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정치가, 삼국시대 인물, 촉한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47
비의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로 유비 사후 제갈량 장완의 뒤를 이어 촉한의 실권을 쥔 인물입니다. 탁월한 인품과 외교적 수완으로 제갈량과 손권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위연과 양의의 갈등을 중재하는 등 뛰어난 조정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장완 사후 병권을 이어받아 위나라의 침공을 막아내는 등 국방을 책임졌습니다. 만취 상태에서 항복한 위나라 장수 곽순에게 암살당하며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214
유비가 촉을 평정하면서 비의는 그대로 촉에 남게 되었고, 여남의 허숙룡, 남군의 동윤 등과 함께 명성을 나란히 하였다. 이 시기에 제갈량 앞에서 보여준 태연함으로 동화에게 인정을 받기도 했다.
221
[유비 황제 즉위 후 태자사인 임명.]
유비가 황제로 즉위하고 유선을 태자로 세우자 동윤과 함께 태자사인이 되었고 이후 서자로 승진했다.
221년 유비가 황제 자리에 올라 유선을 태자로 세우자, 비의는 동윤과 함께 태자사인이 되었으며, 승진하여 서자가 되었다.
223
223년 유비가 죽고 유선이 제위에 오른 후에는 황문시랑에 임명되었다.
225
[제갈량의 신임을 얻다.]
승상 제갈량이 남정에서 돌아왔을 때, 나이가 많은 다른 관료들보다 특별히 제갈량의 수레를 타는 영광을 얻어 그의 신임을 보여주었다.
225년 승상 제갈량이 남정에서 돌아왔을 때, 관료들은 수십리까지 가서 영접했다. 제갈량은 나이가 위였던 다른 관료들보다 특별히 비의에게 수레를 탈 것을 명했고, 그 이후로부터 모든 사람들은 그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
[손권에게 사자로 파견되어 외교 역량 발휘.]
제갈량의 명으로 소신교위가 되어 오나라 손권에게 사자로 파견되어, 손권과 오의 막료들을 설득하고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다.
제갈량은 남정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비의를 소신교위에 임명하여 손권에게 보냈다. 손권은 해학을 즐기고 사람을 비웃는 성격이었으며, 제갈각, 양도 등 변설에 능한 막료들이 비의를 힐난했으나, 비의는 날카로운 기세로 바른 말을 하고 이치에 근거하여 대답하여 오의 막료들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 손권은 비의를 귀중하게 여겨 "그대는 천하의 미덕을 갖춘 사람이며, 틀림없이 촉이 제일 신임하는 신하가 될 것"이라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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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 승진 및 제갈량 북벌 참군 임명.]
오나라에서 돌아온 후 시중으로 승진했고,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하자 참군으로 임명되어 유선을 대신하여 오나라에 사자로 자주 파견되었다.
비의가 촉으로 돌아오자 시중으로 승진했으며, 제갈량이 한중에 주둔했을 때 유선에게 요청하여 비의는 참군이 되었다. 그는 유선의 뜻을 받들어 오나라에 자주 사자로 갔다.
230
[제갈량 북벌 참가 및 위연-양의 갈등 중재.]
제갈량의 북벌에 참가하여 중호군으로 전임되었고 사마로 임명되었으며, 위연과 양의의 심각한 갈등을 중재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30년 비의는 제갈량의 북벌에 참가하여 중호군으로 전임되었다가 사마로 임명되었다. 당시 군사 위연과 장사 양의는 서로 증오하여 한자리에 앉을 때마다 마찰을 일으켰고, 심지어는 위연이 양의를 죽이려 할 정도였다. 비의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아 간언하고 훈계하며 시비를 구분하고 깨우쳐 주어, 제갈량이 죽기 전까지 두 사람이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도록 조력했다.
234
[제갈량 사망 후 후군사 승진 및 양의 사건 보고.]
제갈량 사망 후 후군사로 승진했고, 중군사 양의가 장완을 질투하여 위나라로 귀순하려 한다는 말을 흘리자 이를 황제에게 보고하여 양의의 몰락을 초래했다.
제갈량이 죽은 후 비의는 후군사로 승진했다. 이때 양의가 중군사라는 높은 관직에 봉해졌음에도 장완을 질투하여 위나라로 귀순해야 했다는 말을 비의에게 흘려버렸다. 비의는 이를 황제 유선에게 보고하였고, 양의는 서민으로 강등당한 후에도 비방을 그치지 않아 결국 유선에게 탄로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35
[촉한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
제갈량 사후 장완을 대신하여 상서령이 되었고, 장완이 부현으로 돌아가자 대장군 겸 녹상서사에 올라 촉한의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가 되었다.
제갈량의 뒤를 이은 장완을 대신하여 상서령이 되었고, 장완이 한중에서 부현으로 돌아가자 비의는 대장군이 되었으며 녹상서사가 되었다. 이로써 비의는 촉한의 군권과 정권을 모두 장악하게 되었다.
244
[조위 침공 격퇴 및 성향후 봉작.]
위나라 조상이 이끄는 군대가 한중을 침공하자, 부절을 받아 왕평을 도와 위군을 막아냈고, 침공군을 격퇴한 공으로 성향후에 봉해졌다.
244년 위나라 조상이 이끄는 군대가 한중을 침공하여 흥세산에 주둔하려고 하자, 유선은 비의에게 부절을 주어 위나라 군대와 싸우고 있는 왕평을 도와 위나라군을 막도록 했다. 이때 광록대부 내민이 바둑을 청했으나, 비의는 침착하게 응하며 적임자임을 인정받았다. 내민의 말대로 비의는 후퇴하는 적을 공격하여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게 만들었다. 이 공으로 비의는 성향후에 봉해졌다.
245
[익주자사 겸임, 장완과 비견되는 명성.]
장완이 익주목을 사양하자 익주자사를 겸임하게 되어 그의 공적과 명성이 장완에 필적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장완이 익주 주목의 자리를 완곡하게 사양하자 비의는 익주자사를 겸임하게 되었다. 이로써 비의의 공적과 명성은 장완에 필적할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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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년 장완이 죽은 후에는 그에게부터 병권을 이어받았다.
248
248년 왕평이 죽은 후에는 한중에 주둔하며 북방 국경 방어의 중책을 맡았다.
251
251년 여름 비의는 성도로 돌아왔으나 성도의 운기를 보고 점쟁이가 "도성에는 재상의 자리가 없다"고 말하자 비의는 겨울에 다시 북쪽에 있는 한수에 주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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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년 유선은 비의에게 부서를 개설하라고 명령했다.
253
253년 정월(음력) 대연회가 개최되었는데 위나라에서 항복한 곽순이 칼을 품고 출석했다. 곽순은 애초에 유선을 암살하려 했으나 경호가 삼엄하여 쉽지 않았다. 비의는 이전부터 장억에게 경계에 소홀하다는 경고를 받을 정도로 새로 귀순한 자에게도 허물이 없었는데, 그가 만취했을 때 곽순에게 대신 죽임을 당했다. 시호는 경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