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

군인, 장군, 전략가

num_of_likes 49

최근 수정 시각 : 2025-09-02- 02:09:17

등록된 키워드의 연표를 비교해서 볼 수 있습니다!
?
연혁 비교
no image
군인, 장군, 전략가
report
Edit

후한 말 손권 휘하의 명장이자 지략가. 가난한 집안에서 시작하여 스스로 학문에 정진 괄목상대의 고사를 남길 만큼 지혜와 무용을 겸비한 인물로 성장했다. 적벽 대전과 유수구 전투 등 주요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특히 뛰어난 계책으로 관우를 속여 형주를 평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불과 42세의 나이에 요절하며 손권의 깊은 탄식을 자아냈다.

연관 연혁
  1. 등록된 연관연혁이 없습니다.
주요사건만
최신순

178

[호랑이굴 포부와 손책의 발탁]

예주 여남군 부피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매형 등당을 따라 산월 정벌에 나섰다가 "호랑이굴에 들어가지 않고 어찌 그 새끼를 잡겠습니까?"라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후 자신을 모욕한 관리를 죽이고 자수했으나, 손책이 그의 담대함에 감탄하며 곁에 두었다.

여몽은 178년 중국 예주 여남군 부피현에서 태어났습니다.

200

[손권의 신임을 얻다]

매형 등당이 죽자 그의 직책을 이어받았다.

손책의 뒤를 이은 손권이 군대를 재편할 때, 병사들에게 진홍색 옷을 입히고 화려하면서도 질서 정연한 사열을 보여 손권을 감탄하게 했다.

손권은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더 많은 병력을 주었고, 이후 단양 토벌에 참가해 공을 세우며 평북도위와 광덕현장을 겸하게 되었다.

208

[강하 전투 대승의 선봉장]

강하 태수 황조를 정벌하는 전투에서 선봉에 서서 적 수군 대장 진취를 직접 베어 넘기며 손권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손권은 이 승리가 진취를 먼저 잡은 덕분이라며 그에게 횡야중랑장과 천만 전이라는 엄청난 상금을 주었다.

[적벽 대전 이후 조인 격퇴]

적벽 대전에서 조조군을 격파한 후, 조인이 지키던 남군을 포위했다.

감녕이 이릉에서 고립되어 구원을 요청하자, 병력을 나눠 구원하는 동시에 적의 퇴로를 차단해 말까지 노획하자는 기발한 전략을 제시, 주유가 이를 채택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듬해인 209년, 주유군은 사기가 치솟아 장강을 건너 조인을 격퇴하고 남군을 차지했다.

210

[오하아몽, 괄목상대하다]

손권의 권유로 학문에 정진하기 시작해 그 경지가 옛 학자들을 뛰어넘는 수준에 이르렀다.

주유 사후 그 뒤를 이은 노숙이 여몽의 학식과 전략적 식견에 놀라 “경의 재략이 이 정도까지 오른지 몰랐소!”라며 "예전의 그 동오의 아몽이 아니로구나!"라고 감탄했다.

이에 여몽은 "선비란 사흘만 떨어져도 눈을 비비며 다시 대해야 합니다"라고 답하며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세계적인 고사를 만들었다.

이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이자 유명한 일화로 손꼽힌다.

212

[유수구 요새 축조]

조조가 유수구로 남하한다는 소식에 손권에게 방어 기책을 헌책하고 유수오(濡須塢)라는 요새를 건축했다.

장수들이 육지에서 습격 후 배로 돌아오면 된다며 의문을 제기하자, 전투는 항상 이길 수 없으므로 보병과 기병의 기습에 대비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그의 선견지명은 이듬해인 213년 조조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물러남으로써 증명되었다.

214

[환성 조기 공략 주장 및 승리]

조조 휘하의 여강태수 주광이 환(皖) 일대에 대규모 논을 개간하며 세력을 키우자, 여몽은 이를 조기에 제거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는 토산을 쌓는 느린 공성 대신, 아직 수비가 견고하지 않을 때 전군이 총공세로 몰아쳐 속전속결로 끝낼 것을 제안했고, 감녕을 선봉으로 추천했다.

손권이 이를 받아들여 실행에 옮겼고, 새벽을 기해 총공세를 펼쳐 아침 무렵 성을 정복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공으로 여강태수와 많은 상을 받았다.

215

[형주 삼군 공략과 학보를 낚다]

유비가 형주를 내어주지 않자 손권의 명을 받아 장사, 영릉, 계양 삼군을 취하러 출정했다.

영릉 태수 학보가 항전하자, 회군 명령을 받았음에도 학보의 친구를 이용해 유비군이 한중과 남군에서 위급하다는 거짓 정보를 흘려 학보를 속여 항복시켰다.

이후 실제 회군 명령서를 보여주며 박장대소, 학보는 속았다는 부끄러움에 땅속으로 숨고 싶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 사건으로 형주 문제는 상수(湘水)를 경계로 분할 합의되었다.

217

[유수구 방어 및 형주 공략 건의]

조조가 다시 유수구를 침범하자, 이전에 축성한 유수오(濡須塢)에 1만 장의 강노(強弩)를 배치하여 적 선봉을 격퇴했다.

이 공로로 좌호군(左護軍)과 호위장군(虎威將군)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노숙이 죽자 그의 군대를 물려받았고, 조조가 있는 한 관우와 협력해야 한다는 노숙의 견해와 달리, 관우가 오나라를 병합할 야심이 있어 관계가 오래갈 수 없다고 판단하며 손권에게 은밀히 형주 확보를 건의했다.

219

[형주 평정, 관우를 무찌르다]

겉으로는 관우와 우호를 증진하며, 병으로 요양하는 척 건업으로 귀환하겠다고 속여 관우의 경계를 허물게 했다.

관우가 식량 부족으로 손권의 쌀을 약탈하자 이를 명분 삼아 즉시 출격했다.

상선으로 위장한 배에 정예병을 태워 강변 초병들을 포박하고 관측소를 철거하며 맹렬히 진격했다.

공안의 사인과 강릉의 미방이 내통하며 항복했고, 관우는 남군이 넘어간 사실조차 몰랐다.

여몽은 관우의 병사 가족들을 극진히 대우하여 관우군의 전의를 상실시켰고, 결국 맥성에서 탈출하려던 관우 부자를 주연과 반장이 사로잡아 죽였다.

이로써 오나라는 형주를 완전히 평정하는 데 성공했다.

[형주 평정 직후 갑작스러운 죽음]

관우를 격파하고 형주를 평정한 엄청난 공로로 남군태수와 잔릉후에 봉해지고 1억 전, 황금 500근 등 막대한 상을 받았으나, 채 봉작이 완료되기도 전에 병에 걸렸다.

손권은 그를 공안 내전으로 들여 치료에 천금을 내걸고 벽에 구멍을 뚫어 그의 안색을 살필 만큼 극진히 보살폈으나, 결국 42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손권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비교 연혁 검색
search
키워드 중복 확인
close
댓글 게시판
이전 다음 위로 이동 아래로 이동