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빙
위나라 장군, 삼국시대 인물, 강하 태수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07
문빙은 삼국시대 위나라의 강직한 장군입니다. 유표의 부하에서 조조에게 귀순하며 진정한 충신임을 증명했습니다. 수십 년간 강하군 태수로 부임하여 위나라의 남방 국경을 굳건히 지켜냈습니다. 특히 오나라의 맹장 관우와 손권의 대규모 침공까지 막아내며 위엄과 인정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의 충성과 뛰어난 방어 능력은 후대에도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200
문빙은 본래 형주목 유표의 대장으로서 형주 북방을 굳건히 지키며 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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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에게 항복과 충신 인정]
유표의 후계자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할 때, 형주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조조에게 늦게 출두하며 진심을 표출해 조조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208년 유표의 후계자 유종이 형주를 들어 조조에게 항복할 때, 문빙은 형주를 지키지 못한 죄의 처벌을 기다리겠다며 남았습니다. 조조를 만난 후, 형주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것을 슬퍼하며 흐느껴 울었습니다. 조조는 이를 보고 문빙을 진정한 충신이라 칭하며 후하게 대했습니다.
[조순과 함께 장판 전투에서 유비 격파]
조조에게 귀부한 후, 조순과 함께 유비를 추격하여 당양현 장판에서 유비군을 격파하는 전투에 참여해 공을 세웠습니다.
조조에게 귀부한 후, 조순과 함께 유비를 쫓아 당양현 장판에서 유비군을 격파하는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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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 태수 부임 및 관우와의 전투 승리]
동오와 맞닿은 강하군 태수 겸 관내후에 임명되어 변경을 방비했습니다. 악진과 함께 심구에서 관우를 격파하고, 한진에서 관우의 치중 선박을 불태워 토역장군에 임명되었습니다.
강하군은 동오와 붙어있어 민심이 불안했기에, 문빙은 강하 태수와 관내후에 임명되어 변경을 방비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악진과 함께 심구에서 관우를 쳐부수고 연수정후에 토역장군 직책을 더했습니다. 또한 한진에 있던 관우의 치중을 공격하여 형성에서 그의 배를 불태우는 등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220
220년 조비가 황제에 오르자, 문빙은 장안향후와 가절을 받으며 그 위상이 더욱 높아졌습니다.
222
[조비의 남정 참전 및 후장군 승진]
조진, 하후상 등이 강릉성을 포위하는 조비의 남정에서 면구에서 오나라군을 막아내는 공을 세워 후장군과 신야후에 올랐습니다.
222년 조진, 하후상 등이 남군 강릉성을 포위하는 조비의 남정에 참여하여, 별도로 면구에서 오나라군을 막아내는 공을 세웠습니다. 이 공로로 후장군과 신야후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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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의 석양 포위 방어전 대승]
조비 사후 손권이 5만 대군으로 석양을 포위하자 20여 일간 굳건히 방어하고, 철수하는 손권군을 추격하여 큰 피해를 입혔으며, 식읍도 늘어났습니다.
226년 조비가 죽은 틈을 타 손권이 5만 명을 이끌고 석양을 포위했으나, 문빙은 20여 일간 꿋꿋이 버텨냈습니다. 손권이 결국 물러가자, 문빙은 이를 추격하여 오나라군에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이 공로로 식읍 500호가 늘어나 총 1,900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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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 수십 년간 수호와 장후 시호]
강하를 수십 년간 위엄과 인정으로 다스려 오나라에도 이름이 알려질 정도였으며, 병으로 사망 후 '장후'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문빙은 강하를 수십 년간 위엄과 인정으로 다스려 그 이름이 오나라에도 알려질 정도였습니다. 병으로 사망했으며, 사후에는 '장후'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