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유
삼국시대 인물, 오나라 왕족, 장군, 학자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14
손유(177-215)는 삼국시대 오나라 왕족이자 명장입니다. 손정의 차남으로 태어나 단양태수 수원장군 등을 역임했습니다. 오나라의 명장 주유와 함께 전공을 세웠으며 분위장군으로 승진하기도 했습니다. 군무 중에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학자들을 예우하며 학관을 설립하는 등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39세의 젊은 나이인 215년에 사망했습니다.
177
손정의 차남으로 자는 중이(仲異)이다.
204
공의교위로서 겸손한 태도로 손씨의 빈객들 중 강서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병사들을 거느렸다. 건안 9년(204년)에 암살당한 손익의 뒤를 이어 단양태수를 맡았고, 거느린 무리는 1만여 명에 달했으며 수원장군 직이 더해졌다.
206
건안 11년(206년)에 주유와 함께 마, 보 2둔을 쳐 무찔러 전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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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가 익주를 공략하도록 하는 표문을 올리면서 '분위장군'과 함께하고, 분위장군에게 촉을 맡기도록 진언했는데, 이 분위장군은 손유로 여겨진다.
209
손권이 촉을 쳐 취하고자 했을 때, 손권의 명령을 받고 하구에 주둔했다. 그러나 유비가 손유 군의 진입을 허용하지 않고 관우, 장비, 제갈량을 배치하여 방해하자, 손권의 명을 받아 되돌아왔다.
213
학문을 매우 좋아하여, 군무 중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학자를 예우하고 수하 관리들에게 학문을 익히게 했으며, 특별히 학관을 두어 인재 양성과 학문 진흥에 기여했다.
손권이 유수에서 조조와 대치했을 때, 공격하려는 손권에게 자중할 것을 권했다. 손권은 이 조언을 듣지 않았고, 결국 큰 군공을 거두지 못했다.
분위장군으로 옮겨졌으며, 옛 단양태수 직은 겸직으로 계속했다. 율양에서 우저로 주둔지를 옮겼다. 영안 사람 요조를 양안현 현장으로, 무석 사람 안련을 거소현 현장으로 임명하고, 여강 두 군을 불러들이게 하여 각자 투항자를 얻는 데 성공했다.
215
건안 20년(215년),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 중 손만은 장군에 이르렀고 후에 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