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축

정치가, 촉한, 후한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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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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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촉한, 후한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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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축은 후한 말기부터 촉한 초기에 걸쳐 유비의 가장 굳건한 재정적 정신적 기둥이었다. 막대한 재산을 아낌없이 털어 유비의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게 도왔으며 심지어 제갈량보다 높은 직책을 받아 그의 깊은 총애를 증명했다. 비록 동생의 배신으로 비극적인 말년을 맞았지만 그의 변함없는 충성심은 삼국지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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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여인의 경고로 화재를 면함]

낙양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신비한 여인의 도움으로 자신의 집에 닥칠 화재를 미리 알고 재산을 지켜냈습니다. 이는 미축의 온화한 인품과 관련된 일화로 전해집니다.

미축이 아직 서주에 머물던 시절, 낙양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아름다운 신부를 만나 수레에 태워주었다. 그 신부는 자신을 하늘의 사자라 밝히며 미축의 집에 화재가 날 것을 미리 알려주었다. 덕분에 미축은 가재도구를 옮겨 큰 손실을 면할 수 있었다는 신비한 일화가 전해진다.

193

[도겸의 별가종사로 임명]

서주자사 도겸의 명성을 듣고 초빙되어 별가종사로 임명되었습니다. 선조 대대로 거느린 전객이 1만 명에 달할 정도로 막대한 재물을 가지고 있었던 미축은 그의 명성을 들은 서주자사 도겸에게 초빙되어 별가종사로 임명되며 정치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194

[유비의 서주 입성을 지원]

병으로 위독해진 도겸에게 유비에게 서주를 맡길 것을 권했으며, 도겸 사후 유비를 서주목으로 추대하여 유비의 정치적 기반 마련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도겸이 병들어 위독해지자 미축은 유비에게 서주를 맡기자고 권했다. 도겸이 사망하자 그의 유지를 받들어 서주 사람들을 거느리고 유비를 맞이하여 유비가 서주목을 대행하게 함으로써 유비가 서주에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도왔다.

196

[유비에게 누이와 재물 지원]

여포에게 근거지를 잃고 떠돌게 된 유비를 위해 자신의 누이를 유비에게 시집보내고, 노객 2천 명과 막대한 군자금을 지원하여 유비 세력 유지에 결정적 기여를 했습니다.

196년, 유비가 서주로 쳐들어온 원술과 대치하던 도중 여포가 하비를 탈취하여 유비의 처자를 사로잡자 유비는 근거를 잃고 떠돌았다. 미축은 자기 누이를 유비에게 시집보내고 노객 2천 명과 막대한 군자금을 대는 등 유비 세력이 붕괴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왔다.

197

[조조의 관직 제안 거절 및 유비 동행]

조조가 영군태수 자리를 제안했으나, 이를 사직하고 동생 미방과 함께 안정된 삶을 포기한 채 유비를 끝까지 따르며 변함없는 신의를 보여주었습니다.

조조가 태산군의 일부 현을 갈라내 영군을 설치하며 편장군이던 미축으로 영군태수를 맡기고 그의 동생 미방은 팽성상으로 임명했으나, 형제는 모두 사직했다. 조상 대대로 살던 서주를 떠나 세력 기반을 잃고 조조, 원소, 유표 밑을 떠도는 유비를 따라 각지를 전전하며 끝까지 충성을 지켰다.

214

[익주 평정 후 안한장군 임명]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안한장군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군사장군이었던 제갈량보다도 높은 직책으로 유비의 깊은 신임을 증명했습니다.

유비가 익주를 평정한 후, 미축은 안한장군이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다. 이는 군사장군이었던 제갈량보다도 높은 직책으로, 미축이 유비에게 얼마나 깊은 신뢰와 총애를 받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219

[동생 미방의 배신으로 고통]

남군태수를 지내던 동생 미방이 촉한을 배신하고 손권에게 돌아섰습니다.

미방의 배신은 유비군의 무관 부동의 서열 1위 관우의 죽음, 그리고 형주 지배권의 상실로 이어져 유비에게 심리적으로, 실질적으로 엄청난 타격을 주게 되었습니다.
평생 유비를 섬겨온 미축은 이로 인해 엄청난 고통과 상심에 빠졌지만, 유비는 미축을 연좌하거나 질타하지 않았습니다.

221

[유비의 황제 즉위 추대]

태부 허정, 군사장군 제갈량 등 여러 대신과 함께 유비를 촉한의 황제로 추대하는 표를 올리며, 유비의 대업 완성을 지지했습니다.

221년, 미축은 태부 허정, 군사장군 제갈량, 태상 뇌공, 광록훈 황권, 소부 왕모 등 여러 대신과 함께 유비를 촉한의 황제로 추대하는 표를 올렸다. 이는 유비의 숙원이던 한실 부흥의 대업을 완성하는 중요한 순간에 그가 함께했음을 보여준다.

[동생의 배신으로 인한 사망]

동생 미방의 배신으로 인한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같은 해에 사망하며, 유비와의 오랜 인연과 충성스러운 삶을 마감했습니다.

219년 동생 미방의 배신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깊은 상심과 고통을 겪었던 미축은 결국 1년여 만인 221년에 사망했다. 이는 유비의 가장 오랜 심복이자 재정적 후원자였던 그의 생애가 비극적으로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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