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소
정치가, 섭정자, 황실 시조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57
조위의 실권을 장악한 최고 권력자이자 서진 건국의 초석을 다진 인물. 아버지 사마의와 형 사마사의 대를 이어 정권을 장악했으며 관구검 제갈탄 등 주요 반란을 진압하며 군사적 역량을 입증했다. 황제 조모 시해 후 조환을 옹립하여 사실상 위나라의 모든 전권을 가졌다. 촉나라 정벌을 성공시켜 삼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사후 아들 사마염에 의해 서진의 문황제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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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소 탄생]
삼국시대 위나라의 정치가이자 훗날 서진의 시조가 되는 사마소가 태어나다.
그는 사마의의 둘째 아들이자 사마염 황제의 아버지로,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며 혼란했던 중국 대륙에 새로운 시대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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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봉작 및 전선 활약]
아버지 사마의의 사망 후, 형 사마사가 위나라의 실권을 잡는 동안 사마소는 위나라의 진공(晉公)에 봉해졌다.
그는 제갈량의 북벌과 왕릉의 반란을 진압하고 강유의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내는 등 전선에서 맹활약하며 위나라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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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등극과 반란 진압]
형 사마사가 위 황제 조방을 폐위하자, 관구검과 문흠이 회남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사마소는 이 반란군을 완벽히 격파하며 군사적 능력을 입증했다.
같은 해, 형 사마사가 죽자 그 뒤를 이어 조위의 최고 권력인 대장군에 오르며 실권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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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탄의 난 진압 대승]
감로 2년(257년), 제갈탄이 회남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오나라와 연합했다.
사마소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제갈탄의 난을 진압하며 탁월한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오나라 구원군을 격파하고 수춘을 포위한 뒤, 심리전을 펼쳐 제갈탄의 군량을 고갈시켰다.
결국 제갈탄을 참수하고 그의 일족을 멸하며 위나라 내 마지막 대규모 반란을 완전히 종식시켰다.
이 승리로 사마소의 권력은 더욱 공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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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 황제 시해 및 옹립]
조위 황제 조모는 사마소의 전횡에 위협을 느끼고 그를 제거하려 했다.
그러나 사마소는 이를 간파하고 역으로 조모를 시해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였다.
이후 그는 조환을 새로운 황제로 옹립하며 조위의 모든 실권을 장악, 황실의 허수아비화를 통해 자신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과시했다.
이 사건은 사마씨 정권의 기반을 더욱 단단히 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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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국으로 승진]
제갈탄의 난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공로를 인정받아 사마소는 조위의 최고 관직인 상국(相國)에 봉해졌다.
이는 그의 권력이 황실을 능가할 정도로 막강해졌음을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조치였다.
[촉나라 정벌 성공]
대륙 통일의 야망을 품은 사마소는 환관 황호로 인해 혼란에 빠진 촉나라를 정벌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명장 등애와 종회를 파견하여 촉나라를 공격하게 했고, 등애는 험준한 지형을 뚫고 들어가 결국 촉의 후주 유선을 항복시켰다.
이로써 삼국시대 한 축이었던 촉나라가 멸망하며, 위나라는 대륙 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첫 발을 내디뎠다.
[낙불사촉(樂不思蜀) 고사]
촉나라가 멸망한 후, 사마소는 항복한 촉의 후주 유선을 불러 술자리를 열고 "촉이 그립지 않느냐"고 물었다.
유선은 "즐기느라 촉한이 생각나지 않는다"고 답하며 무능함을 드러냈다.
이 고사는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에 빠져 고향을 잊음)'이라는 사자성어로 남아, 유선의 무능함과 사마소의 여유를 보여주는 역사적 일화로 전해진다.
사마소 : 당신은 촉한의 황제였고 촉한을 세운 유비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촉이 망했는데도 불구하고 슬프지 않습니까? 유선 : 즐기느라 촉한이 생각나지 않습니다.(樂不思蜀) 사마소 : (웃으며) 다시 묻겠습니다. 정말로 촉이 그립지 않습니까? 유선 : (그제서야 장소의 간언을 들으며) 그립습니다. 선주의 무덤이 있는 서쪽만 봐도 눈물이 흐릅니다. 사마소 : (신하의 간언을 듣고 말한것을 눈치채고) 누가 이야기 해줬습니까? 유선 : 신하가 얘기해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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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왕에 봉해지다]
조위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사마소는 마침내 자신을 진왕(晋王)에 봉하며 황제 즉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는 조위 황실의 명목상 존재를 더욱 분명히 하고, 사마씨가 새로운 왕조를 세울 것임을 만천하에 공표한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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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염 후계 지명 및 사망]
중풍으로 병상에 누운 사마소는 당초 사마유를 후계자로 생각했으나, 가충의 반대로 아들 사마염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겨우 손가락질만 할 수 있을 정도의 상태에서 마지막 유지를 남긴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그의 죽음은 서진 건국의 초석을 놓은 거인의 마지막을 알리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