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근

정치인, 외교관, 군인, 제갈량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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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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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외교관, 군인, 제갈량의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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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량의 친형이자 오나라의 핵심 정치인 겸 외교관입니다. • 손권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오나라의 외교와 군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직설보다 비유와 완곡한 표현으로 손권의 마음을 움직이는 뛰어난 조언자였습니다. • 동생 제갈량을 위해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보내는 등 깊은 형제애를 보여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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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제갈근 출생]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오나라의 정치인 제갈근이 태어났다. 자는 자유이며 서주 낭야국 양도현 출신으로, 제갈량과 제갈균의 형이다.

제갈근은 174년에 태어났다. 자는 자유(子瑜)이며 서주 낭야국 양도현(陽都縣) 사람이다. 제갈량, 제갈균의 형이다.

196

[손권 휘하에 합류]

조조의 서주 침공을 피해 형주로 이주한 후, 손권의 누나 남편 홍자의 천거로 손권을 섬기게 되었다. 노숙과 함께 빈객의 대우를 받았으며, 후에 장사와 중사마로 전임되었다.

196년, 조조의 서주(徐州) 침공에 난리를 피해 형주로 이주한 후 마침 손책이 죽고 손권 누나의 남편 홍자(弘咨)에게 천거되어 손권을 섬겼으며, 노숙과 함께 빈객의 대우를 받았다. 후에 장사(長史)가 되고, 중사마(中司馬)로 전임되었다.

214

[유비에게 형주 반환 요구]

유비가 촉을 손에 넣자 사자로 파견되어 형주를 돌려줄 것을 요청했으나, 유비는 이를 거절했다. 이로 인해 손권과 유비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건안 14년(214년), 유비가 촉을 손에 넣자 사자로 파견되어 형주를 돌려줄 것을 요청했으나, 유비는 돌려주지 않았다. 손권은 장사, 영릉, 계양 3군을 빼앗아 한동안 유비와 분쟁 상태에 있었다.

215

[유비와 형주 분쟁 해결]

촉에 파견되어 유비와 우호를 맺었으며, 강하, 장사, 계양을 손권에게 주는 것으로 양측의 형주 분쟁이 마무리되었다. 아우 제갈량과는 공적으로 만났으나 사적으로는 대면하지 않았다.

20년(215년), 제갈근은 촉에 파견되어 유비와 우호를 맺어 양측은 강하, 장사, 계양을 손권에게 주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아우 제갈량과는 공적으로 만났으나, 사적으로는 대면하지 않았다.

219

[관우 토벌 참여 및 남군태수 겸임]

관우 토벌에 참가하였으며, 수남장군으로써 여몽을 대신하여 남군태수를 겸임하고 공안에 주둔했다.

219년, 관우 토벌에 참가하였으며, 수남장군으로써 여몽을 대신하여 남군태수를 겸임하여 공안에 주둔했다.

221

[유비 침공 시 화친 시도]

유비가 쳐들어오자 손권은 평화를 구했으며, 제갈근은 유비에게 화친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 제갈근이 유비와 내통한다는 소문이 돌았으나, 손권은 이를 듣지 않고 제갈근을 깊이 신뢰했다.

221년, 유비가 쳐들어오자 손권은 평화를 구하여, 제갈근은 유비에게 화친의 편지를 보냈다. 당시 제갈근이 유비와 내통하고 있다는 참언이 돌았으나, 손권은 전혀 듣지 않고, 제갈근을 깊이 신뢰했다.

222

[좌장군 임명 및 위나라와의 강릉 전투]

황무 원년, 좌장군, 공안독, 가절이 되고 완릉후에 봉해졌다. 손권이 조비의 인질 요구를 거부하자 위나라가 대대적으로 오나라를 쳐들어왔고, 제갈근은 대군을 이끌고 강릉성의 주연을 도와 위나라 장수들과 싸웠으나 한때 격파당하기도 했다.

