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권
정치가, 군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36
- 황권은 중국 후한 말부터 삼국 시대에 걸쳐 촉나라와 위나라를 섬긴 정치가이자 전략가입니다. - 유장 유비 조비 세 명의 주군을 섬기며 각 시기마다 탁월한 식견과 충심을 보여주었습니다. - 특히 유비에게서 위나라로 투항했음에도 유비에게는 관대함을 위 문제에게는 깊은 신뢰와 파격적인 대우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214
[유비 입촉 반대와 귀순]
익주목 유장이 유비를 맞아들이려 하자, 황권은 유비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국경을 닫을 것을 강력히 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유비가 촉을 공격했을 때도 끝까지 저항했으나, 유장이 항복하자 비로소 유비에게 귀순했습니다.
215
[한중 정벌의 숨은 주역]
장로가 한중을 조조에게 잃자, 황권은 유비에게 한중의 전략적 중요성을 설파하며 반드시 이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후 유비의 한중 정벌에서 황권의 계책이 큰 역할을 했으며, 특히 위나라의 대장 하후연을 죽이는 데 기여하며 한중 탈환의 일등 공신이 되었습니다.
222
[이릉대전 패배와 투항]
유비가 오나라 정벌을 위해 이릉 대전으로 출정하려 하자, 황권은 오군의 용맹함과 촉군의 수로 전투 위험성을 경고하며 자신이 먼저 정찰하겠다고 자원했습니다.
그러나 유비는 이를 듣지 않고 황권을 위나라 방어에 배치했고, 결국 유비가 이릉 대전에서 대패하자 퇴로가 막힌 황권은 어쩔 수 없이 위나라에 귀순했습니다.
[위 문제의 파격적인 신뢰]
황권이 위나라에 투항하자, 유비는 “그가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를 버렸다”며 그의 가족을 이전과 같이 대우했습니다.
위 문제 조비는 황권이 유비에게 보인 충심을 높이 사 진남장군으로 삼고 육양후에 봉했으며, 심지어 황제와 같은 수레에 태울 정도로 파격적인 예우를 베풀었습니다.
이는 그의 뛰어난 능력과 확고한 충절이 모든 이에게 인정받았음을 보여줍니다.
황권은 위나라에서 자신의 가족이 처형당했다는 헛소문에도 동요하지 않았고, 유비의 죽음에도 기뻐하지 않으며 충절을 지켰습니다. 위 문제가 그를 시험하기 위해 황궁으로 출두를 명했을 때도 태연자약하게 임하여 더욱 큰 인정을 받았습니다.
239
[위나라에서의 말년]
조위에 귀순한 후 황권은 익주자사를 겸임했으며, 경초 3년(239년)에는 삼공에 버금가는 최고위직인 거기장군과 의동삼사로 승진했습니다.
그 이듬해인 240년에 세상을 떠났고, '경후'라는 시호를 받으며 그의 다난했지만 영광스러운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263
[아들 황숭의 최후]
촉에 남아있던 황권의 아들 황숭은 263년 위나라가 촉을 침공했을 때,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과 함께 면죽관에서 등애의 위군에 맞서 필사적으로 항전했습니다.
그는 끝까지 용맹하게 싸웠으나 결국 전사하며 아버지 못지않은 충절을 보여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