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연
중국 삼국시대 인물, 촉한 장군, 군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32
유비의 명장으로 뛰어난 용맹과 지략을 겸비해 촉한의 주요 무장으로 활약. 한중 진수를 비롯해 제갈량의 북벌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전성기를 구가. 오만하고 거침없는 성품으로 제갈량 및 다른 장수들과 잦은 불화를 일으킴. 제갈량 사후 회군 명령을 불복하고 독자적인 행보로 내분을 조장. 결국 마대에게 참수당하며 삼족이 멸족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입체적인 인물.
214
[유비 진영에 합류 및 등용]
유비의 익주 공략에 부곡으로 종군하여 큰 공을 세웠고, 아문장군에 임명되며 촉나라에 등용되었습니다. 이로써 위연은 유비 진영의 중요한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위연은 후한 말 형주 의양군 사람으로, 유비가 익주(서촉)를 공략할 때 부곡(하급 장수 또는 사병을 이끄는 장교) 신분으로 종군하여 여러 공을 세웠습니다. 그의 용맹함과 활약이 인정받아 아문장군에 임명되며 유비 진영의 핵심 인물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219
[한중 태수 임명: 모두의 예상을 깬 파격 인사]
유비가 한중왕을 칭한 후, 모두의 예상을 깨고 장비 대신 위연을 진원장군 겸 한중태수에 임명했습니다. 위연은 유비에게 "조조가 천하를 들어오면 막고, 그 휘하 장수가 10만 명으로 오면 삼켜버리겠다"며 중임을 다짐했습니다.
219년, 유비가 한중왕을 칭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비가 한중을 진수할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유비는 파격적으로 위연을 진원장군 겸 한중태수에 앉혀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유비가 중임을 어찌 해내겠냐는 질문에 위연은 "조조가 천하를 들어 쳐들어온다면 대왕을 위해 막을 것이고, 그 휘하 장수가 10만 명으로 쳐들어온다면 대왕을 위해 삼켜버릴 것입니다."라고 답하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221
[유비의 황제 즉위와 진북장군 임명]
유비가 황제에 오르면서 위연도 진북장군에 임명되어, 촉한 건국 초기에 중요한 군사적 지위를 확고히 했습니다.
221년, 유비가 황제에 오르면서 위연 또한 진북장군에 임명되며 그의 군사적 지위가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이는 촉한 건국 초기에 위연이 차지하고 있던 중요한 위치를 보여줍니다.
223
223년, 유선이 즉위하면서 위연은 도정후에 봉해져, 그의 정치적, 군사적 위상이 상승했음을 보여줍니다.
227
[제갈량의 북벌 참여와 '자오곡 계책' 제안]
제갈량이 한중에서 북벌을 준비하며 위연을 독전부와 승상사마 겸 양주자사로 임명했습니다. 위연은 기습적인 장안 공략을 제안하는 '자오곡 계책'을 입안했으나, 제갈량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227년, 제갈량이 한중에서 북벌을 준비하면서 위연을 독전부(전방 부대 총괄 지휘), 승상사마 겸 양주자사로 임명했습니다. 위연은 당시 장안을 수비하던 하후무가 겁이 많고 무모하다는 점을 간파하여, 정예병 만 명으로 자오곡을 통해 열흘 안에 장안을 기습 점령하는 '자오곡 계책'을 제안했습니다. 이 계획은 매우 위태로웠기에 제갈량은 이를 채택하지 않았고, 위연은 제갈량을 겁쟁이라 여기며 자신의 능력이 온전히 쓰이지 않는 것에 불만을 표출했습니다.
230
[위나라 군대를 크게 대파, 정서대장군으로 승진]
강족과의 전투에서 오의와 함께 위나라 후장군 비요와 옹주자사 곽회를 양계에서 크게 대파하며 큰 공을 세웠습니다. 이 승리로 위연은 전군사, 정서대장군, 가절을 받고 남정후에 봉해지며 최고의 군사적 명예를 얻었습니다.
230년, 위연은 오의와 함께 강족이 있는 남안군으로 진격하여, 위나라의 후장군 비요와 옹주자사 곽회가 이끄는 군대를 양계에서 크게 대파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이 빛나는 승리로 위연은 전군사, 정서대장군, 가절의 직책을 받고 남정후에 봉해지며, 촉한 내에서 가장 높은 군사적 지위와 명예를 얻게 됩니다.
231
[사마의 군대를 크게 격파]
제갈량의 북벌 중 사마의와 대치하던 상황에서, 고상, 오반과 함께 싸움을 걸어온 사마의 군을 크게 무찔러 뛰어난 전술과 용맹을 다시 한번 증명했습니다.
