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완

삼국시대, 촉나라, 정치가,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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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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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촉나라, 정치가, 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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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나라의 주요 재상으로 제갈량 사후 나라를 이끈 핵심 인물. - 제갈량의 깊은 신뢰를 받았으며 뛰어난 인품과 너그러운 리더십으로 촉한의 안정을 유지. - 촉의 사상 중 한 명으로 꼽히며 어려운 시기에도 흔들림 없는 태도로 백성들의 신뢰를 얻음. - 북벌을 계획했으나 병환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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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광도현 현령 부임]

유비를 따라 촉으로 들어가 광도현의 장이 됨.

장완은 주서과의 신분으로 유비를 따라 촉 땅으로 들어가 광도현의 장이 되었다.

[유비에게 면직당할 위기]

유비에게 광도현 현령으로서의 직무 태만으로 처벌받을 위기에 처했으나 제갈량의 변호로 구원되고 관직 박탈.

유비가 광도현을 방문했을 때 장완이 술에 취해 직무를 해결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크게 노여워하여 처벌하려 했으나, 제갈량의 간언으로 벌을 면하고 관직만 박탈당했다.

219

[십방 현령 및 상서랑 부임]

소 꿈 해몽 후 십방 현령을 거쳐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성도에서 상서랑이 됨.

면직 후 소 꿈을 꾸었고 해몽가 조직은 '공(公)' 자의 형상이라며 길한 징조라고 풀이했다. 이후 십방의 현령이 되었다가,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성도로 들어가 상서랑이 되었다.

223

[동조연 임명]

제갈량에 의해 동조연에 임명됨.

건흥 원년(223년) 승상 제갈량이 문무관원 회의에서 장완을 초빙하여 동조연으로 임명했다.

[무재 천거 사양]

무재에 천거되었으나 사양하며 다른 인물들을 추천, 제갈량에게 꾸짖음을 들음.

무재에 천거되었으나 간곡하게 사양하며 유옹, 음화, 방연, 요순을 대신 추천하였다. 이에 제갈량은 그에게 자신의 공업과 덕행을 나타내어 선발의 타당성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227

[참군 승진 및 국정 총괄]

참군으로 승진하고,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하는 동안 장사 장예와 함께 국정 총괄.

건흥 5년(227년) 참군으로 승진했으며,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하고 있을 때에는 장사 장예와 함께 촉의 국정을 총괄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230

[장사 및 무군장군 부임]

장예 사망 후 그의 뒤를 이어 장사가 되고 무군장군 벼슬을 더함.

건흥 8년(230년) 장예가 죽자 장완이 그의 뒤를 이어 장사가 되었으며, 무군 장군의 벼슬까지 더해져 그 위상이 더욱 높아졌다.

233

[제갈량의 후계 지명]

제갈량으로부터 '제왕의 대업을 도울 사람'이라는 높은 평가를 받고, 사후 후계자로 지명됨.

제갈량은 장완의 곧은 뜻과 충성스러운 인품을 높이 평가하며 '나와 함께 제왕의 대업을 도울 사람'이라고 말했다. 또한, 황제 유선에게 은밀히 표를 올려 자신이 불행해지면 장완에게 대업을 맡기라고 건의했다.

234

[제갈량 후계자로서 병권 승계]

제갈량 사후 상서령에 임명되고 도호를 대행하며 제갈량의 병권을 이어받고 익주자사를 겸임.

건흥 12년(234년) 제갈량이 세상을 떠나자 장완은 상서령에 임명되었고, 곧 관직이 더해져 도호를 대행하게 되었다. 황제 유선으로부터 부절을 받아 제갈량의 병권을 이어받았고, 익주자사를 겸임하며 실질적인 촉한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대장군 승진 및 신뢰 확보]

대장군, 녹상서사, 안양정후로 승진하며 제갈량 사후 혼란 속에서도 차분한 모습으로 백성들의 신뢰를 얻음.

상서령에 임명된 후 대장군과 녹상서사를 지냈으며 안양정후로 봉해졌다. 제갈량 사후 많은 사람들이 동요하는 가운데 장완은 슬퍼하거나 기뻐하지 않고 차분하게 국정을 안정시켜 사람들의 신뢰를 얻었다.

238

[유선의 북벌 명령]

유선 황제로부터 조서를 받아 북벌 준비를 지시받고, 요동의 변란을 기회 삼아 위나라 공격을 계획.

연희 원년(238년) 유선 황제는 장완에게 위나라의 변란(요동의 반란)을 하늘이 내린 기회라며 북벌을 준비하고 한중에 주둔하여 동맹국 오나라와 호응하여 행동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이에 장완은 북벌 수행에 필요한 부서를 개설하도록 지시받았다.

239

[대사마 승진]

대사마로 승진.

연희 2년(239년) 장완은 대사마로 승진했다.

240

[인재 포용 및 사심 없는 판결]

자신을 무시하거나 비방한 양희와 양민을 너그럽게 대하며 사심 없이 판결하여 인품을 드러냄.

동조연 양희가 자신과의 대화에서 응답하지 않을 때, 겉으로는 순종하고 속으로는 악언을 하는 것보다 낫다며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또한, 자신을 비방했던 독농 양민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사사로운 감정 없이 공정하게 판결하여 중죄를 면하게 해 주며 인품과 도량을 보여주었다.

242

[새로운 북벌 계획 수립]

육로 보급의 어려움을 고려, 한수와 면수를 통한 위흥 및 상용 습격 계획을 세웠으나 병환과 신하들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함.

제갈량의 육로 북벌 보급 문제를 교훈 삼아 한수와 면수의 급류를 타고 위흥과 상용을 습격하는 새로운 북벌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지병이 악화되고 다른 신하들의 반대가 있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비의, 강유 등을 보내 유선에게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게 했다.

246

[부현으로 이동 및 사망]

부현으로 돌아가 북벌 계획을 재추진하려 했으나 병환이 악화되어 세상을 떠남.

부현으로 돌아가 주둔하며 급류를 이용한 신속한 진군 계획을 다시 실행에 옮기려 했지만, 병이 더욱 심해졌다. 결국 연희 9년인 246년 세상을 떠났으며, 시호는 공(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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