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
삼국시대 인물, 전략가, 정치인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30
삼국시대 촉한의 전설적인 지략가이자 책사. 복룡(제갈량)과 함께 봉추라 불리며 천하를 안정시킬 인재로 손꼽혔습니다. 유비의 서촉 점령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나 아쉽게도 젊은 나이에 전사하며 큰 뜻을 다 펴지 못했습니다. 탁월한 인물 평가 능력으로도 유명합니다.
179
[봉추의 탄생]
유비의 서촉 공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뛰어난 전략가 방통이 태어났습니다.
자는 사원, 별호는 봉추이며, 훗날 촉한의 기틀을 다지는 데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197
[봉추, 세상에 드러나다]
어릴 적엔 평범해 보였으나, 삼촌 방덕공과 당대 명사 사마휘의 탁월한 안목으로 비범한 재능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마휘는 그를 "복룡(제갈량)과 봉추(방통) 중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며 극찬했습니다.
이후 남군 공조를 거쳐 유비에게 발탁됩니다.
방통은 처음 뇌양현령으로 부임했으나 업무를 잘 처리하지 못해 면직될 뻔했습니다. 하지만 노숙과 제갈량의 강력한 추천으로 유비가 직접 만나본 후 그의 진가를 알아보고 치중종사로 삼았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제갈량과 함께 군사중랑장에 오를 정도로 신임했습니다.
210
[인물평의 대가]
방통은 인물을 평가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특히, 주유의 장례식 후 돌아오는 길에 육적과 고소를 각각 '빠른 말', '무거운 짐을 지고 멀리 갈 수 있는 소'에 비유하며 그들의 재능과 한계를 명확히 평가했습니다.
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아 사람들이 선한 일을 하도록 독려했습니다.
방통은 세상의 풍속을 바로 세우기 위해, 열 명 중 다섯 명은 아니더라도 나머지 다섯 명을 얻어 세상의 교화를 높이고자 다소 과장된 칭찬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아첨이 아니라, 선한 행동을 장려하는 교육자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익주 점령을 제안하다]
방통은 유비에게 황폐해진 형주로는 천하 통일을 이룰 수 없으니, 부유하고 병마가 풍부한 익주를 점령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처음에는 유비가 의로움을 내세우며 주저했지만, 방통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익주로 향하는 대장정에 나서게 됩니다.
방통은 난세에는 약한 자를 병합하고 혼미한 자를 공격하는 것이 오패도 행했던 일이라며, "어긋난 도리로 취하되 바른 도리로 다스리면 된다"는 '역취순수(逆取順守)'의 논리를 들어 유비를 설득했습니다. 이는 유비의 이상적인 이미지와 상충되지만, 현실적인 전략적 필요성을 설파한 방통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211
[서촉 대계의 시작]
유비가 한중의 장로를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익주에 입성할 때, 방통이 함께 동행하며 군사적 책임을 맡았습니다.
유비가 유장을 직접 공격하기를 망설이자, 방통은 성도 기습, 장수 유인, 백제성 후퇴의 '상중하 삼책'을 제시했습니다.
유비는 이 중 중간 계책을 선택하여 민심을 얻어가며 성도로 향했습니다.
방통은 양회와 고패가 유비를 돌려보내려 한다는 점을 이용, 형주 위급을 가장하여 철수하는 척 꾸미게 했습니다. 그들이 방통을 환송하러 오자 붙잡아 처형하고 그들의 병력을 흡수하여 성도로 진격하는 과감한 전략을 성공시켰습니다.
214
[봉추, 낙성에서 지다]
익주 공략의 핵심 전장에서, 방통은 유비군과 함께 낙현을 포위하고 공성전을 펼치던 중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36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전사했습니다.
유비는 그의 죽음을 몹시 애통해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유비군에게 큰 손실이자 촉한의 미래를 바꿀 비극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낙봉파(떨어지는 봉황의 언덕)에서 유비의 백마를 타고 매복에 걸려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더욱 극적인 죽음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죽음은 '봉추'라는 별호와 대비되어 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사후 관내후에 추봉되었고, 260년 정후(靖侯)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