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저
군인, 무장, 장군, 삼국지 인물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10:03
삼국지 시대 위나라의 전설적인 맹장이자 조조의 든든한 호위무사 허저! 뛰어난 괴력과 용맹함으로 호치(虎癡: 미련한 호랑이)라 불렸습니다. 조조의 목숨을 여러 번 구하며 절대적인 신임을 얻었고 원칙을 고수하는 우직한 성품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평생을 조조와 그의 아들들을 지킨 충직한 수호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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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경단 조직 및 괴력으로 도적 격퇴]
후한 말, 허저는 수천 명의 자경단을 조직하여 도적을 막았습니다. 여남군 갈피의 도적 1만여 명이 침입하자 사력을 다해 싸웠으며, 식량 부족 시 소를 한 손으로 100보 끌어 도적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의 괴력과 용맹은 인근 지역에 널리 퍼졌습니다.
후한 말, 허저는 수천 명의 자경단을 조직하여 도적들을 방어했습니다. 여남군 갈피의 도적 1만여 명이 쳐들어왔을 때, 허저의 자경단은 수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화살이 떨어지자 돌을 던지며 저항했고 도적들은 감히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식량이 동나자 도적들에게 소를 주는 대신 먹을 것을 받기로 했으나, 도적들이 소를 몰고 가기 어려워하자 허저가 직접 한 손으로 소 꼬리를 잡고 약 100보를 끌고 갔습니다. 도적들은 이 괴력에 놀라 소도 취하지 않고 도주했으며, 이 소문이 회, 여, 진, 양 일대에 퍼져 모두 허저를 두려워했습니다.
197
[조조에게 귀순 및 호위 임무 시작]
허저는 무리를 이끌고 조조에게 귀순하여 도위가 되었고, 자신을 따르는 협객들은 호사가 되어 조조의 호위를 맡았습니다. 이후 장수 정벌전에서 선봉으로 활약하여 교위로 승진하며 조조의 핵심 무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7년, 허저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조조에게 귀순했습니다. 그는 도위로 임명되었고, 그의 추종자들은 호사(虎士)가 되어 조조의 근위병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장수(張繡)와의 완성 전투 정벌전에서는 선봉에서 맹활약하여 그 공로로 교위로 승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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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도 대전 참전 및 조조 암살 저지]
관도 대전에 종군 중, 조조를 암살하려던 서타 등의 무리를 허저가 막아 조조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그의 충직함과 용맹으로 조조의 신임은 더욱 깊어졌으며, 이후 업성 전투에서도 공을 세워 관내후에 봉해졌습니다.
199년, 허저는 관도 대전에 종군하여 조조를 호위했습니다. 당시 조조를 곁에서 모시던 서타 등의 무리가 조조 암살을 모의했으나, 허저가 항상 조조의 좌우에서 호위했기에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허저가 잠시 쉴 때를 노려 서타 일당이 칼을 품고 조조의 장막에 난입하려 했으나, 허저가 수상함을 느끼고 즉시 돌아오자 서타 일당은 경악하며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조조의 신임은 더욱 두터워졌고, 언제나 곁을 떠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후 업성 전투에서도 힘껏 싸워 공을 세워 관내후에 봉해졌습니다.
211
[동관 전투에서 조조 호위 및 마초 압도]
211년 동관 전투에서 조조가 마초군에 습격당했을 때, 허저는 목숨을 걸고 조조를 배에 태우고 안장으로 화살을 막으며 구출했습니다. 마초와의 회담 시에도 조조 옆을 지키며 마초를 노려봐 위압감을 주었습니다. 이후 전투에서 승리하자 무위중랑장으로 승진했습니다.
