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삼국시대 인물, 군사, 관료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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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휘 문하에서 학문 수학 및 제갈량과의 교류]
중평 연간, 서서가 전란을 피해 석도와 함께 형주로 가 사마휘 밑에서 학문을 익히고 제갈량 등과 교류했습니다.
중평 연간(184년~189년), 서서는 전란을 피해 동향인 석도와 함께 형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사마휘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학문을 익혔고, 이 과정에서 훗날 당대 최고의 전략가가 될 제갈량, 그리고 맹건 등과 교류하며 지식을 쌓았습니다. 서서, 맹건, 석도는 학문을 깊이 이해하는 데 주력했고, 제갈량은 요점을 익히는 데 집중했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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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신야에 주둔하고 있던 유비는 서서를 만나 그의 뛰어난 재능을 알아보고 유능한 인재로 평가했습니다. 이 만남을 계기로 서서는 유비의 막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207
유비가 자신의 능력을 알아본 후, 서서는 친구이자 당대 최고의 전략가라 불리던 제갈량을 유비에게 천거했습니다. 유비가 직접 제갈량을 데려오겠다고 하자, 서서는 "저는 그를 만날 수는 있지만, 데려오지는 못합니다"라고 말하며 고사했고, 결국 유비가 직접 제갈량을 찾아가 삼고초려를 통해 초빙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갈량이 유비 진영에 합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208
유비가 조조에게 패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서서의 어머니가 조조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효심이 지극했던 서서는 유비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조조에게로 향하며 유비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유비는 서서를 보내며 매우 아쉬워했다고 전해집니다.
220
위나라가 건국된 220년 이후, 서서는 팽성상을 지내는 한편 우중랑장을 거쳐 어사중승까지 승진하여 조위의 중요한 관료로 활동했습니다. 그의 동향인 석도는 태수와 전농교위를, 맹건은 정동장군 및 양주자사에 임명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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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제갈량이 북벌을 진행하던 중, 조위에서 서서와 석도가 맡은 관직을 전해 듣고는 "위에 인재가 그렇게 많은가? 어찌하여 두 사람이 쓰이지 않는가!"라며 한탄했다고 합니다. 이는 서서의 뛰어난 재능이 조위에서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음을 보여줍니다.
234
234년, 서서가 팽성에서 병으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서복이었으며, 어사중승 재임 시에도 서복이라 불렸던 점으로 미루어 말년에 개명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