던 병사는 아들 전역이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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