211년, 조조가 동관에서 한수와 마초를 격퇴하려 할 때, 군대를 이끌고 강 북쪽으로 도하하던 중 조조와 허저의 호사 100여 명이 미처 건너지 못했습니다. 이때 마초가 1만여 명의 보병과 기병으로 습격해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자, 허저는 급히 조조를 부축해 배에 올리고 왼손으로 말 안장을 들어 조조를 보호했습니다. 난전 속에 뱃사공까지 유시에 맞아 죽자 오른손으로 배를 저어 간신히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이후 조조가 한수, 마초와 말을 탄 채 회담할 때 허저만 대동했는데, 마초가 허저의 용명을 익히 알았기에 조조에게 그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조조가 고개로 허저를 가리키자 허저는 눈을 부릅뜨고 마초를 노려보았습니다. 며칠 후 서로 교전에서 마초군을 크게 무찌르고 허저는 무위중랑장으로 승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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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관 전투 참전 및 예상치 못한 승리]
215년 조조가 장로를 정벌할 때, 허저는 양평관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조조군이 난항을 겪고 군량마저 떨어져 퇴각을 결정했으나, 밤에 부대가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장위군 진영에 들어가 북과 피리를 울리자 장위가 놀라 도망쳐 뜻밖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215년, 조조가 장로를 정벌할 때 허저는 양평관 전투에 참전했습니다. 장로의 동생 장위가 수만 명을 이끌고 양평관에서 항전했고, 조조군은 산 위의 여러 진지를 공격했지만 공략하지 못하고 사상자만 늘어났습니다. 군량마저 떨어져서 퇴각을 결심하고 하후돈과 허저로 하여금 산 위에 흩어져 있는 병사들을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고조가 지휘하던 최전선의 부대가 미처 돌아오지 못하고 밤에 그만 장위군의 진영으로 잘못 들어갔습니다. 때마침 사슴 수천 마리가 돌입하고 잘못 들어간 고조도 북과 피리를 울리니 장위가 크게 놀라 도망쳤습니다. 하후돈과 허저는 같이 후군에 있던 신비와 유엽이 이 사실을 말한 후에야 알아차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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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과의 대화 거부 및 중견장군 승진]
조조의 종실 조인이 허저와 사사로이 대화하려 했으나, 허저는 왕을 모시는 자는 사사로운 얘기를 할 수 없다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조조는 이를 듣고 허저의 충직함을 더욱 높이 평가하여 중견장군으로 승진시켰습니다.
한번은 조조의 종실이자 조정의 중신인 정남장군 조인이 형주에서 조조를 보러 왔습니다. 조조가 아직 전각에서 나오지 않아 일단 허저와 만나 대화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허저는 조인이 예를 갖추었음에도 조조가 곧 나온다는 말만 남기고 들어가 버려 조인을 불쾌하게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허저를 질책하자 “그는 아무리 충신이라 해도 외번(外蕃)입니다. 왕을 바로 가까이서 모시는 자가 어찌 사사로이 얘기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조조가 이를 듣고는 허저를 더욱 아끼고 의지했으며 중견장군으로 승진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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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죽었을 때 허저는 피를 토하며 통곡할 정도로 깊은 슬픔과 충심을 드러냈습니다.
[조비 즉위 후 높은 지위 유지]
조비가 황제에 오르자 허저는 만세정후에 봉해지고 무위장군에 임명되어 여전히 근위병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를 따르던 이들도 높은 작위를 받았습니다.
조비가 황제에 오르자 허저는 만세정후에 봉해지고 무위장군에 임명되어 조조 시절과 같이 근위병 임무를 맡았습니다. 허저를 따랐던 자들 중 수십 명이 제후에 오르고 100여 명이 도위나 교위가 되는 등 높은 공을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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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예 즉위 후 추가 봉작]
조예가 즉위하며 허저는 모향후에 봉해지고 식읍 700호를 받았으며, 그 아들에게도 관내후 작위가 내려졌습니다.
조예는 즉위하며 허저를 모향후에 봉하고 식읍 700호를 주었으며, 그 아들에게는 관내후의 작위를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