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
삼국시대 장군, 위나라 인물, 군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55
조진은 조위의 최고위 무장이자 핵심 인물로 조조의 양아들이자 조비의 고명대신입니다. 덕망과 뛰어난 무용으로 부하들의 신뢰를 받았으며 특히 촉한 제갈량의 북벌을 두 차례 성공적으로 저지한 당대 최고의 명장입니다. 그의 공적과 인품은 정사에서 높이 평가되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사마의와 대비되며 공이 축소되기도 했습니다. 위나라 군권을 총괄하는 대사마까지 오르며 충신이자 덕장으로 존경받았습니다.
217
[하변 전투 참전 및 승진]
장비와 마초가 무도군으로 진격해 오자 편장군으로 조홍 휘하에 종군하여, 이듬해 오란과 뇌동 격파에 공을 세우고 중견장군으로 승진했습니다.
조진은 조조의 친족으로 어려서부터 용맹함과 활 솜씨로 조조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건안 22년(217년) 장비와 마초가 무도군 하변현에 오자 편장군으로 참전하여 큰 공을 세웠고, 218년 오란과 뇌동을 격파하는 데 기여하며 중견장군으로 승진하여 위나라의 핵심 장군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19
유비가 한중으로 쳐들어오자 중령군으로 조조를 수행했습니다. 정군산에서 위나라의 핵심 장군인 하후연이 황충에게 전사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자, 조진이 정촉호군이 되어 서황 등을 지휘하여 고상을 격파하며 위군의 사기를 되살렸습니다. 그러나 결국 조조는 한중을 포기하고 진창으로 물러나야 했습니다.
220
[서부 전선 총괄]
조비가 왕위에 오르자 진서장군, 도독옹양주제군사로 임명되어 서부의 최고 지휘관이 되었으며, 동향후에 봉해지는 등 위나라의 핵심 무장으로 부상했습니다.
연강 원년(220년), 조비의 즉위와 함께 서쪽 국경 방어를 책임지는 진서장군 및 도독옹양주제군사에 임명되었으며 동향후에 봉해졌습니다. 같은 해 5월 주천과 장액에서 일어난 황화, 장진 등의 반란을 도왔고, 장합과 함께 안정의 노수호와 동강족을 정벌하여 서북 지역의 안정을 확고히 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222
[강릉 공방전 지휘]
조비의 대규모 남정에서 상군대장군으로 남군을 공격, 강릉을 6개월간 포위하며 오나라 주연을 압박했으나, 성을 함락시키지는 못하고 결국 철수했습니다.
황초 3년(222년) 조비의 남정 시 상군대장군, 가절월, 도독중외제군사에 임명되어 하후상, 장합 등과 함께 남군으로 진격했습니다. 주연이 지키는 강릉성을 6개월간 끈질기게 포위했으나, 성안의 질병과 병력 부족에도 불구하고 주연의 철저한 방어에 고전했습니다. 결국 223년 3월, 강물 범람과 전염병까지 겹쳐 대규모 피해를 막기 위해 철수해야 했습니다.
226
[위나라 대장군 취임]
조비의 임종 시 진군, 조휴, 사마의와 함께 고명대신으로 유조를 받았으며, 조예 즉위 후 최고 군직인 대장군에 오르며 소릉후에 봉해졌습니다.
황초 7년(226년) 조비가 임종에 이르자 진군, 조휴, 사마의와 함께 그의 유조를 받들어 황태자 조예를 보필할 고명대신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어서 명제 조예가 즉위하며 12월 최고 군직인 대장군에 오르고 소릉후에 봉해지며, 명실상부한 위나라 군부의 총수로 부상했습니다.
228
[제갈량 북벌 성공적 저지]
제갈량의 첫 북벌 시 관서 군대를 맡아 조운과 등지를 격퇴하고, 장합과 함께 가정에서 마속을 격파하여 제갈량을 퇴각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태화 2년(228년) 제갈량이 첫 북벌을 개시하며 안정, 남안, 천수 3군이 촉에 호응하자, 명제는 조진에게 관서의 군대를 맡겨 미현에 주둔시켰습니다. 조진은 조운과 등지를 기곡에서 격퇴했고, 장합이 가정에서 마속을 격파하는 데 기여하며 제갈량의 북벌을 성공적으로 저지했습니다. 이는 위나라의 방어를 책임지는 그의 능력을 입증한 대사건입니다.
[진창 방어 예측 및 성공]
제갈량이 진창으로 공격할 것을 정확히 예측하여 학소와 왕생에게 방비를 지시했고, 덕분에 진창은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 제갈량의 재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기산 루트가 막히자 조진은 제갈량이 다음에는 반드시 진창 쪽으로 올 것이라 예측하고 학소와 왕생에게 철저한 방비를 지시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예상대로 제갈량이 진창을 포위했지만 학소가 20여 일을 완강히 버텨내자 결국 공성을 중단하고 퇴각했습니다. 이로써 조진의 뛰어난 군사적 통찰력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고, 이 공으로 식읍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230
[대사마 승진 및 촉 정벌 실패]
최고위 군직인 대사마에 올랐으며, 명제에게 촉한을 공격할 것을 건의하여 대규모 원정을 이끌었으나 30여 일간의 폭우로 회군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명제 시대에 최고 군직인 대사마까지 올랐고, '검리상전', '입조불추'의 특권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는 이 해 촉한을 여러 길로 칠 것을 명제에게 건의하여 대규모 원정을 시작했습니다. 장안을 출발하여 자오도를 따랐으나, 30여 일간 이어진 큰비와 잔도 파괴로 회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원정은 그의 마지막 대규모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231
[병사 및 사후 영광]
촉한 원정 후 병이 악화되어 낙양에서 사망했습니다.
명제가 직접 문병할 정도로 깊이 추모받았으며, '원후'의 시호를 받고 그의 아들들이 모두 열후에 봉해졌습니다.
230년 촉한 원정 후 병이 들어 낙양으로 돌아온 조진의 병세는 계속 악화되었습니다. 명제는 친히 찾아가 그의 병세를 살폈을 정도로 그를 아꼈습니다. 결국 231년 3월, 위나라의 대들보였던 조진은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사후 '원후'의 시호를 받았으며, 장남 조상을 비롯한 다섯 아들 모두 열후에 봉해지며 가문이 번성했고, 이는 그의 공로와 덕망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