황무 원년(222년), 좌장군 · 공안독 · 가절이 되었고 완릉후에 봉해졌다. 손권이 조비의 인질 요구를 거부하자, 위나라는 대대적으로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쳐, 유수, 동구, 강릉 세 방면으로 왔다. 제갈근은 양찬, 손성, 반장(潘璋)과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강릉성의 주연(동오)을 도와 하후상, 장합, 조진, 서황과 싸웠다. 제갈근은 강 가운데 섬을 점령하고 수군을 나누었는데, 하후상이 밤에 유선을 가지고 보기 1만 명을 이끌고 하류에서 몰래 강을 건너, 제갈근의 배를 불태우고 수륙병진하니 제갈근이 격파당했다. 한편 손성도 장합의 공격을 받고 퇴각해 주연은 궁지에 몰렸다.

223

[위나라 군대 격퇴]

전년도에 위나라 군에게 격파당했으나, 이듬해 3월 중주마저 넘겨준 후 봄물이 날 때 부교를 띄우고 반장과 함께 진공하여 마침내 위나라 군대를 물렸다. 병사를 잃지 않고 적을 몰아낸 것을 공으로 인정받았다.

제갈근은 이미 한 번 격파를 당했고, 이듬해 3월 조진에게 중주마저 넘겨줬으나, 도리를 살펴 기복에 의존하지 않고, 봄물이 날 때 부교를 띄우고 반장과 함께 진공하여 마침내 위나라 군대를 물렸다. 손권은 당초 제갈근이 임기응변을 쓰지 않는 것을 원망했으나, 결국 큰 공은 없어도 병사를 잃지 않고 적을 몰아낸 것을 공으로 삼았다.

229

[대장군 및 예주목 겸임]

손권이 황제가 되자 제갈근은 대장군, 좌도호가 되고 예주목을 겸임하며 오나라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

황룡 원년(229년), 손권이 황제가 되자 제갈근은 대장군 · 좌도호가 되고 예주목을 겸임했다.

234

[제갈량의 5차 북벌 호응]

손권이 제갈량의 5차 북벌에 호응하면서 육손과 함께 강하 면구에 주둔했다. 육손과 협력하여 피해 없이 퇴각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또한 오래 자식이 없던 제갈량에게 둘째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보냈다.

동 5년(234년), 손권이 제갈량의 5차 북벌에 호응하면서 육손과 함께 강하 면구에 주둔했다. 육손이 손권에게 한편을 파견하여 상황을 보고하고 돌아오게 했는데, 그만 위군에 사로잡혀버렸다. 제갈근은 실정이 들통나고 또 손권은 회군했으므로 육손에게 편지를 보내 퇴각하기를 구했으나, 육손은 답장은 하지 않고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제갈근이 직접 찾아가자, 육손은 곧장 퇴각하기 어려운 까닭을 밝히고 제갈근과 함께 계획을 세워, 피해를 입지 않고 퇴각했다. 오래 자식이 없던 제갈량에게 둘째 아들 제갈교를 양자로 들여보냈다.

241

[위나라 정벌 후 퇴각 및 사망]

손권이 대규모로 위나라를 정벌하자 제갈근은 조중 땅을 취했다. 그러나 전종의 참패로 다른 전선 장수들과 함께 퇴각했으며, 다음 윤달에 사망했다. 모든 것을 검소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적오 4년(241년), 손권이 대규모로 위나라를 정벌하여, 제갈근은 조중 땅을 취했다. 그러나 전종(全琮)이 왕릉(조위)에게 참패하였으므로, 제갈근 등 다른 전선의 장수들도 모두 퇴각하여 6월에 돌아왔다. 제갈근은 다음 윤달에 죽었다. 유언으로 모든 것을 검소하게 하도록 했다. 맏아들 제갈각은 자신의 공로로 이미 작위를 받았고, 둘째 제갈교는 제갈량에게 양자로 갔기에, 셋째 제갈융이 제갈근의 작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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