231년 5월, 제갈량의 북벌이 진행되던 중 위군은 사마의와 대치하게 됩니다. 이때 싸움을 걸어온 사마의 군을 위연은 고상, 오반과 협력하여 크게 무찌르는 전공을 세웠습니다. 이는 위연의 탁월한 전투 능력을 다시 한번 과시한 사건입니다.
234
[오장원 전투 선봉 출전과 불길한 꿈]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인 오장원 전투에서 선봉을 맡아 출전했습니다. 이때 머리 위에서 뿔이 나는 꿈을 꾸었으며, 이는 흉조로 해석될 수 있는 불길한 징조였습니다.
234년, 제갈량의 마지막 북벌인 오장원 전투에 위연이 선봉을 맡아 출전했습니다. 출전 전 위연은 머리 위에서 뿔이 나는 꿈을 꾸었고, 조직(趙直)은 이를 길조로 해몽했으나 사실은 "칼(刀)이 머리 위에서 쓰이는(用) 형상"으로 매우 흉한 징조였습니다.
[제갈량의 유언: 위연을 최후미로 한 회군 명령]
제갈량이 위독해지자 양의, 비의, 강유를 불러 자신이 죽은 뒤 위연을 최후미로 하여 철수할 것을 명했습니다. 이는 위연의 불순한 행동을 염려한 제갈량의 마지막 조치였습니다.
234년 가을, 위독해진 제갈량은 장사 양의, 사마 비의, 호군 강유를 불러 자신이 죽은 뒤의 철수를 명하며, 위연은 최후미를, 강유는 그 다음을 담당하되 혹시 위연이 따르지 않더라도 바로 출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는 위연의 성품을 꿰뚫어 본 제갈량의 마지막 유언이자,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 조치였습니다.
[제갈량 사후 회군 명령 불복 및 독자 행동 주장]
제갈량 사후, 양의가 퇴각 준비를 하는 동안 위연은 "승상은 죽었어도 나는 건재하다. 내가 군대를 통솔해 적을 상대해야 마땅하다"며 회군 명령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주장했습니다.
234년 가을, 제갈량이 사망하자 양의는 제갈량의 유언에 따라 위군 몰래 퇴각 준비를 했습니다. 비의가 위연의 의사를 확인하러 가자, 위연은 "승상은 유명을 달리했어도 나는 건재하다. 승상부의 관속들은 관을 들고 돌아가 장사 지내고 나는 군대를 통솔해 적을 상대해야 마땅하다. 한 사람이 죽었다고 어찌 대업을 폐하겠는가? 또 위연이 어떤 사람인데 양의가 정하는 대로 뒤나 지켜야겠는가!"라며 회군 명령을 단호히 거부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군사 지휘를 주장했습니다.
[잔도 방화와 촉군 내부의 심각한 내분]
위연은 양의 등의 철군을 막기 위해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먼저 남쪽으로 내려가 퇴각군이 이용할 잔도에 불을 질렀습니다. 이로 인해 촉군 내부에서 위연과 양의가 서로 반역을 고발하는 심각한 내분이 발생했습니다.
234년 가을, 양의 등이 제갈량의 계획에 따라 철군하려 하자 위연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이끌고 먼저 남쪽으로 내려가 퇴각군이 이용할 잔도에 불을 질러 길을 막았습니다. 위연과 타지에 고립된 양의는 서로를 반역자로 유선에게 고발하는 심각한 내부 갈등을 겪게 됩니다.
[마대에게 참수당하고 삼족 멸문]
위연은 포곡을 틀어막고 퇴각군을 공격했으나, 왕평의 호통에 장병들이 흩어졌습니다. 결국 자식들과 한중으로 도피하던 중 마대에게 참수당했고, 그 머리는 양의에게 보내졌으며 위연의 삼족은 멸문당했습니다.
234년 가을, 위연은 포야도 남쪽 입구인 포곡을 틀어막고 퇴각군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퇴각군의 선두에 있던 왕평이 "승상의 시신이 채 식지도 않았거늘 너희들이 감히 어떻게 이러느냐!"며 호통치자, 위연의 장병들은 잘못이 위연에게 있음을 알고 흩어졌습니다. 위연은 자식들과 함께 한중으로 도피했지만, 뒤쫓아온 마대에게 결국 참수당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머리는 양의에게 보내졌고, 양의는 이를 짓밟으며 위연을 모욕했습니다. 위연은 유언도 없이 삼족이 멸문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