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패
삼국 시대 인물, 위나라 무장, 촉한 무장, 망명가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59
하후패는 중국 삼국 시대 위나라와 촉한을 오가며 활약한 파란만장한 삶을 산 무장입니다. 위나라 명장 하후연의 아들로 태어나 촉 정벌에 선봉으로 참전하며 입지를 다졌습니다. 위나라 권력 다툼 속에서 신변에 위협을 느껴 과감히 촉한으로 망명하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촉한에서는 장비의 처남이라는 특별한 인연으로 최고급 예우를 받으며 강유를 도와 위나라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의 삶은 급변하는 삼국 시대의 혼란 속에서 개인의 운명과 능력이 어떻게 펼쳐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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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무장으로 첫걸음]
위나라 황초 연간에 편장군에 임명되며 무장으로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조진이 이끄는 촉 정벌에 선봉장으로 참전하여 위나라의 핵심 전력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위략》에 따르면, 하후패는 황초 연간에 편장군이 되었고 조진의 촉 정벌에 선봉으로 참여했습니다. 이 시기 그는 위나라의 주요 군사 작전에 참여하며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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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 변경 방어 책임]
위나라 정시 연간에 토촉호군우장군으로 임명되어 전략적 요충지인 옹주의 수비를 책임졌습니다.
이 공로로 박창정후에 봉해지며 위나라 변경 방어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정시 연간에 토촉호군우장군이 되어 옹주 수비를 담당하며 박창정후에 봉해졌습니다. 《위략》에서는 그가 먼저 우장군이 되었고, 병사들을 잘 훈련시키고 서융(서쪽 오랑캐)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했다고 기록합니다. 이 시기 그는 하후유를 대신해 정촉호군이 되어 정서장군 하후현의 지휘 아래에서 활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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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를 등지고 촉한으로]
위나라의 권력 핵심이었던 조상과 가까웠던 하후패는 가평 원년(249년) 정월, 사마의에 의해 조상이 주살되자 신변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과거 사이가 나빴던 곽회가 정서장군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에 극도의 불안감을 느끼고 과감히 촉한으로 망명하는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가평 원년(249년) 정월, 조상 주살 사건은 하후패의 삶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조상과의 친분으로 인해 사마의의 보복을 두려워한 그는, 사마의가 하후현을 중앙으로 소환하자 하후현에게 가지 말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옹주자사 시절부터 불화가 있었던 곽회가 하후현의 후임 정서장군으로 부임한다는 소식은 그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고, 결국 촉한으로의 망명을 결심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삼국 시대에서 보기 드문 고위 장수의 적국 망명 사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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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의 최고위 무장으로]
촉한에 망명한 하후패는 장비의 처남이라는 특별한 인연 덕분에 조운과 비견될 만한 파격적인 예우를 받았습니다.
그는 강유와 함께 위나라의 집요한 공세를 막아내며 촉한의 든든한 방패가 되었고, 거기장군이라는 최고위직에 오르며 촉한군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습니다.
촉한에 망명한 하후패는 장비의 부인이었던 그의 여동생 하후씨와의 인연 덕분에 조운이 생전에 받았던 예우 못지않은 극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는 촉한의 대장군 강유와 함께 위나라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며 고락을 함께했고, 255년 이전부터 259년 이전까지 촉한의 거기장군으로서 장익과 요화의 전임 역할을 수행하며 촉한의 군사적 안정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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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여정의 끝]
촉한에서 맹활약하던 하후패는 259년 이전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촉한의 주요 무장 한 명을 잃는 큰 손실이었으며, 조운이 시호를 받기 전 그 또한 시호를 받았다는 기록은 촉한 내 그의 높은 위상을 엿볼 수 있게 합니다.
하후패는 259년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가 사망한 이후인 260년 조운이 시호를 받았을 때 이미 하후패가 그 이전에 시호를 받았다는 기록은, 망명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촉한에서 그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로 인정받았는지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