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사자

후한 말 무장,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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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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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무장, 삼국시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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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후한 말 혼란 속에서 빛난 용맹하고 의리 있는 무장입니다. 뛰어난 활 솜씨로 백발백중을 자랑하며 명궁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공융을 구원한 지략 손책과의 극적인 결투 그리고 의리를 지킨 약속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손권 휘하에서 동오의 국경을 굳건히 지킨 맹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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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

[태사자 출생]

중국 후한 말의 무장 태사자(太史慈)가 청주 동래군 황현에서 태어났다.

중국 후한 말의 무장 태사자(太史慈)가 청주 동래군 황현(지금의 옌타이시 룽커우시)에서 태어났다.

186

[군주조사 재직과 요동 도피]

동래군의 군주조사로 재직 중 청주와의 정치적 분쟁을 해결하며 명성을 얻었으나, 이로 인해 화를 입을까 두려워 요동으로 피신했다.

젊어서 학문을 좋아했던 태사자는 186년 동래군의 군주조사를 지냈다. 동래군과 청주 사이에 틈이 생기자 수작을 부려 청주가 불리한 처분을 받게 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이 일로 화를 얻을 것을 두려워해 요동으로 달아났다.

193

[공융 구원 작전]

황건적 관해에게 포위된 북해상 공융을 구하기 위해 홀로 달려가 적을 방심시킨 뒤 포위망을 뚫고 유비에게 구원을 요청하여 공융을 구원하는 데 성공했다.

초평 4년(193년), 북해상 공융이 황건적 관해에게 포위되자, 요동에서 돌아온 태사자는 어머니의 권유를 받아 밤을 틈타 홀로 공융에게 달려갔다. 유비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사자를 보내기 위해 성에서 나와 활 연습을 반복하며 적을 방심시킨 뒤 3일째 되는 날 포위망을 뚫었다. 태사자가 유비에게 정병 3천 명을 얻어 공융을 구하러 가자 관해는 포위를 풀고 도망쳤다.

194

[유요 의탁 및 손책과의 일기토]

유요에게 의지했으나 중용되지 못하고, 손책의 군대를 정탐하던 중 손책과 우연히 마주쳐 단기필마로 격렬한 일기토를 벌여 서로 투구와 단극을 빼앗을 정도로 호각의 무예를 보여주었다.

194년, 같은 동래군 사람인 양주자사 유요에게 의지했지만, 유요가 허소의 말을 들어 태사자를 중용하지 않아 정찰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손책의 군대를 정탐하다가 손책과 우연히 마주쳐 단기필마로 격렬하게 싸우게 되었다. 서로 월등히 뛰어난 무장인지라 좀처럼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는데, 태사자는 투구를, 손책은 단극을 각각 빼앗았다.

197

[손책에게 귀부하다]

유요가 손책에게 패배한 후에도 이민족을 이끌고 저항하다 붙잡혔으나, 손책이 그의 포승을 풀어주고 협력을 구하자 흩어진 유요의 병사들을 모아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지켜 손책의 깊은 신뢰를 얻으며 귀부했다.

197년, 유요가 손책에게 패배한 후에도 태사자는 이민족을 이끌고 저항을 계속했지만 마침내 붙잡혀 포박되고 만다. 손책이 태사자의 포승을 풀어주고 협력을 구하자 태사자는 뿔뿔이 흩어진 유요의 병사들을 모아서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손책은 그것을 허락했다. 손책의 가신들은 모두들 태사자가 거짓말을 해 도망가는 것이라며 만류했지만 손책은 태사자를 끝까지 믿었고, 태사자 또한 약속 날짜까지 군사들을 이끌고 되돌아왔다.

200

[건창도위 임명 및 유반 저지]

손권으로부터 건창도위를 맡아 해혼 일대를 다스리며 유반의 침략을 저지하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이후 유반이 수차례에 걸쳐 애, 서안 일대를 침략하자, 손권은 해혼과 건창 일대의 몇 현을 나누어 건창도위를 새로 만들고 태사자에게 맡겨 해혼 일대를 다스리며 장수들을 감독하여 유반을 저지하도록 했고, 이후 유반은 쳐들어오지 않았다.

206

[태사자 사망]

남쪽에서 일어난 반란을 토벌하러 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206년, 남쪽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토벌하러 갔다가 풍토병에 걸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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