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탁

군웅, 정치인, 장군,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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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10-15- 00: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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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의 혼란기 강력한 군벌 동탁은 황제 폐립 수도 장안 천도 황릉 도굴 초인플레이션 유발 등 전무후무한 폭정을 일삼아 민중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역사상 가장 잔혹한 인물 중 하나로 기록되지만 한편으로는 호방함과 탁월한 무예 뛰어난 지략과 결단력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결국 양아들 여포에게 배신당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연관 연혁
주요사건만
최신순

139

동탁은 139년 농서군 임조현에서 태어났습니다.

167

[강족과의 교류 및 인심]

젊은 시절, 강족과 교류하며 친분을 쌓고 농사를 지내던 동탁은 자신을 찾아온 강족에게 밭 갈던 소를 잡아 연회를 베푸는 인심을 보였습니다.

이에 감격한 강족들이 수많은 가축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후한 환제 말년, 동탁은 우림랑으로 뽑혀 흉노 중랑장 밑에서 강족을 쳐부수는 큰 공을 세웠고, 이 공으로 비단 9,000필을 받았는데 이를 부하들에게 모두 나누어주며 신뢰를 얻었습니다.

184

[황건적 토벌 중 패배]

황건적 토벌에서 연전연승을 거두던 노식이 뇌물을 주지 않아 소환당하자, 그 대신 동중랑장으로서 황건적 수장 장각을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패배하여 조정의 벌을 받았습니다.

185

[양주의 난 진압 성공]

양주에서 강족과 소월지 등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삼보 지역까지 위협하자, 황보숭의 지휘 아래 반란 진압을 맡았습니다.

전황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떨어진 별똥별에 불안해하는 반군을 즉시 공격하여 수천 명을 베어 크게 격파했습니다.

다른 진압군이 보급선 단절로 패퇴하는 와중에도 동탁군만이 유일하게 전력을 보전하여 돌아왔고, 이 공으로 태향후에 봉해지고 식읍 1,000호를 받았습니다.

189

[낙양 입성과 정권 장악]

영제 사망 후 대장군 하진이 환관 제거를 위해 동탁을 불렀으나, 동탁이 낙양에 도착하기 전 하진은 암살당하고 환관들은 몰살되었습니다.

환관 장양 등이 소제와 진류왕(훗날 헌제)을 데리고 도주하자, 동탁은 북망산에서 황제 일행을 영접하며 낙양으로 입성했습니다.

불과 3천 명의 병사로 밤에는 군사를 내보내고 아침에는 북을 울리며 입성하기를 반복하여 대군인 양 꾸며 위세를 보였고, 죽은 하진과 정원의 병력까지 흡수하며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소제 폐위 및 헌제 옹립]

소제가 어리석고 진류왕 유협(헌제)이 똑똑하다는 이유로 황제 폐립을 추진했습니다.

원소 등은 반대했으나, 동탁은 대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제를 홍농왕으로 강등시키고 유협을 제위에 앉혔습니다.

이어 하태후와 그의 어머니까지 살해하며 권력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후 태위로 옮겼다가 헌제 옹립의 공을 내세워 스스로 상국에 오르고 미후에 봉해지는 등 극단적인 전횡을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황제를 배알할 때도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며, 칼을 찬 채 전각에 오르는 등 무례한 행동으로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동탁과 그 휘하 군대는 살인, 약탈, 겁탈, 축재 등 온갖 폭정을 저질러 백성들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190

[반동탁 연합군 궐기]

동탁의 극심한 폭정에 천하의 호걸들이 분노하여 발해태수 원소를 맹주로 삼아 '반동탁 연합군'이 궐기했습니다.

안 그래도 황건적 잔당들의 봉기로 난감했던 동탁은 자신을 천거했던 주비와 오경마저 참수하며 잔혹함을 드러냈습니다.

[폐위된 홍농왕 독살]

반동탁 연합군의 위협에 동탁은 이유를 시켜 폐위된 홍농왕(소제)을 독살했습니다.

이는 그의 권력 유지를 위한 극단적인 잔인성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장안 천도 및 낙양 소각]

황완, 양표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도를 낙양에서 장안으로 강제로 천도했습니다.

낙양 백성 수백만 명을 군대로 몰아 이주시키며 길가에 시체가 쌓였고, 궁궐·관청·민가를 모두 불태워 200리 내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와 함께 여포를 시켜 황제와 대신들의 묘까지 도굴하는 전무후무한 만행을 저지르며, 낙양에 남아있던 원소 일가까지 멸족시켰습니다.

수도를 장안으로 옮긴 후, 동탁은 미현에 '만세오'라는 요새를 쌓고 30년 치 식량을 비축하며 자신의 영원한 권력을 꿈꾸었습니다. 그의 법령은 가혹하고 문란하여 억울하게 죽은 자가 많았고, 심지어 관중의 귀족들은 반역죄를 뒤집어쓰기도 했습니다.

[화폐 개혁 실패와 초인플레이션]

오수전을 녹이고 조악한 소전을 대량으로 주조하는 화폐 개혁을 실시했습니다.

이는 극심한 초인플레이션을 불러와 곡식 한 곡이 수십만 전에 이르는 등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했습니다.

동탁이 죽은 지 40년이 지난 237년경에도 쌀 2.6톤이 8억전의 가치를 가질 정도로 그 여파는 삼국시대 내내 이어졌습니다.

이는 그의 경제 개념 부재와 무책임한 권력 남용이 초래한 대재앙이었습니다.

191

[손견의 낙양 진격]

손견이 양인으로 다시 진격해오자 호진과 여포를 대독, 기독으로 삼아 요격했습니다.

그러나 호진과 여포의 내분으로 동탁군은 크게 패했습니다.

손견은 낙양 가까이까지 진군했고, 동탁이 직접 나서 맞붙었으나 결국 패하여 낙양 입성을 허용했습니다.

다만 낙양은 이미 황폐해져 보급이 어려웠기에 손견은 곧 돌아갔습니다.

192

[양아들 여포의 배신과 죽음]

양아들 여포를 매우 신임했으나, 동탁이 사소한 일로 수극을 던져 죽을 뻔한 일과 여포가 시중드는 계집종과 정을 통한 일이 앙금으로 남아 여포는 불안에 떨었습니다.

왕윤은 이 앙금을 이용하여 여포를 회유했고, 결국 여포는 '조서를 받들어 역적 동탁을 치노라!' 외치며 동탁을 죽였습니다.

동탁의 시체는 거리에 버려졌고 그 일족은 멸족되었으며,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노래하고 춤추며 그의 죽음을 환영했습니다.

동탁의 생모인 지양군마저 '동탁을 낳은 죄'로 참수당했습니다. 동탁의 시체는 매우 뚱뚱하여 기름이 흘러나왔고, 이를 지키던 관리가 배꼽 위에 심지를 놓고 불을 붙였더니 며칠씩이나 계속 탔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금 이삼만 근, 은 팔구만 근, 비단과 구슬 등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을 산처럼 모아두었으나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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