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범

삼국 시대, 오나라, 장군,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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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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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 시대, 오나라, 장군,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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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의 명장 여범은 뛰어난 용모와 지혜로 손책과 손권 두 주군을 보좌하며 오나라 건국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특히 적벽대전 등 주요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손권에게는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 충신이었습니다. 화려한 것을 즐겼지만 그 성실함과 위엄으로 모두에게 존경받았습니다. 비록 대사마 직책을 맡기도 전에 사망했으나 오나라 건국과 안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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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

[손책 휘하 합류]

젊은 시절 군의 관리가 되었으며, 난리를 피해 수하 1백 명과 함께 원술 휘하의 손책에게 합류하며 그의 보좌를 시작했습니다.

젊은 시절 군의 관리가 되었고, 난리를 피해 수춘으로 옮겨온 후 수하 1백 명과 함께 당시 원술 밑에 있던 손책에게 합류했습니다. 당시 여범과 손하만이 손책을 수행하며 고생 중에서도 어떤 상황에서든 피하지 않았습니다.

[손책 어머니 맞이 중 고문당함]

손책의 어머니를 맞이하러 갔으나 서주목 도겸에게 원술의 첩자로 오인받아 고문당했고, 식객들에 의해 구출되었습니다.

손책의 어머니가 강도에 있자, 손책의 명으로 어머니를 맞이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서주목 도겸이 원술과 사이가 틀어져 있었으므로, 원술의 사람인 여범을 정탐꾼으로 여겨 고문했습니다. 다행히 여범의 식객들이 그를 몰래 구출했습니다.

196

[강동 평정전 참여 및 호숙상, 도독 승진]

손책의 여강 육강, 유요 공격에 참여하여 장영, 우미를 무찌르고 호숙상을 겸임했습니다. 곡아와 말릉 평정 후 군사 2천과 말 50필을 하사받고 도독으로 승진했습니다.

손책이 여강의 육강을 칠 때 따랐으며, 유요를 치러 나아갈 때 그의 수하 장영과 우미를 무찔렀습니다. 이어서 소단양과 호숙을 함락시키고 호숙상을 겸임했습니다. 손책이 곡아와 말릉을 평정하여 유요와 착융의 잔여 세력을 흡수한 후, 여범에게 군사 2천 명과 말 50필을 하사했습니다. 이후 완릉령을 겸임하고 단양의 불복종 세력을 격파하며 도독으로 승진했습니다.

197

[진우 격파]

서일과 함께 하비의 명족 진우를 해서에서 격파하고 그의 대장 진목의 목을 베었습니다.

하비의 명족 진우가 오군태수를 자칭하고 해서에 주둔하며 엄백호와 내통하자, 여범은 서일과 함께 진우를 해서에서 공격하여 대장 진목의 목을 베었습니다. 《강표전》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진우의 관리, 병사, 처자 4천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198

[태사자 등 격파 및 정로중랑장 임명]

능양에서 조랑을, 용리에서 태사자를 칠 때 참전했으며, 이후 정로중랑장에 임명되고 강하를 친 후 파양을 평정했습니다.

능양에서 조랑을, 용리에서 태사자를 칠 때에도 손책을 따랐습니다. 이후 정로중랑장에 배령되었으며, 강하를 치고 돌아오는 길에 파양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습니다.

200

[손책의 죽음 후 손권 보좌]

손책이 죽은 후 오나라에서 장례를 치렀고, 손권이 강하를 공격할 때 장소와 함께 남아 수도를 지켰습니다.

손책이 죽자 오나라에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후 손권이 강하를 칠 때 장소와 함께 남아서 오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208

[적벽대전 참전 및 비장군 임명]

주유와 함께 조조를 적벽에서 격파하는 데 기여했고, 비장군에 임명되어 팽택태수를 겸하고 팽택, 시상, 역양을 봉읍으로 받았습니다.

주유와 함께 조조를 적벽에서 무찌르는 데 공을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비장군에 임명되었고 팽택태수를 겸했으며, 팽택, 시상, 역양을 봉읍으로 하사받았습니다.

209

[유비 구류 진언]

손권을 찾아온 유비를 구류할 것을 진언했으나, 손권은 노숙의 반대 의견을 받아들였습니다. 훗날 관우를 칠 때 손권은 이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유비가 손권을 찾아왔을 때, 유비를 구류해 둘 것을 손권에게 진언했습니다. 그러나 노숙은 여범의 의견에 반대하며 형주를 유비에게 빌려주어 동맹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손권은 노숙의 주장을 따랐습니다. 훗날 관우를 공격할 때 손권은 여범을 찾아가 당시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합니다.

221

[평남장군 및 건위장군, 단양태수 임명]

평남장군으로 시상에 주둔했으며, 손권이 무창으로 서울을 옮긴 후 건위장군, 완릉후, 단양태수로 임명되어 건업에 치소를 두고 동쪽 해안까지를 총괄했습니다.

평남장군이 되어 시상에 주둔했습니다. 손권이 관우를 격파하고 돌아와 무창에 서울을 두자, 여범은 건위장군, 완릉후, 단양태수에 임명되었습니다. 치소를 건업에 두어 부주(傅州) 이하는 물론 바다까지를 총괄했으며, 봉읍은 율양, 회안, 영국으로 바뀌었습니다.

222

[위나라 동구 침공 방어 지휘]

222년 9월, 위나라 조비의 대대적인 오나라 침공 시 동구 방면의 조휴, 장료, 장패 군대를 서성, 손소, 전종과 함께 막도록 지휘했습니다. 이 공로로 전장군으로 승진하고 가절을 받았습니다.

황무 원년인 222년 가을 9월, 위나라 조비가 대대적으로 오나라를 침공하자, 손권은 여범에게 서성, 손소, 전종을 지휘하여 동구에서 조휴, 장료, 장패 등의 군대를 막게 했습니다. 이 시기에 여범은 전장군으로 승진했고, 가절을 받았습니다.

[동구 전투 중 폭풍우로 패퇴 후 양주목 임명]

동구 전투 중 큰 폭풍우로 군대가 큰 피해를 입어 위나라의 공격에 패퇴하여 회군했습니다. 이후 위군이 계속 공격했지만 서성, 전종 등의 활약으로 막아냈고, 여범은 양주목이 되었습니다.

황무 원년 11월, 여범이 이끄는 군대는 동구 전투 중 큰 폭풍우를 만나 배가 뒤집히고 수천 명이 익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틈을 타 위나라 군대의 공격을 받아 패퇴하여 장강 남쪽으로 회군했습니다. 조휴 등 위군은 계속 공격을 퍼부었으나, 서성과 전종 등이 활약하여 이를 막아냈습니다. 이 시기에 여범은 양주목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28

[대사마 임명 직전 사망]

228년 대사마에 임명되었으나 인수를 받기도 전에 사망했습니다. 손권은 그의 죽음을 크게 슬퍼하며 태뢰로 제사지냈습니다.

황무 7년인 228년, 대사마로 임명되었으나 실제 임명 인수를 받기도 전에 사망했습니다. 손권은 여범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며, 국가의 큰 제사인 태뢰로 그의 영혼을 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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